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화면에 글을 쓰면 대충 쓰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블로그는 안 그랬다. 블로그는 나 혼자 지껄이는 느낌으로 막 쓴 일기를 주저 없이 올렸다. 브런치나 블로그에서나 내 글은 보통 조회수가 낮다. 그런데 브런치는 독자 눈치를 보게 되고 블로그는 버젓한 조회수도 그저 지나가는 행인취급을 하게 된단 말이지. 아무래도 브런치는 글을 위한 플랫폼이라 진지해지는 것 같다. 글이 읽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된다. 요정처럼 느껴지는 독자에게 좋은 글을 바치고 싶고, 동시에 가혹한 평가를 받을까 봐도 잘 쓰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야심차게 글을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기발하고 나만의 것 같아서 글로 완성해보고 싶던 것. 생각과 다르게 글을 쓰다가 꼭 막힌다. 그럼 그 즈음 떠오른 또다른 기발한 소재로 새 글을 쓴다. 또 막힌다. 또 다른 소재로 이동... 의 도돌이표. 작가의 서랍에 묻혀있는 글이 한 다스다. 이러다 언제 글을 완성할지.
글 쓰는 기세도 예전 같지 않다. 글에 재미를 처음 느꼈을 때엔 나 잘난 맛에 쓰느라 죽죽 써 내려갔다. 이젠 부끄러워서 못 쓰겠다. 필력의 부족, 생각의 부족, 인품의 부족이 글에 여실히 드러나는 걸 알아서다. 예전에 만족해서 썼던 글을 보면 나의 교만이 보인다. 글 좀 쓴다는, 이 정도 문제의식이 있다는, 이만큼 행동하며 산다는 뽐냄과 뽐내고 싶음이 너무 보인다. 숨긴다고 숨겼는데도 보인다.
더 흑역사를 만들기 싫어서 주저하더보니 글을 시작도 못하고, 망설이다 보니 글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일상이 헛헛하다. 불과 한 달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짚을 수가 없다. 좋은 글을 쓰겠다고 글을 안 쓰니 내 삶은 지난 한 달 전처럼 흐릿해진다. 되돌아보기도 건덕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과거의 내가 더 과거의 내 교만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래서 뭐든 써보려고 한다. 쓰다 보면 썼던 내가 글에 드러날 것이다. 그럼 읽은 내가 쓸 나를 교정하겠지. 글솜씨든 인품이든 생활이든. 교정된 내가 찔끔 나은 글을 쓰고, 그 글이 나를 교정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좋은 글을 쓸지도 모른다. 덤으로 좋은 사람이 될지도? 그러니까 그냥 써보자. 글과 나의 선순환 수레바퀴를 용기내어 굴려본다.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