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위의 어린이(유괴)

by 써니짱

대구를 대프리카라고도 하지만 진짜로 더웠다.

이럴 때는 어디 시원한 계곡에 들어가 쉬었다가 해가 져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근무중에 관내를 떠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또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해가 서산에 걸치지도 안해서 그저 무료한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였다는데 17:00경 무선 호출기인 삐삐에 ‘49498282’ 숫자가 들어와 사무실 당직실로 전화를 해보니 “어린이 납치 사건이 발생했으니 내당 1동 파출소로 집결하라’라는 지시였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 일찍 도착하면 빨리 갈수록 험한 일(?)을 시키기 때문에 오토바이 기름을 넣으며 조금은 느긋하게(?) 도착했다.


형사들이 거의 도착했다고 본 형사계장이 파출소장에게 사건 개요에 대하여 설명하라고 하자 파출소장은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다가 납치 의심이 되는 범죄가 발생하였다며 신고 상황을 이야기했다.


설명을 들어 본 즉,


40대로 추정하는 남자가 납치된 아이의 집으로 전화가 와서

‘거기 강문현 집입니까?’

‘예! 맞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문현이 집에 있습니까?’

‘아니 없는데요’


‘우리가 문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문현이를 당신들이 왜 데리고 있어요?’


‘문현이를 데리고 있으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돈을 3천만 원 준비해서 있으면 다시 전화할게요’라며 전화를 끊어 문현이의 엄마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문현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문현이 아버지 큰일 났어요’

‘뭐가?’


‘누가 문현이를 데리고 있는데 돈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뭐라고? 내가 집으로 갈게’


전화를 끊고 바로 집으로 온 문현이 아버지 강상구 (당시 42세)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먼저 동네를 다니며 문현이 친구들을 만나 보고, 태권도 학원이랑 영어 학원에 들러 문현이를 찾았으나 없었다.


오전에 본 친구들은 있는데 오후부터는 같이 있는 친구를 찾을 수 없어서 가까운 내당1동 파출소에 전화 내용대로 납치 신고를 하고 집으로 전화가 온다고 해서 집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납치된 아이의 아버지 강상구는 조그마한 연사 공장을 하는데 그리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어린애를 납치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우선 범인을 특정해야 하기에 아버지의 공장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고 집과 공장에 전화국 협조를 얻어 발신지 추적과 집 전화에는 녹음 장치를 시작했다.


지금은 돈 가방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하여 GPS로 추적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장치가 없어서 약속 장소 주변에 변장하여 잠복을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문현이네 집은 내당1동 주택가에 있는데 큰 부자는 아니었고 일하는 사람 6명을 데리고 일하는 조그만 공장이었고, 문현이는 아이 둘 중 큰 아이였고 다른 아이들보다 좀 고급스럽고 좋은 옷을 입혀 다녀서 아마 부잣집 아이로 보고 납치를 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 1시간이 지난 뒤 다시 집으로 전화가 왔는데 경찰에 신고하고 집에 있던 문현이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누구십니까?’


‘나는 문현이 아버지인데요.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좀 전에 돈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돈은 준비가 되었나요?’


‘돈이 일이 십만 원도 아니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급히 준비를 하나요?’

‘돈이 준비 안된다면 앞으로 전화하지 안 하겠습니다’


‘여보세요 그러지 마시고 시간을 주셔야지요’

‘그럼 내일 아침 10시에 전화하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세요. 신고하면 문현이는 못 보는 줄 아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국에서 매복하던 형사에게 연락을 취해서 전화 온 곳을 역 발신으로 찾아보라고 했는데 북구 칠성동 칠성시장에 있는 공중전화로 확인이 되었다.


급하게 형사들을 보냈는데, 가보니 이미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을 하였으나 워낙 큰 시장이라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누군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달리 수사를 할 게 없어서 문현이 집안 전화기와 전화국에 형사들이 교대하며 붙어 있고 나머지는 내당1동 파출소와 서부경찰서 관내 지역마다 대기를 시켰고 경찰청 강력계 지시로 각 경찰서 형사와 파출소에도 출동 대기토록 조치했다.


밤사이에 연락이 없었다.


다음날, 연락 올 것을 대비해서 전날과 같이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대구 시내 경찰서에 비상령을 내리고 각 공중전화 주변에 파출소 직원과 형사들, 나머지 정보, 대공 형사들까지 동원해서 대기 상태였다.


우리 조는 문현이 집 전화받는 교대 조에 편성되어 무작정 전화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 추적해야 될 상황이 벌어지면 즉시 갈 수 있도록 친구에게서 그 당시에는 귀하였던 250cc 오토바이를 빌려 두고 있었다.(교통 싸이카를 한번 타 보려고 2종 소형 면허증은 취득해 두었었다.)


아침 10시가 되어 문현이 집으로 다시 연락해 오기를 바짝 긴장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전화가 와서


‘여보세요?’

‘예! 문현이 집입니다.’


‘돈은 준비하였나요?’


‘예 준비했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안 했지요?’


‘안 했습니다. 문현이는 잘 있지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돈이나 가져 오이소’


‘어디로 가면 됩니까?’

‘12시에 동대구역 대합실로 들어와 서울행 새마을호 승차권 발매하는 곳으로 나오시면 된다.’ 하고 전화를 끊어 즉시 전화국 기계실에 있는 추적팀에서 역추적하니 시내 경북대학교 응급실 앞 공중전화였다.


무전으로 연락이 와서 중구청 옆에 있던 마 형사 조는 5분 정도 지나 공중전화에 도착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주변을 살펴보고 탐문을 해도 오리무중이라 실패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제는 약속 장소에 나가서 대면하는 방법이 남았다.


약속 장소인 동대구 역 주변에 형사들을 약도를 보며 배치가 되고 집에 있던 우리 조는 동대구역 앞 택시 승강장에 대기하라는 지시받고 10:30경 동대구 역 앞 택시 승강장에 승객을 가장하여 잠복을 시작하고 나 역시 빌린 오토바이로 대기하면서 나타나기만 하면 따라가 내가 잡을 것이라 마음을 먹었다.


현금 3천만 원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혹시 아이도 못 찾고 돈을 빼앗길 수가 있어서 전부 흰 종이에 앞, 뒤에만 만 원권으로 돈다발을 만들어 007 가방에 넣어 준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확인해보니 어디에선가 형사들이 중간중간 잠복을 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고 동대구역 대기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놈 들은 우리를 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놈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라 게임 자체가 안 되는 것이었고 우리는 참고 참는 인내의 수사를 해야 했다.


12시가 다 되어 철수 명령을 받고 철수하여 긴긴 대기 시간이 들어갔다.

일단 처음 접선은 실패했고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범인들이 다시 전화 오기를 기다렸는데 저녁 7시가 되어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당신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동대구역 옆에 형사들이 좍 깔리도록 했어.. 이제 아들 얼굴은 못 보는 줄 아시오.’


‘아이고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에 아이가 없어서 애를 찾으려고 신고를 했었지 일부로 연락한 것은 아녔습니다. 지금부터 전화받는 것은 형사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겠습니다.’


‘믿어도 됩니까?’

‘내 아이를 살려야 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럼 내일 아침 11시에 영덕 군청 앞 조일 다방으로 돈을 가지고 오시오.’

' 뭐라고요? 영덕으로요? 돈은 준비해서 갑니다만 우리 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문현이는 우리가 잘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문현이 목소리라도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통화가 길면 우리가 추적하는 줄 알고 하는 행동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즉시 전화를 역추적해 보니 포항 버스 터미널 공중전화였다, 대구에서 포항까지 빨리 가봐야 한 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인데 우리가 갈 수가 없어서 즉시 포항경찰서에 공조 요청을 하였지만, CCTV가 없는 시대라 시간이 지나서 확인 불가 통보가 왔다.


피의자들이 대구를 떠나 경북으로 돌아다니면 거리가 멀어 우리가 수사하는데 엄청 애로가 있는데 걱정이었다.


아이를 온전하게 찾아야 우리는 본전인데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어 협박하는 자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계장의 지시로 전부 다시 경찰서에 집결해서 지도를 보아 가면서 작전을 짰다.

우선 영덕이 고향이거나 주변에 살았던 형사들을 먼저 차출을 하여 보니 포항과 영덕, 울진 출신 형사들이 3명이 나왔다.


동부경찰서에는 포항 쪽 형사들이 많은데 서부경찰서에는 경북 북부 쪽 출신 형사들이 많았다. 3명을 먼저 검거 조에 배치하고, 주변 지역에 대하여 지도를 걸어 놓고 상황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영덕은 작은 시골이라 형사들이 많이 움직이면 어떻게 표시가 나도 표시가 나게 되어 있어 지휘부에서는 난감했다.


영덕경찰서에 공조 수사를 요청하려고 해도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할 일인데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아 우리 형사들로만 하기로 했다.


한 경찰서에 여경이 2~3명 있던 시절이라 여경을 동원하여 부부로 위장시켜 투입해야 하는데 형사 서무에서 1명은 동원할 수 있지만, 민원실 여경은 아이를 낳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곤란하였다.


달리 방법이 없어 협조를 구하여 다음 날 아침 7시에 내가 소속된 반과 함께 형사 2개 반과 여경 2명을 동원하여 출발했다.


문현이 아버지 옆에는 여경을 문현이 엄마같이 위장하고 있었고, 다른 조들은 허름한 옷으로 위장은 한다고 했어도 어딘가 표시가 나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계장이 포항 위 청하가 고향인 강 형사에게 어디 가서라도 농사용 화물차를 구하라고 하여 강 형사는 청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에게 농사용 화물차량과 그럴싸한 옷을 빌려 입고 왔다. 천생 농사꾼의 모습이었다.


문현이 아버지 조가 10:30경 영덕 조일 다방에 도착하여 기다리니 다방으로 전화가 와서 문현이 아버지 보고 차를 타고 안동 쪽으로 오다가 지품면사무소 앞 영 다방으로 오라고 다시 연락이 왔다.


영 다방으로 가면서 형사 1개 조가 미리 1킬로 앞서서 가고 문현이 아버지가 가고 뒤따라 연인으로 가장한 형사 1개 조가 붙고 그 뒤에 1개 반이 따라갔다.


영덕에서 안동으로 가는 외길이라 멀리에서도 관찰을 할 수 있는 도로였지만 거리를 두고 가도 우리는 무전기를 가지고 있어서 소통될 수 있었고 또, 외길이면 우리가 검거하는데 더 좋은 조건이라 생각을 했다.


영 다방에 도착하니 다시 전화가 와서 영해에 있는 영해 아산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형사들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돈을 안전하게 전달받기 위한 작전인 것 같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다시 연락을 취하면서 전원 영해에 있는 아산병원으로 진로를 바꾸어 추적을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1개 팀은 아산병원에 가기 전 인근에 있는 축산면 사무소에 들러 협조를 구한 후 면사무소 여직원과 직원들로 위장해서 병원 점검차 나온 것같이 하면서 병원 안에 투입하고 문현이 아버지 조는 가방을 들고 병원 안내실로 들어가고 연인 조는 환자같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멀리서부터 동향을 감시하고 있던 범인들은 문현이 아버지가 들어가자 주범 격인 박태원 (당시 45세)이 다가와 ‘잠시 이야기합시다 “라며 팔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여경이 '당신 누구냐?'라고 소리를 치고 검거하려 하자 도망하는 것을 대기 중인 형사들이 잡고, 옆에 있다가 도망치는 1명을 응급실로 투입된 우리 조가 검거했다.


그러나 먼저 문현이의 안전이 궁금하여

‘문현이는 어디 있나? 빨리 말해’

‘문현이는 성서 갈산동 공동묘지에 있다’라고 하여 죽인 후 공동묘지에 묻은 줄 알고 전부 깜짝 놀랐다.


'죽었나?, 살았나?'

'죽지는 안 했고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계장은 급히 대구 본부에 연락했다.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장, 과장은 즉시 전경 1개 중대를 동원하고 대구에 있던 서부경찰서 형사 3개 반을 투입 후 공동묘지 전체를 수색하여 한 시간 정도 지나 저녁 무렵에 공동묘지 중간쯤 소나무에 묶여 있던 문현이를 구출했다.


소나무에 묶어 두었더라도 비나 이슬이 내려도 젖지 않게 우산을 펼쳐 두었다고 했다.


문현이를 데리고 다니면 소리도 지를 뿐 아니라 관리하기가 힘이 드니 어디 데리고 있거나 다닐 수가 없어 사람 출입이 없는 공동묘지에 묶어 두고 아침, 저녁으로 빵과 우유를 사서 가서 먹였다고 하는데 아무런 원한이 없는 어린 초등학교 학생을 밤이 되면 모기와 벌레들에게 물려서 가려울 것이고, 짐승들이 울부짖는 공동묘지 소나무에 묶어 놓고 돈을 요구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완전히 모기들 잔치하라고 묶어 두었었는데 줄을 풀고 보니 온몸이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대구로 압송 후 왜 문현이를 택하였느냐고 하니 내당1동은 서구에서는 부자 동네인데 한 아이가 옷 입은 게 부티가 나고 잘 생겨 집안이 부자인 줄 알고 데려갔다고 했다.


아이를 데려간 뒤 부모에게 조용히 돈을 받으려고 생각하고 후배와 같이 범행하고 성공하면 같이 반반 나누어 가지기로 했는데 자신은 카센터를 하다가 운영이 어려워 범행하게 되었다고 했다.


민원실에서 동원하였던 여경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여 수축기로 모유를 빼내며 고통을 참았는데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웠고 사명감이 없었으면 못할 직업이었다.


긴박하게 움직인 2박 3일의 수사였지만 그래도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느꼈고, 이 사건을 해결하고 부모들에게 고마움과 칭찬을 많이 들었고 김태영 순경이 경장으로 특진했고 우리 반은 지원반으로 그냥 표창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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