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그리고 벽

벽의 진정한 의미

by 이엘

진격의 거인에서의 벽의 의미


한때 인기를 구가했고 지금도 인기가 많은 진격의 거인 애니매이션에서는 인류를 잡아먹는 식인 거인을 막기 위해 거대한 삼중 벽을 쌓고 인류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인류를 지키는 삼중벽 그건 각각 마리아 로제 시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류를 100년간 식인 거인으로부터 지켜왔다. 즉 벽은 인류를 지키는 창이자 방패였던 것이다. 하지만 벽은 정말로 그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가?


애니매이션 2기에서 밝혀진 바론 방벽은 초대형 거인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초대형 거인들이 안쪽을 바라보면서 빽빽하게 서 있으면서 방벽의 기둥을 이루고 초대형 거인들의 경질화 능력으로 벽을 이루어 왔던 것이다. 작중 나왔던 벽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인 월교가 이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 초대형 거인들로 벽이 이루어졌다는 벽의 진실을 말이다. 그들은 어째서 벽의 진실을 감춘 것일까? 그건 후반부 나온 벽의 왕 145대 왕인 칼 프리츠 왕인 평화 사상과 관련이 있었다.


칼 프리츠 왕의 평화 사상 그건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칼 프리츠 왕은 거인이 될 수 있는 인자를 가진 에르디아 인들의 왕이었다. 자신들의 민족이 거인을 이용해 타민족을 침략하고 여덟 거인을 가진 귀족 가문이 자신들의 거인을 이용해 거인 대전을 일으키니 거기에 죄책감을 가져 시조의 거인과 부전의 조약을 맺고 자신의 영지인 파라디 섬에 삼중벽을 쌓아 자신의 백성들을 이주시킨 것이었다. 즉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의 백성을 고사시켜 타민족의 생명을 보장한 것이었다.


삼중벽 안에서 시조의 거인의 좌표를 이용해 백성의 기억을 지운 채 거짓된 낙원을 유지한 채 말이다.


이런 진실 때문에 월교는 벽의 비밀을 숨겼던 것이다. 즉 칼 프리츠 왕의 평화 사상에 대한 절대 신념인 셈이다.


하지만 월교는 애니매이션 1기 26화에서 진실의 일각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건 벽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애니매이션 1기 26화에서 월교 신도들이 예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도들이 서로 팔짱을 낀 채로 중앙을 보면서 눈을 감고 있다. 그렇게 삼중벽을 표현한다. 이것은 마리아 로제 시나 삼중벽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 삼중벽의 본질을 보여주는 기능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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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벽의 본질 그건 간단하지 않다. 그건 에르디아인의 초의식인 좌표를 나타내는 동시에 칼 프리츠의 평화 사상 또한 나타내는 건축 양식이기 때문이다.


한때 에르디아인이자 방벽을 이루는 초대형 거인들은 중앙을 바라보는 구조로 서 있다. 그렇게 중앙은 바깥을 바라봄으로써 온 방벽을 전부 다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앙에서 원의 둘레까지의 길이는 어느 쪽에서든 같아서 중앙 왕정에서 백성 모두를 감시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즉 벽의 왕이 온 에르디아인을 통제할 수 있고 좌표 안에서는 모든 에르디아인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벽은 신분 고하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동등하게 시조의 거인을 지배하는 왕가의 통제를 받는 에르디아인과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벽의 왕을 상징하는 것이다.


방벽이 상징하는 바는 또 있다. 그것은 칼 프리츠 왕의 평화 사상이다. 칼 프리츠 왕은 전 세계에게 자신들을 건드린다면 벽에 있는 수천만의 거인으로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그건 본심이 아니었고 본심은 그 협박이 통할 때까지 백성들과 함께 낙원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 협박이 거짓인 이유는 또 방벽의 구조에 있다. 초대형 거인이 밖이 아닌 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흔히 대외 침략을 하려면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아야 한다. 밖을 바라보아야 영토 정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의 조선 정복 논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 이익선론이었다. 자신의 영토인 주권선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고 주권선과 인접한 국가인 요충지인 이익선 즉 조선을 확보하는 것만이 일본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그 논리가 조선 침략의 주요 논리가 되었던 것이다. 즉 주권선 이익선론은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방벽의 거인은 그와 다르게 안을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간 남에게 침략당할 운명을 안배하는 자기 파멸적 인 건축물인 셈이다.


이러한 운명을 거부한 것은 좌표를 탈취한 에렌 예거였다. 그는 야마가카 아리토모의 주권선 이익선론과 같이 에르디아인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증오의 역사를 문명채로 소멸시켜야 한다고 본 것이었다. 그렇게 에렌의 명령에 따라 초대형 거인들은 밖으로 진격했고 전 인류의 80%를 대학살했다.


그걸 막은 것은 에렌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대학살을 막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결국 에렌을 사랑했던 미카사의 손에 에렌이 참수당함으로써 거인의 힘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며 좌표 또한 에르디아인을 속박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칼 프리츠의 극단적인 평화사상과 백성 억압도 에렌의 대학살도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란 것이다. 칼 프리츠의 방벽은 에르디아인의 자유를 억압했고 에렌의 대학살은 바깥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우리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침략함으로써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는 패망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명분으로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올바른 결론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그런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칼 프리츠의 평화사상일까? 아님 에렌 예거의 파괴일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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