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을 추모하며
배우 이선균의 논란이 처음 있었을 때, 누굴 해친 것도 아닌데 저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했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무심히 지냈다. 하지만 자극적인 제목을 단 유튜브 썸네일이 자주 올라오자 관음증적 호기심이 일어 클릭하게 되었다.
그의 사생활 얘기 끝에 유투버는 분노를 뿜으며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엑스트라는 회당 얼마를 받는데 그 수**배를 받는 배우는 이런 행동을 한다. 이래서 되겠나.'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 배우의 사생활도, 스스로 판관 자리에 앉아 배우를 물어뜯는 유투버도, 소득격차 분풀이를 애꿎은 배우에게 하는 것까지. 그렇게 화낼 일인가. 하면서도 판관 자리에 나도 슬며시 걸터앉았다. 좀 너무하긴 하네. 그리고 잊고 있었다.
12월 27일, 그는 고인이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알 필요 없는 내용을 알았다는 걸. 범죄와 상관없는 사생활을 경찰은 왜 흘렸을까. 범죄 혐의가 없는데 포토라인에 세우고 왜 망신을 줬을까.
죽기 전까지 그가 어떤 심경이었을지, 그가 연기한 박동훈을 봤기에 보이는 것 같다.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지은 분)은 동훈(이선균 분)이 뇌물을 받을 뻔했던 사실로 협박한다. 천만 원을 내놓으라는 말에 지안에게 끌려다니다가 손해를 무릅쓰고 월부로 갚겠다고 한다. 지안은 동훈에게 기습 키스를 해 사진을 찍고, 스캔들을 만들려 하지만 무산된다. 사진을 본 동훈의 후배가 의심하면서. 바르게 살아온 박동훈 부장님은 그럴 리 없다고.
배우도 믿고 싶었을 것 같다. 정공법을 쓰면 명예를 회복하고 권선징악을 이룩할 수 있을 거라고.
언젠가 본 배우의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극과 극 중 인물은 사실 판타지라고 했다.
극 중에서 누구보다 진짜 같았던 그는 현실이 판타지가 될 수 없음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 같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은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다. 미국에 유학가 있는 아들이 있고,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 내색하지 않는다. 결국 불륜은 드러나고, 아내는 아들이 있는 미국에 잠시 가있겠다고 한다. 텅 빈 집안에서 가족사진을 마주 보고 혼자 밥을 먹던 동훈은 갑자기 울음이 북받쳐 오른다. 밥맛이 떨어져 상을 치우고, 세수를 해 눈물을 막아보려 한다. TV를 보며 딴생각을 하려 해 봐도 눈물과 얼굴의 떨림을 막을 수 없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니까. 나도 모르면 좋았겠지만 참아지지 않는 이 눈물은 나만 알도록 하자. 혼자 있는데도 조용히 흐느낀다.
온국민이 내 치부를 아는 상황에 배우는 조용히 흐느낄 틈은 있었을까.
배우의 장례식에는 그를 아끼는 동료들이 많이들 찾아왔다. 다들 잘 버티길 마음속으로 바랐을 텐데. 나락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보다 모른 척 기다려주고 싶어서 마지막 인사도 못 건넨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못 건낼 인사를 남긴다.
배우님 연기로 많이 위로받았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미안해요. 정말 그리울 거예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