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간 주 4시간씩 회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전공필수 3학점 정도의 난이도다. 수료하려면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공부머리를 안 쓴지 오래고, 공부에 열등감이 아직까지도 있어서 얼마 안되는 가용 시간 대부분을 공부에 꼴아박기로 한다. 대부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간간히 땡땡이를 쳤다. 유투브에서 쉬운 설명을 찾다가 다른 영상으로 새고,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안 보던 멜로 드라마를 봤다. (눈물의 여왕, 왜 이렇게 재밌지?) 그러려니 하던 먼지가 갑자기 성가셔서 빗자루질을 시작해 대청소로 끝내고, 공부 롱런을 위해 체력을 길러야한다며 집 밖으로 나가 뛰었다. 시험을 앞두니 공부 빼고 다 재밌다. 하지만 글쓰기는 안 했다.
다른 목적을 일순위에 둔 마음상태로 글쓰기를 할 순 없다. 공부말고 딴 짓에 들인 시간에 글을 쓰면 되지 않냐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아니 글쓰기는 할 수 없는게 맞다. 글쓰기는 의지를 요한다. 아무 자극 없는 빈 화면과 마주앉아 나의 과거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내 식대로 해석하고, 말이 되게 말을 짓는 이 과정을 어떻게 마음 먹지 않고 하겠나? 일과 집과 자식이 있으면 정말이지 시간이 없다. 여유있게 집중할 덩어리 시간이. 하나에만 겨우 마음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 글쓰기에 마음을 주는 건 생업과 관련된 의무를 적극적으로 저버리겠다는 선언이다. 생활에 유용한 활동이나 즉각적인 유혹에 넘어가는 것에는 차라리 너그러울 수 있다. 필요는 충족해야 하고 끌리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원하는 건 접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는 몇 달을 지냈다. 외면을 하는 것은 외면을 당하는 것이기도 해서 이중으로 서운한 나날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글쓰기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이를 갈았다. 원하는 것을 누르고 있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꾸역꾸역 공부를 했다. 시간을 많이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드디어 글을 써도 된다. 근데 뭘 쓰지? 글쓰기를 엄청 고대했는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네? 왜 쓰고 싶었지? 뭐지? 그렇게 원했는데 그렇게 원했음을 의아해하고 있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으니 무엇을 썼었나 생각해본다. 한동안 SNS에 짧은 글을 올렸다. 주로 내게 진한 감정을 일으킨 과거와 요즘의 사건에 관해서다. 그 일을 재구성하고 감정의 이유를 납득이 가게 쓴다. 때로 내 판단을 덧붙인다. 내 판단이 틀림없게 하기 위해 사실을 각색하기도 한다. 독자가 내 편이 되길 은근히 바란다. 교묘한 기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도 내 편을 들어달라 할 수 없겠다는 자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 구라를 세게 쳐야 하나 아님 쩨쩨한 인성을 밝혀야 하나 고민을 한다. 그럴듯한 구라를 문맥과 의도에 맞게 만들어 보자니 두뇌 성능이 딸리고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 내 치부를 밝히더라도 겪은 일을 짜임새있게 정리하고 싶다. 그럼 ‘ 나는 이따위지만 괜찮아요’ 식의 글이 된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술하려 애썼다.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글다운 글을 쓰려 애썼다. 내 못남이 드러나더라도 최대한 진솔하려고 노력했다. 꾸준히 써 본 결과, 차차 내 글이 남에게 닿고 있음을 실감했다. 피상적인 대화도 안 하게 된지 오랜 인연들과 깊은 이해를 주고 받았다. 모난 나도 수용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모난 것도 아니다. 남들도 모나지 않은 모난 구석들이 있다. 그런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왔다. 어떤 해소가 있었다.
그 후, 글쓰기와 멀어져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원하는 글의 방향을 조정한 듯 하다. 뭘 쓸지 모르겠던 건 이전 패턴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전엔 글쓰기로 남의 인정을 원했지만 이젠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가 그렇게 바꿨다. 이젠 남의 흥미를 끌기 위한 자기팔이를 하고 싶지 않다. 내 편을 만드는 노력도 접는다. 혼자 떠드는 글에서 나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내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읽히는 것에 족한다.
해왔지만 하고싶지 않은 방식을 알았다. 안 하던 방식으로 쓸 수 있을까? 의심이 되면서도 여전히 쓰고 싶다. 남에게 기대지 않는, 글쓰기의 다른 기쁨을 생각해본다. 글의 처음에서 끝까지 내가 주도하는 장악감, 스스로를 살피는 감미로움, 글쓰기 전에는 알 듯 말 듯한 메시지가 명료한 문장이 되어 증명하는 깨달음. 나를 지키면서 나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글의 세계로 넘어간다. 뭘 쓸지도 모르겠으면서 마냥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