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온도는 영상이 주는 온도와 다르다.
수많은 영상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유튜브는 정보 검색을 할 때 초록 창에 우선하여 고려되는 플랫폼이 되었고,
주요 방송국에서 한 프로그램을 위해 투자하던 큰 금액을, 개인 영상 채널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투자한다.
글로 정보를 얻는 것은 꽤 불편하고 어색한 세상이 되었다.
영상 대신 글을 읽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영상에서 픽셀 하나하나에 찍히는 색의 조화와 우리의 귀에 명확하게 들리는 음성의 파도는, 우리의 상상력이 자리하고자 했던 공간을 선점한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나타난 글의 표상이 그 공간을 지배한다.
매력적인 점은, 그 표상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조합하여 글의 표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경험의 대부분은 추억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가령 오늘 읽게 된 임의의 구절인 '그 시절 우리가 부르던 노래'는,
누군가에게는 고향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잠자리를 잡으며 부르던 노래이고,
누군가에게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허리띠를 매고 거리에 나가 외치던 목청이고,
나에게는 마음 둘 곳 없었던 대학교 시절 몰려오는 공부와 과제의 짐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던, 동시에 그 시절과 나의 소속을 사랑하던, 애증의 목소리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는 것은 필연적으로 각자의 경험과 추억을 꺼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과 추억을 꺼내면, 그것은 각자 자신만의 영감이 된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떨 때는 그 영감을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소비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영감을 가지고 나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글은 나의 공간에 가장 적절한 온도가 된다.
(작가가 2023년 7월 19일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