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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부자작가 Jul 12. 2023

소울푸드


소울푸드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주로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치볶음.

정확히는 김치볶음으로 할 수 있는 요리 중 김치찌개.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글쎄요."

나만의 추억이라 할 테면 "yes."다,



어린 날 추억이다.

초등학교 친부모의 이혼, 그 후의 스토리다.

중학교 1학년은 속리중학교(지금은 폐교)에서 다녔다.

그리고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2학년이었다.



낯선 동네와 학교, 모르는 얼굴의 친구들,

그리고 바뀐 가족.

중2병 걸릴 시기에 처음 만나는 모든 환경에 졸아있었다.

ISFJ 극내향인 내겐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다.


사랑받진 못해도

최소한 미움받지는 않기 위해 살았다.

최대한 손 안 가게 알아서 잘하기.


아침에 일어나면 늦은 밤 들어온 부모님은 주무시고 있었고, 집에 돌아오면 집엔 동생과 나 단 둘이었다.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알아서 밥 차려먹고 치우고...

그게 일상이었다.

문제는 그때의 나는 라면 물을 올릴 때마다 고민하던 사람이었다는 것뿐. (그리고 지금도 물 맞추기가 제일 어렵다.)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할 시기라고?

나도 안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쁘면 아이는 알아서 눈치껏 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살기 위해서. 어른을 꿈꾸게 된다.



당시 아빠는 도장 파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아빠는 초등학교 시절 우편취급소를 하며 손도장과 고무인을 만들어 팔았다.

컴퓨터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 묻고 배워가며 연구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침에 나가서 새벽까지 일했다.

'최선을 다하자.' 가훈처럼 살았다.



연구, 투자, 영업, AS까지.

(20년도 더 된 그 기계를 22년 설날, AS 해달라며 거제에서 전화가 왔다. 그런 전화를 명절 때마다 본 게 몇 번인지...)

밤낮없이 했지만 돈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늘 맞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완성된 도장 파는 기계를 보여주며 어린 내게 X축, Y축을 설명하던 아빠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특허 등록을 위해 이리저리 뛰던 아빠.

점심을 굶으며 모은 돈은 용돈으로 찔러주던 아빠.

새벽에 들어왔지만 학교 늦었다는 얘기에 짜증 없이 일어나던 모습.

그렇게 했건만 결국 망했다. 뒤통수 맞았다고만 들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도장 기계인데 방송에서 도장 파는 모습을 보면 아빠 생각이 난다.



그렇게 바쁜 아빠, 엄마가 있다 보면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은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요리 못하는 엄마가 있다면 더더욱.


요리를 배워야 했다.

먹고살려고.

내가 처음 한 요리가 바로 김치볶음이었다.



집에 가장 많이 있던 재료가 김치였고,

신김치를 못 먹는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김치볶음이 익숙해질 때 시도한 게 김치찌개다.



물어볼 사람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만든 첫 김치찌개는 폭망이다.

맛이 없어 미원을 약간 넣었는데 특유의 떨떠름한 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1인용 냄비에서 물 더 붓고 2~3인용, 5~6인용, 9인용.

찌개가 증식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조미료도 넣어본 사람이 쓰는 거구나.



간만 봤는데 배가 불렀다.

김치찌개는 끝까지 맛을 찾지 못했다.

먹은 사람 없이 하수구행이었다.



오늘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볶음을 보며 그 시절 나를 떠올려본다.

칼 잡는 법도 모르던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자란 것처럼

요리 못하던 엄마도 이젠 솜씨라는 게 생겼다.

블록 하나던 나도, 엄마도 가족이란 퍼즐을 맞췄다.

재혼가정이란 음식재료가 따로 놀다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찌개인지 모른다.



소울푸드를 쓰다 인생을 돌아본다.

그 하나도 내 조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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