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사항 Apr 29. 2024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단 한 번도 어제를 산 적도, 내일을 살아본 적도 없다.

'오늘' 일어난 일이 언제일지는 모르는 '오늘'과 연결됨을 확인한 작은 에피소드이다.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오늘'

3일 연속 출근한 후, 퇴근하는 나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맘처럼 빨리 걷지 못했다. 지하철역에서 잡으로 가동안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했는데, 4월 중순 이후로 짧은 안부전화지만 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이유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이다. 부모님의 "여보세요"의 "여보" 두 글자를 말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컨디션을 알아버리는데, 부모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힘없이 통화하느니 안부전화가 종종 생략되었다.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친한 샘들이랑 온라인으로 근황 토크를 나누었다. 읽고 만나기로 한 양도 읽지 못한 채였다. 요즘 책 읽기가 소홀해지고 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이것은 누구나 안다. 아무 생각 없이 책 읽는 시간도 갖고 싶은데, 수업 계획안과 관련된 책만 훑어보는 중이다. 눈앞에 닥친 일을 먼저 해내느라 약간 여유가 없다. (핑계겠지요?)


11시에 자려고 누웠다. 갑자기 물소리가 들린다. 아랫집이나 윗집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나 보다 추측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앞서 얘기한 내용은 '쓰러지듯' 잠든 나를 설명하는 빌드업이었다.)


4월 27일 아침 7시, 안방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다.

"쏴~"

'앗, 이게 무슨 소리지?' 변기 쪽이다.

그것만 확인 후 동거인을 급히 부른다(동거인은 맥가이버다).

"여기 이상해, 와봐 봐."

누워있던 동거인 벌떡 일어난다. 살펴보더니 변기 수조 안에서 하얀 플라스틱을 꺼낸다.

"이게 밸브가 닫혀야 물이 차는데, 얘 때문에(하얀 플라스틱) 밸브가 안 닫혀서 계속 물이 샜네. 이게 뭐지?" 한다.

"헉........"


도대체 언제부터 물이 샌 거지?

내가 새벽에 화장실에 한번 나? 음, 안  것 같다.

그럼 몇 시부터 이렇게 변기 물이 흐르고 있었지?

이를 어째.

온갖 걱정이 엄습한다.


"에고, 물이 얼마나 샜을까?"

"뭐, 한 2톤쯤?"

"겨우 2톤밖에 안될까? 흐미, 아까워서 어떡하지?"

다음 달 관리비에 나올 수도 요금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보다 그 많은 깨끗한 물이 그저 낭비된 게 너무너무 아깝다.

"뭐 할 수 없지. 어젯밤에 12시에 자러 오니 물소리가 나던데, 아랫집이나 윗집이 사용하나 보다 하고 그냥 잤네." 한다.


'앗! 그렇다면 막 자려고 누운 밤 11시에 갑자기 들린 물소리가 맞,,,,았다는 얘기? 아니 그때부터 라고요? 진짜 어쩌면 좋아.'

하지만, (비겁하게도) 11시에 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책임 회피성 반응이지 싶다(굳이 솔직하지 않았다).


동거인이 꺼낸 하얀 플라스틱은 변기 솔 통의 일부이다.

2월쯤인가 폭이 3~4센티미터 정도 되는 슬림한 변기 솔을 샀다. 솔을 끼울 수 있게 된 구조인데, 사용 전 며칠을 변기 뚜껑 위치에 눕혀 둔 적이 있다.

어느 날 외출하고 오니 변기 물탱크에 끼우는 통이 빠져있었다. 물탱크 안에서 통을 뺐는데(솔과 통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다), 바닥에 닿는 부분이 안에 들어있었다는 걸 지금 안거다. 자세히 살피지 않은 탓이다.

흑, 이 행동이 그 많은 물을 낭비하게 한 결과라고요?


2년 전쯤의 일이다.

안방 화장실 변기 뚜껑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장창 탕!"

뚜껑이 깨지기 직전 아주 예전 일로 동거인에게 잠시 화가 난 상태였었는데, 우렁차게 깨지는 소리가 오히려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변기 물탱크 뚜껑을 검색하던 동거인이 (지금 기억으로는) 8만 원 정도라 했다.

내가 깨뜨려서인지, 그 순간 난 아주 너그러웠다.

"뚜껑 없이 써도 되지 않아?"


우리 집에서는 두 남자는 거실 쪽 화장실을 쓰고 난 혼자 안방 화장실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변기 물탱크 뚜껑이 없이 지내기 시작했다. 2년 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아무도 몰랐다. 다음 달이 되기 전까지는 낭비된 물 사용량을 아무도 모른다.


세 명의 가족이 사는 우리 집 관리비를 살펴보면, 전기 사용량도 물 사용량도 동일 면적 평균에 비해 적은 편이라 항상 뿌듯해했다. 다음 달, 관리비 고지서를 받는다면 아주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이 일을 경험하고 나니 갑자기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 떠오른다.

과거에 내가 한 일이 점이 되어 서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 인생의 다양한 점들을 연결시켜 볼 수는 없다.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오로지 과거를 돌아보며 그런 점들을 연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유명한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변기 물탱크 뚜껑 없음으로 인해 언젠가 엄청난 물 낭비를 예상할 수 있었다면 8만 원 들여서라도 뚜껑을 구입했을 것이다. 예상할 수 없는 일에는 거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 기후 재난 시대,  예상 시나리오가 들려온다. 임계점 1.5도부터 6도 상승까지. '탄소중립'이다 뭐다 떠들썩하기만 하지 별다른 움직임이 안 보인다. 요 며칠 동안 중국에는 '백 년'만의 대홍수가 있었고, 어제는 토네이도 현상까지 있었다. 한 여름도 아닌 브라질의 체감온도는 섭씨 62도가 넘었다. 단순히 "날씨가 미쳤다"라는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마구잡이식 활동에 분노한 지구의 경고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도 나중의 어떤 큰 일과 점으로 연결되어 있을 테다. 시간이 흘러 그 연결점을 확인하고서야 우리는 수긍할지도 모르겠다. 궁금하다. 지금 우리 삶의 방식이 지구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진짜 아무도 모를까?

작가의 이전글 '용기'내기가 당연해진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