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밟히지마 ep.07]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누군가의 선례가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꽤나 희망적이며 든든한 일이다.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나도 앞서간 사람처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착각 또는 확신이 들기에, 조금이나마 불안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다.
하지만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고민은 필요하다. 이 길로 가는 것이 내게 맞는 방법인지, 나만의 전략은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런저런 방법을 거쳐 성공했다는 선례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며, 그 사람에게는 맞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길일 수도, 그 사람은 되지만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하고 개척해야 한다.
나 또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먼저 간 사람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했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살핀 적이 있다. 아나운서 지망생 중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오직 대형사 입사만을 목표로 작은 방송사는 전혀 지원하지 않고 언론고시 준비만 몇 년을 하는 사람, 아니면 작은 방송국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대형사로 이직에 성공한 사람. 내 경우에는 후자였고 먼저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일을 배우고 싶었고 그러한 이력들이 바탕이 되어 나를 성장시켜 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지원하고 도전했다. 작은 곳이었어도 경쟁률이 치열했기에 1차 서류전형조차 쉽지 않았고 그다음 전형인 카메라 테스트 기회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몇 달을 광탈만 했던 내가 어렵게 1차 서류전형에 붙었고 2차 실기 시험을 보러 간 곳은 지역의 한 지상파였다. 당연히 아나운서 직무로 지원했기에 나는 카메라 테스트에서 뉴스 시험을 보았다. 내 인생 첫 카메라 테스트 결과는 불합격이었으며 슬퍼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다른 방송국 시험을 보러 다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갔던 그곳에서 전화가 왔다.
“한 달 전쯤 저희 방송국으로 아나운서 시험 보러 오셨죠? 혹시 리포터로도 활동 가능할까요? 괜찮다면 리포터로 면접을 한 번 보고 싶은데요.”
아나운서 직무로는 떨어졌지만 나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해당 방송국 교양 프로그램 피디가 우연한 계기로 아나운서 오디션 영상을 보게 되었고 지원자 중에 나를 좋게 봐주셨던 덕분에 리포터로서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첫 지상파 진출이었다. 인터넷에서 케이블로, 케이블에서 지상파로 가게 되면서 TV에서 나를 본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분들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신기하고 설레는 첫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사람이 리포터로 취업을 한 선례는 거의 없었다. 아나운서와 리포터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나 요구되는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그 둘은 그냥 다른 직종이었다. 그렇기에 아나운서를 준비한다는 애가 리포터가 되어있으니 오히려 우려하는 시선들이 훨씬 더 많았다.
“방송국에선 리포터 출신은 절대 아나운서로 안 뽑아.”
“리포터들은 특유의 조가 있어서 앵커가 되긴 어렵지.”
“리포터 경력은 보통 숨긴다고 하던데 굳이 해야 해?”
함께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리포터를 하고 나서 뉴스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이미지도 많이 가벼워진 것 같다며 내게 조언했다. 왜 걱정이 되지 않았을까? 나의 계획은 방송 경력을 다양하게 쌓은 뒤 대형사로 이직하는 것이었지만 주변의 우려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주변 분들의 우려,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나도 남들과 같지 않은 나의 독특한 이력이 나의 발목을 잡을까봐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려는 길에는 나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을 고쳤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된다”는 말을 기억했다.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을 내면 되지 뭐.’ 나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갖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리포터 활동 6개월 만에 전에 함께 일했던 작가님 소개로 KBS 지역총국의 리포터로도 활동하며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바쁜 만큼 보수도 올라갔다.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방송했던 시절이다. 당시 리포터로서의 나의 현장 경험과 생방송 경험은 지상파 아나운서 합격에 큰 도움을 줬던 자산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나는 뉴스 외 MC, 내레이션, 리포팅까지 모든 장르 교육이 가능한 아카데미 대표이기도 하다.
“길이 없을 때 내가 그 길이 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