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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Aug 10. 2024

하마글방 후기

하마글방 와라클 2기에 참여했다. 와라클은 와사비 라이팅 클럽의 준말이다. 클럽은 100여 명의 참가자들과 세 명의 지기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5주 간 4번의 마감을 한다. 마감 후, 여섯 명 씩 나누어 서로의 글에 300자 내외의 피드백을 남긴다. 할당된 피드백을 남기지 않으면 내게 온 피드백을 읽을 수 없다. 합평 시간은 따로 없고 지기들도 참가자 글에 피드백하지 않는다. 


지기는 월요일과 금요일에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편지와 글귀를 보내준다. 주기적으로 랜선 작업실을 운영하고 깜짝 이벤트도 연다. 필수 참여는 아니다. 내가 있을 때엔 영화감상, 일일 합평, 차담의 이벤트가 있었다. 클럽원에게만 열려있는 이벤트는 느슨한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마감을 마감답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소속감이 있으면 약속이 무거워지니까. 지기들은 온라인임에도 참가자를 정성껏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션이라는 생소한 협업툴에 글과 피드백을 남기고, 온라인 이벤트에 참가하는 과정은 수없는 질의응답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지기들은 늘 재빠르고 친절하게 응해주셨다. 


글방을 겪어보고 싶었던 나에게 이 기획은 딱이었다. 다른 글방은 보통 합평이 있다. 매주 두 시간 정도 모여 서로가 쓴 글을 면밀히 읽고 평가하는 것이다. 온라인이라 하더라도 바쁜 일상과 시차 때문에 참석 자체가 어렵고, 남의 글에 깊은 성의를 보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합평 시간이 없는 와라클이 오히려 좋았다. 와라클은 모임에 소속되기 위한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글을 쓰게 만드는 동기를 최대한으로 늘렸다. 지기는 글을 오래 써보았기 때문에 글 쓰는데 도움이 될 조건을 잘 추려낸 것 같다. 동료와 마감과 독려 편지로. 나처럼 이 순간 마감을 향하는 동료가 있다는 동질감, 내 글이 남에게 닿을 것이란 약속, 글 쓰는 나를 추켜주는 지기가 있어서 빈 화면으로 주저 없이 다이빙할 수 있었다.


첫 주에 글을 마감하면서 자유시간을 탈탈 털어 썼다. 읽힐 약속이 있는 글쓰기는 실전 경기 같아서, 마감 전까지 계속 달리게 되었다. 마감은 남과의 약속이므로 끝이 있다.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마감이 글을 쓴다는 작가들의 말 뜻을 실감했다. 글을 써내니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피드백에 기대가 생겼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글을 자세히 읽고, 좋고 나쁨을 곰곰이 생각해 정제된 글로 남기는 과정 전부. 팩트가 폭력이 아닌 응원이 되기 위해서는 알지 못하는 글쓴이를 좋아해야만 한다. 좋아하자. 좋아하자.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며 적었다. 그럼에도 나중엔 의무감이 들어서 마지막 피드백은 좀 딱딱해졌다. '작가를 모르는데 맥락에 불필요한 작가의 세부 정보들은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 같아요.' 이 피드백은 보낸 동시에 내게 남았다. 내 얘기를 쓸 때마다 '독자는 안 궁금해하거든?' 하고 귓등에서 쫑알댄다. 틀린 피드백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피드백이 담긴 냉소가 나를 향한다. 그래서 남에게 되도록 친절해야 하나 보다. 불친절했던 나는 잊히지 않으니까.


나에게 온 피드백을 열람하는 날, 잽싸게 들어가 읽었다. 장점이 많았다. 잘 읽혔다, 공감이 되었다, 어떤 표현이 좋았다, 등등. 추가되었으면 하는 설명, 핀트가 안 맞는 논리를 상냥하게 지적받기도 했다. 몇 문장이어도 읽음을 증명하는 피드백을 읽으니 마음이 훈훈했다. 피드백의 내용 자체는 내 글에 대한 내 평가의 단출하고 긍정편향된 버전이었다. 내 글을 한 번 읽은 독자와 퇴고하느라 수십 번 읽은 내가 같은 깊이의 평가를 할 순 없을 것이다. 장점이 주로 언급되어 기쁠 뻔 했지만 냉정히 보면 그 편이 안전하고, 조금씩 인류애(?)를 첨가해서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글이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글에 대한 내 감을 믿어도 되겠다는 깨달음은 수확이었다. 


지기의 편지 얘기도 하고 싶다. 클럽의 대장인 하미나 작가가 주로 보냈다. 잘 쓰기 위해선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고, 불완전해도 계속 쓰자고, 쓰고 있다면 잘하는 거라고 응원해 주었다. 덕분에 지금 글이나 쓰고 있을 때인가 하는 자기 의심을 덜고 매진할 수 있었다. 지기의 편지에는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오래 고민하고 쓴 작가의 글이라 수긍하고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계속 클럽 활동을 이어가면 좋았겠지만 세 번의 마감과 두 번의 피드백을 하고 그만두었다. 글쓰기에 전념하기엔 먹고사니즘이 더 중요했다. 일에서도 자기 의심이 강한 나는 시간이라도 바쳐야 마음이 덜 불편하다. 언젠가는 글쓰기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 글 쓰는 재미를 한 번 알았으면 더 이상 모를 수 없으니까. 클럽으로 돌아가 박력 있게 쓰던, 혼자 마감을 만들어서 쓰던, 쓰는 나가 메인이 되는 날을 상상한다. 당분간은 부캐 자격을 유지해 보자.


Image by annmariephotography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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