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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이코노미 Jun 08. 2022

거래 기록기술로서 디지털화폐

디지털지급수단과 플랫폼 04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각 경제주체의 욕망은 다양하고 상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거래 당사자 쌍방이 원하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상대방이 동시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화폐가 없다면 욕망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워진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현금화폐가 없는 경제에서 민준과 서현이라는 두 경제주체가 만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거래당사자간 향후 행위에 대한 약속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자. (만약 거래당사자가 서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고 향후 행위에 대한 이행 약속이 가능하다면 신용(Credit)이 거래의 매개체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신용 거래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준이 가지고 있는 재화는 사과이고 가지고 싶은 재화는 배이다. 반면 서현이 가지고 있는 재화는 배이고 가지고 싶은 재화는 수박이다. 이 경우 민준이 가지고 싶어 하는 배를 서현이 갖고 있으나 서현이 가지고 싶어 하는 수박은 민준이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결국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서현이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로 간 욕망이 동시에 일치하지 않은 데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의 이중적 일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 문제를 현금화폐가 해결할 수 있다. 현금화폐가 존재한다면 민준은 서현으로부터 배를 건네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현금화폐를 지급하면 된다. 그리고 나서 다른 거래를 통해 서현은 민준으로 받은 현금화폐를 본인이 원하는 수박과 교환하면 된다. 다시 말해 현금화폐는 현금화폐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각각의 경제주체들이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 그들 개인의 효용을 늘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현금화폐를 대신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은 바로 거래기록을 유지하고 모두가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기록기술(Public Record-Keeping Technology)”이다. 앞서 언급한 예에서 공공의 기록기술이 존재한다면 먼저 민준이 서현으로부터 받은 배에 대한 가치를 민준의 채무로, 그리고 서현의 채권으로 기록한다. 공공의 기록기술이므로 모두가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민준은 본인이 가진 사과를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서 채무를 해소(또는 이전)시키고, 서현은 본인이 원하는 수박을 건네받고 채권을 해소(또는 이전)시키면 앞서 화폐가 존재하는 경우의 경제적 자원배분과 동일한 자원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금화폐는 공공의 기록기술로 대체될 수 있고 반대로 공공의 기록기술도 현금화폐로 대체될 수 있다.


디지털원장(Digital Ledger)은 이러한 공공 기록기술의 대표적인 예이다. 디지털원장은 중앙집중원장(Centralized Ledger)이나 분산원장(Decentralized Ledger)으로 구현될 수 있다. 중앙집중원장은 단일 경제주체가 장부에 거래를 기록하고 유지하는 반면 분산원장은 복수의 경제주체가 장부에 거래를 기록하고 동일한 장부를 함께 유지한다. 중앙집중원장을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일상의 거래에서 빈번하게 현금화폐를 대신해 사용되고 있는 은행예금이나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같은 선불충전식 자산담보 디지털화폐들이다. 이들은 은행, 빅테크기업 등 발행주체의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되고 그 소유권과 소유권에 대한 변동사항이 각각이 운영하는 중앙집중원장에 기록된다. 이러한 정보는 이를 사용하는 경제주체들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우리가 각자의 모바일기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은행예금 잔액은 해당 은행의 중앙집중원장에 기록된 숫자이다. 한편 현금화폐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분산원장 기반 디지털화폐는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다만 자산담보 암호자산(Cryptoassets)인 테더(Tether)와 같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향후 거래의 매개체로서 사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앞서 언급한 자산담보 디지털화폐와 마찬가지로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되어 다른 암호자산에 비해 가격변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비자산담보 암호자산은 높은 가격변동성으로 상대적으로 그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스테이블코인을 현금화폐를 대신해서 지급하는 경우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그 거래결과가 기록되고 동일한 장부가 참여자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다만 자산담보 암호자산의 경우 발행주체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디지털화폐를 뒷받침하는 자산의 건전성이 필수적이다. 뒷받침하는 건전한 자산이 없는 경우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실질적인 구매력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현재 일상의 거래에서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화폐는 디지털원장으로 구현된 공공의 기록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거래결과를 실시간으로 디지털화하여 장부에 기록하고 이를 사용하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장부의 기록이 현금화폐를 대신하는 것이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가능해진 것이다. 


metaecon.io 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재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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