그 무렵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겨우내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냉골에 처박혀 살았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만나지도 않고 살았다.)
이유를 글로 쓰긴 어렵지만 슬픔과 우울을 넘어선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데 어디든 마음을 풀어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도 그는 울분에 쌓여 있었다. 어디로든 가야겠다며 그 밤에 고속도로를 타겠다 했다.
"그럴 거면 이쪽으로 오시면 어때요?"
30분쯤 흘렀다. 그가 왔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구요?"
밤이 깊었지만 상처 입은 짐승 같은 그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스벅이 문을 닫을 때까지 30분간 대화를, 아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점점 우리는 가까워졌다, 먼 곳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조금 더 친해지기 위해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바다를 보고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또 바다를 보았다. 그는 그 또래(나이가 나랑 비슷하다더니 세 살 적었다.)의 사람들이 겪기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눈은 동그래졌고 입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희로애락으로 빈틈없이 메꿔진 삶을 살아왔다.
바다를 보고 돌아온 이후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글을 통해 짐작은 했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또한 나보다도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지만 말을 많이 하고 잘했다. 전과는 달리 가벼운 일상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지금 그를 둘러싼 현실만 아니라면 꽤 유쾌한 사람일 지도 몰랐다.
여행준비를 하기 위해 매일 카페에서 만나 일정을 짜고 액티비티를 예약했다. 나는 처음 가는 곳이지만 그는 네 번째라 했다. 여행 준비를 하며 그는 점점 살아났다. 가끔 웃었고 곁눈질로 나를 흘끔 쳐다보기도 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는 날, 피검사를 하고 지혈을 하는데 그가 팔을 꾹 눌러주었다. 반창고를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 찌릿,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근에는 몸이 많이 좋아져서 혼자 병원을 다니며 지혈도 항암도 모두 혼자 했었다. 병원은 원래 혼자 다니는 거였는데 온기를 나눠주니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우리 스냅도 찍을까요? 꿈이었다면서요."
결혼이 꿈이었지만 오래전에 포기했다고, 웨딩사진은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더니 먼저 제안해 줘서 고마웠다. 여행도 사진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상처 입은 짐승 같았지만 뭐라도 해야 살릴 수 있겠다 싶었다. 내 주변의 어떤 사람도 이제 먼저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