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푸른 Dec 30. 2023

안녕, 나의 아저씨

배우 이선균을 추모하며

배우 이선균의 논란이 처음 있었을 때, 누굴 해친 것도 아닌데 저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했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무심히 지냈다. 하지만 자극적인 제목을 단 유튜브 썸네일이 자주 올라오자 관음증적 호기심이 일어 클릭하게 되었다.


그의 사생활 얘기 끝에 유투버는 분노를 뿜으며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엑스트라는 회당 얼마를 받는데 그 수**배를 받는 배우는 이런 행동을 한다. 이래서 되겠나.'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 배우의 사생활도, 스스로 판관 자리에 앉아 배우를 물어뜯는 유투버도, 소득격차 분풀이를 애꿎은 배우에게 하는 것까지. 그렇게 화낼 일인가. 하면서도 판관 자리에 나도 슬며시 걸터앉았다. 좀 너무하긴 하네. 그리고 잊고 있었다.


12월 27일, 그는 고인이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알 필요 없는 내용을 알았다는 걸. 범죄와 상관없는 사생활을 경찰은 왜 흘렸을까. 범죄 혐의가 없는데 포토라인에 세우고 왜 망신을 줬을까. 


죽기 전까지 그가 어떤 심경이었을지, 그가 연기한 박동훈을 봤기에 보이는 것 같다.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지은 분)은 동훈(이선균 분)이 뇌물을 받을 뻔했던 사실로 협박한다. 천만 원을 내놓으라는 말에 지안에게 끌려다니다가 손해를 무릅쓰고 월부로 갚겠다고 한다. 지안은 동훈에게 기습 키스를 해 사진을 찍고, 스캔들을 만들려 하지만 무산된다. 사진을 본 동훈의 후배가 의심하면서. 바르게 살아온 박동훈 부장님은 그럴 리 없다고.


배우도 믿고 싶었을 것 같다. 정공법을 쓰면 명예를 회복하고 권선징악을 이룩할 수 있을 거라고.


언젠가 본 배우의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극과 극 중 인물은 사실 판타지라고 했다. 

극 중에서 누구보다 진짜 같았던 그는 현실이 판타지가 될 수 없음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 같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은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다. 미국에 유학가 있는 아들이 있고,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 내색하지 않는다. 결국 불륜은 드러나고, 아내는 아들이 있는 미국에 잠시 가있겠다고 한다. 텅 빈 집안에서 가족사진을 마주 보고 혼자 밥을 먹던 동훈은 갑자기 울음이 북받쳐 오른다. 밥맛이 떨어져 상을 치우고, 세수를 해 눈물을 막아보려 한다. TV를 보며 딴생각을 하려 해 봐도 눈물과 얼굴의 떨림을 막을 수 없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니까. 나도 모르면 좋았겠지만 참아지지 않는 이 눈물은 나만 알도록 하자. 혼자 있는데도 조용히 흐느낀다. 


온국민이 내 치부를 아는 상황에 배우는 조용히 흐느낄 틈은 있었을까.


배우의 장례식에는 그를 아끼는 동료들이 많이들 찾아왔다. 다들 잘 버티길 마음속으로 바랐을 텐데. 나락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보다 모른 척 기다려주고 싶어서 마지막 인사도 못 건넨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못 건낼 인사를 남긴다.


배우님 연기로 많이 위로받았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미안해요. 정말 그리울 거예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