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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한펌프반 Jan 25. 2024

Q. 삶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A.

염세주의에 취했다는 소릴 가끔 듣는다.

시니컬하고 이성적인 제 모습에 스스로 취했단 게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발끈한다. 제 거짓된 모습에 취한 것만큼 낯 부끄러운 일은 없다.


아무튼 내가 늘상 말하고 싶은 건,

굳이 삶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자면 우린 항상 불행하단 거다.

그니까 대부분 불행하고 가끔씩 행복하다.

어찌저찌 울면서 살아가긴 하는데, 왜냐면 가끔 행복하니까 살아는 가는 거다.


하루를 복기해 봤다.

일단 기상하는 시점, 아마 하루 중 가장 불행하지 싶다.

아침잠이 없는 편인데도 침대를 떠나는 것은 열 번의 망설임으로도 부족하다.

더해서 씻고 출근 준비.

음울한 감정을 감추고자 신나는 아이돌 음악을 틀어두지만 나갈 때쯤 되면 그마저도 시끄럽다.

음악을 끄고 출근. 요새는 에어팟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그마저도 시끄럽다.

지하철에선 초점이 없다.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다.

아, 단 하나 있는 거. 앉을자리는 찾아야지. 근데 보통 자리도 없다.


난 매일 출근지와 고객이 달라지는 프리랜서다.

고객을 만나기 앞서 한적한 곳에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인드를 컨트롤한다.

'난 지금 되게 밝다. 기분이 마침 좋은 편이야.'

물론 200% 거짓말.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온다.

아, 이때 행복하다. 하루 중 첫 행복이 온다.

전날 찾아둔 맛집 리스트를 복기한다. 날씨와 기분에 맞는 맛집을 선택하고 주문한다.

20분 정도의 행복을 적립했다. 밥을 오래 먹는 편이면 행복이 길었을 텐데. 아쉽게도 점심은 20분짜리다.


다시 근무를 이어간다. 사실 이 순간들을 불행이라 하긴 서운하다.

기분은 태도 따라간다고, 행복한 척하면 또 의외로 괜찮은 것 같은 시간들이 지나간다.

그래도 행복은 아니다. 

나중에 또 말하고 싶지만, 난 본인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 이상한 사람'이라

무례하게 규정하는 편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 퇴근시간이 온다.

이 순간의 행복은 슬프게도 짧다. 퇴근 시간 기나긴 지하철 플랫폼의 인파를 보면 세상 불행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집으로 돌아와 저녁과 밀린 유튜브를 즐긴다.

이런 사소한걸 행복이라 말하긴 슬픈데, 굳이 나누자면 행복은 행복이다.


대충 계산해 보니 24시간 중 자는 시간 6시간 빼고 눈 떠있는 18시간, 그리고 그중 행복한 시간은 약 1시간.

17시간은 대충 불행하다.

어차피 행복한 1시간도 대충 행복하기에 애매한 감정을 이분법 하면 결국 명료하다.


1시간 / 17시간


1시간을 위해 17시간을 버티는 것인가, 아님 17시간을 버티기 위해 1시간을 사는 것인가.

대충 불행한 하루 중 어떻게든 대충 행복한 1시간을 지키려는 삶.

지금 우리가 사는 삶.


그대는 오늘 1시간 정도, 그 정도라도 행복했는가?

그럼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다. 그러니까 그건 지켜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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