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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부른곰 Mar 11. 2020

2-2. 런던, 갤럭시 10에 없는 기능

어리버리한 왕이 만들어낸 걸작 - 마그나 카르타

다행이다. 둘째의 기침이 많이 잦아들었다.


런던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다. 모든 가족이 아침 6시에 가뿐하게 일어났다. 주말 우리 가족 평균 기상 시간이 9시 정도 되니, 둘째 날 시차 적응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둘째의 기침이 잦아들었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길을 나섰다. 날씨가 조금 찌뿌둥했지만 살갗에 닿는 공기가 상쾌했다.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9시에 런던 시내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8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한국 사람들과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이드에게 내 이름을 말하는데 우리 가족 이름이 없다. 어? 생각해 보니, 우리는 9시 약속이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조금 민망했다. 이 상황에 대해 우리 식구들은 별 말이 없다. 아빠의 이런 실수는 익숙한 것일까, 아니면 낯선 도시의 낯선 상황을 즐기는 것일까? 후자라고 믿는다.

 

큰 아들 1


9시부터 시내 투어를 했다. 많이 걷는 일정이어서 둘째가 자꾸 신경 쓰였지만, 잘 따라왔다. 오히려 너무 시끄럽게 뛰어다녀 걱정일 지경이었다. 다치니까 까불지 말고 다니라고 말했더니, 자기는 까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즐기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10살짜리 이 녀석, 입만 살아 있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피한다. 둘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다. 지금도 사진을 찍으려면 거래를 하거나 선물을 주어야 한다. 아니면 협박이라도 해야 마지못해 사진기 앞에서 자세를 취해 준다.


갤럭시 노트 10에는 없는 기능


중 1 큰 아이는 중간중간 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 중2 아이들에게 찾아온다는 그 병이 온 것일까? 초점 잃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사진과 무심하게 런던 거리를 지나가는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가급적 런던인 것이 티가 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어 간판이나 독특한 모양의 표지판이 자연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된단다. 시크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찍는 일은 어렵다고 말 하니, 차라리 자기 등 뒤의 모습을 찍어 달란다. 그래서 거리를 쳐다보는 큰 아이의 뒷모습만 수 십 장 찍었다. 나중에는 배경을 아웃포커싱으로 날리고 거리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뒷모습까지 찍었다.

 

아내의 요구는 더 노골적이었다. 하체는 길게, 얼굴은 작게, 배경은 또렷하게, 사각 턱은 없애고, 몸은 날씬하게 찍으라는데 그렇게 사진을 찍는 기능은 갤럭시 노트 10에 들어있지 않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수정해주기로 약속하고 대충 찍었다. 대충 찍은 그런 사진을 보면서도 아내는 만족해했다. 본판이 예쁘니, 사진도 예쁘단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수정하면 더 예뻐질 거라며 좋아했다. 본모습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런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예술 작품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예술의 피사체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아름다움이 결정되는 법이다. 같은 장소, 같은 인물이라도 더 멋지고 예쁘게 담으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예술이 표현될 수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는 것이고, 그걸 표현해 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걸 나한테 시키는 데 있다. 자기들이 직접 하던가. 왜 현실을 왜곡하는 초현실주의적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회의사당도 공사 중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닮았다


처음 본 런던 거리는 생각보다 더 고풍스러웠다. 아주 오래전 스쳐 지나가며 봤던 프랑스 파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국가의 뿌리가 같아서 일 것이다. 로마제국, 서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나라였던 데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비슷해져 버렸다. 긴 시간 동안 치고받고 싸우기도 많이 했고, 역사와 왕조도 복잡하게 얽혀 버렸다. 닮지 않을 수가 없다. 문득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던 영국왕 리처드 1세가 생각났다. 영국왕이지만 재위 내내 현재의 프랑스 지방에만 머물렀고, 영국에 있던 기간은 채 6개월이 되지 않았다.


사자왕 혹은 사자심왕이라 불리던 리처드 1세가 통치하던 시절, 영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영국 땅과 프랑스 땅 절반에 가까웠다. 프랑스 남부 영주의 딸인 어머니와 영국 왕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프랑스 땅 절반과 영국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자왕의 어머니는 전 프랑스 왕비이자, 영국 왕비라는 것. 프랑스 왕비였다가 이혼하고 영국 왕비가 된 여인이다. 프랑스 왕 루이 7세 사이에서 딸을 낳고, 영국 왕 헨리 2세와 결혼해서 7남매를 낳은 다산의 여인이기도 하다. 이 여인의 전남편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후(?)남편 헨리 2세는 이후 원수처럼 수 십 년간 싸우게 된다. 헨리 2세가 죽자 그의 아들 사자왕이 영국의 왕이 되지만, 역시 어머니의 전남편인 루이 7세와 원수지간이 되어 싸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혼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하여간 프랑스와 영국은 이들의 시대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쟁을 치렀고, 동맹을 맺었고, 화해를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닮은 것은 싸우면서 정들며 커온 두 나라의 얽힌 역사가 있어서 일 것이다. 당장 영국의 심장인 트라팔가 광장에 가 봐도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물리친 넬슨 제독의 동상과 프랑스 군의 대포를 녹여 만든 사자상이 놓여 있다. 2차 세계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은 영국인이 꼽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이지만,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임시 정부 대통령 드골과 협력하여 독일과 싸운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천 년 넘게 싸우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하면서 같이 닮아가며 성장한 나라들이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 다지만, 정말 많이 싸운 탓인지 진짜 큰 나라들이 되었다.


사자왕 이야기를 더 해 보자면, 사자왕이 욕먹어야 하는 인물임에도 칭송도 같이 받았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강력한 전투력이 한몫했다. 삼국지로 치면 여포와 제갈량이 합쳐진 인물이었고, 초한지로 치면 한신과 항우가 더해진 인물이었다. 싸우는 족족 이겼고 전략과 전술 모두 능통했다. 더불어 여포처럼 무식하게 백성들을 대했고, 항우처럼 자부심이 넘쳤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어머니 전남편인 루이 7세와 싸워 영국의 영토를 넓혔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게 붙잡혀 감옥에도 갔으며, 수많은 여자들을 겁탈해 원망이 자자했으며, 아버지 헨리 2세에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욕과 칭찬을 제대로 버무려 먹은 인물이었다. 뭐가 되었건 그는 영국 최고의 무장이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아마 1199년 43살에 일찍 죽지 않았다면, 영국의 역사는 다르게 써졌을 것이다.


어리버리한 왕이 만들어낸 걸작 - 마그나 카르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역사에서 더 중요한 인물은 용맹한 사자왕보다 그의 동생 못난이 존왕이다. 사자왕이 어이없이 병에 걸려 죽고, 동생인 존이 영국의 왕이 되었다. 깜냥이 되지 않아 주위의 지지를 받지 못한 존은 여기저기에 형에게 받은 영토도 바치고 돈도 바쳐서 간신히 왕이 된다. 존은 왕이 되기 전에도 아버지를 배신해서 아버지를 화병으로 죽게 만든 전력도 있고, 형인 리처드가 십자군 원정을 떠난 사이 배신했다가 형이 돌아오자 자기 부하들을 죽이고 형에게 항복한 쪼잔한 경력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왕이 되었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닥치는 대로 전쟁하고 닥치는 대로 졌다. 이 왕의 별명이 땅을 다 잘라먹었다고 해서 절지왕 혹은 자기 땅이 없다고 해서 무영토왕이다.


당연히 귀족들의 지지는 바닥을 기었고, 국민들의 지지는 바닥 밑의 지하세계에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시 전쟁하겠다고 세금을 더 걷으려 하니, 귀족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귀족들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존왕에게 쳐들어간다. 맨날 지던 존 왕이 귀족 한 테라고 이길 리가 없다. 또 진다. 귀족들은 존 왕을 죽일까 하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살려주고 대신에 서류 하나에 사인하게 한다. 존 왕이 1215년에 서명한 이 서류가 왕과 귀족, 의회, 교회의 관계에 대해 정리된 서류 – 우리에게는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였다. 왕이 함부로 세금을 걷을 수 없고 의회와 교회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자유인의 생명과 재산을 건드릴 수 없다는 –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긴 계약서였다. 왕의 권리와 귀족, 의회와 시민의 권리까지 담겨 있는 이 계약은 뒷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중요한 시작이 된다. 어리버리 왕이 어리버리하게 인생을 살다가 어리버리하게 서류에 사인했는데, 그게 역사의 가장 중요한 서류가 된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관람하는 영국의 멋진 의회 건물은 이 어리버리한 존왕의 서명으로 만들어낸 인류사의 걸작 - 마그나 카르타의 상징물이다.


라떼 생각나던 영국 왕실 근위대의 교대식


가이드로부터 상원과 하원, 새로 지은 의회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존왕이 생각났다. 그의 멍청함이 현시대 전 세계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역사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구 의회와 신 의회 사이에 있는 빅벤 앞으로 이동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빅벤은 공사 중이었다. 골재와 가림판으로 가려진 빅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가이드 말로는 150년 만의 공사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150년 동안 이렇게 공사할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거의 3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공사라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빅벤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하란다.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300년에 한 번 있을 뻔한 순간이라니.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부랴부랴 사진을 찍었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뭔가 당한 기분도 있다. 기분 탓이겠지.

 

공사 중인 빅벤 사진을 찍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영국 총리가 살고 있는 다우닝가 10번지를 지나 세인트제임시즈 공원에 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공원은 깨끗했고, 잘 관리되어 있었다. 공원에는 많은 새들이 있었는데 일부 새들은 왕실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관리되는 새 다리에는 왕실의 증표가 매달려 있어, 정기적으로 건강상태 등을 체크한다. 왕실의 새라니. 문득 개팔자에 이어, 새 팔자도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의 첫 가이드 투어라 지칠 만도 한데, 우리 집 아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들을 보며 재미있어했다. 사진도 찍고,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유럽에서의 둘째 날을 즐겼다. 본인 사진 찍히는 일에 경악하는 둘째는 새 사진만 200장 넘게 찍었다. 우리는 잠시 쉬다가, 근위대 교대식을 보러 갔다.


왕실의 새


근위대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들어가며 구경했고, 나름 포인트라는 곳에서 관람했지만, 명성만큼 볼 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와 열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절도 있는 교대 행사를 예상했지만, 영국 왕실 근위대 대원들은 키와 체형부터 제각각이라 내가 기대했던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다. 북한 인민군의 숨 막히는 제식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매스게임 정도의 일사불란함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뭐랄까 자유분방함마저 느껴지는 교대식이라고 할까.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을 한 부대에 넣고 같이 움직이다 보니 각자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음악도 규모도 제식도 부대마다 달라 통일감이 없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경복궁, 수원 행성, 전주 경기전 교대식이 훨씬 통일성도 있고, 볼거리도 많아 보였다. 하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오와 열이 중요한 경직된 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내 연식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떼는 말이야, 군대에서 저러면 안 되었거든. 오와 열이 딱딱 맞고, 팔과 다리의 각도까지 정확하게 통일되어야 했거든. 개인적으로는 라떼 생각이 많이 들었던 교대식이었다.


큰 아들 2


문득 근위대 보다, 근위대의 모자가 더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캐나다산 불곰 털로 제작되는 모자란다. 2000년대 초반 동물 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아 곰의 털이 아닌 화학섬유로 제작해봤지만 모양이 나오지 않아 다시 곰 털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관광 기념품으로 하나 구할까 싶어 알아보니 진짜 곰 털로 만든 모자는 살 수가 없었다. 아마존에서 가짜 털로 만든 근위대의 베어스킨 모자를 팔긴 했지만, 딱 봐도 허접해서 상품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냥 한번 쓰고 버리는 장난감 같았다. 설령 진짜 곰 털로 만든 모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점점 줄어드는 곰의 개체 수와 실제 곰 털의 가격을 생각하면 쉽게 구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피카딜리 서커스와 콜오브듀티와 영등위


트래팔가 광장에서 넬슨 제독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들었다. 넬슨 제독은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님과 같은 분이셨다.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죽어가지만, 적과 아군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전쟁을 지휘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확인한 직후 숨을 거둔다. 이 해전의 이름을 따서 트래팔가 광장이 지어졌고,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프랑스 군의 대포를 녹여 사자상이 만들어져 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을 침몰시킨 일본의 유명한 해군 사령관 도고는 “나를 넬슨과 비교할 수는 있어도, 감히 이순신 장군과는 비교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어도, 분명한 것은 넬슨은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할 수 있는 위대한 장군이라는 것이다. 노량해전으로 일본의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던 이순신 장군처럼, 넬슨 제독의 트레팔가의 해전으로 영국 침략이 좌절된다. 넬슨 제독이 맞았던 총알은 현재 윈저성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피카딜리 서커스로 이동한다고 하자, 큰 아들의 눈이 빛났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부터 콜오브듀티라는 게임을 했는데, 그 게임의 초반 무대가 피카딜리 서커스다. 콜오브듀티는 청불 게임이다. 중1에서 중2로 올라가는 아이가 하기에는 잔인한 장면이 많아 게임을 시켜 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렇지만 나 어렸을 적 생각해 보면 안 시켜줄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들이 모두 일을 나가셨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 몰래 더 잔인하고 더 야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경험들이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의 틀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내 개인적 경험이 올바른 기준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모의 고민과 경험이 아이의 현재를 재단하고 저울질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서 청불과 15세, 12세 등을 판단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영상물 등급 심의 규정일 것이다. 부모가 먼저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해 볼 수 있다면 부모의 규정에 따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영등위는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지만, 부모는 무한 책임이니까 말이다.


큰 아이가 피키딜리 서커스를 보자 제일 처음 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거리가 작네”였다. 나도 그 게임을 같이 했기 때문에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게임에서의 피카딜리 서커스와 똑같이 생겼지만, 게임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거리가 작았다. 게임이 실제 거리보다 더 화사한 느낌이었다. “그렇네. 저기쯤에 서점이 있어서 저격병이 있는데” 내가 한 건물을 가르치자 아들은 그 옆 건물로 내 손가락을 돌렸다. “저 건물이지. 그리고 그 옆에 테러범 몇 명이 숨어 있어” 큰 아이와 그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키득거렸다.


내가 40대 중반에 게임을 즐기는 이유


아이들과 부모와의 공감대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교나 설득으로 형성되지도 않을 것이다. 같이 놀이를 할 때, 같이 무언가를 즐길 때 서로 할 말이 생기고, 나눌 수 있는 것들 것들이 생겨난다. 큰 아이는 총 쏘는 FPS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같이 FPS를 즐기려고 하고 있다. 둘째는 마인크래프트와 오버워치를 좋아하다 보니, 큰 아들과 내가 둘째의 게임 성향에 맞추면서 즐길 때가 많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아진다. 가끔 아내도 초대해서 같이 게임을 하지만 아무래도 관심사가 많이 다르다 보니 자주 끼어들지는 않는다.


아내는 조금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아빠와 동생 이렇게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화가 가능한 사춘기라면 너무 멀리 가지 않는다. 설령 길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같이 힘을 합쳐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아내는 대화의 매개체로 게임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게임기를 구매해도, 게임을 잔뜩 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가족 간의 화합을 담당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하! 내가 게임을 즐기는 것은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다. 하하!!


쉬기로 했다.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에서 가이드와 헤어지고 어니스트 버거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시장이 반찬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쉑쉑 버거보다 더 맛났다. 가격은 쉑쉑버거보다 더 비쌌다.



패키지여행 온 것도 아니고 무리해서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가는 길에 레고 전문점에 들렀다. 런던에서만 파는 레고도 있고, 레고 전시물도 있어서 괜찮은 구경거리였다. 큰 아이는 레고로 만드는 런던 버스를 하나 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더니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좋아한다.


저녁 무렵까지 쉬다가 산책을 했다. 템즈강 근처 숙소라, 걸어서 템즈강을 지날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서 런던아이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었다. 막내는 여전히 사진 찍기를 거부했지만, 막내를 빼고 호호하하 하면서 가족사진을 찍으니 슬며시 다가와 자세를 취한다. 가족사진에 자기만 쏙 빠지기는 싫은가 보다.


아내와 나와서 장을 봐 호텔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작은 아이의 컨디션을 생각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편안한 장소를 찾게 된다. 마트 빵과 각종 주스, 엄마표 스파게티였지만, 우리 모두는 즐거워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비로 꽤 많이 예산을 잡아 놓았는데, 돈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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