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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l 21. 2022

뜨거운 여름이 좋아져 버렸다.


  덥고 습한 것이 싫었고 춥고 건조한 건 더더욱 싫었다. 선선한 바람에 벚꽃잎이 흩날리고 단풍잎이 자박자박 쌓인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하던 나는 이제 뜨거운 여름 햇볕을 좋아하게 됐다. 여름만 되면 휴가를 내고 집에서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늘어져만 있던 나는 어쩐 일인지 요즘 들어 그렇게 밖을 나서고 싶어진다.


 바닷가에서 조막만한 비치타월을 대충 깔고 무려 칠링백에 얼음과 함께 담아와 시원해진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를 주섬주섬 따고 있는 게 귀찮지가 않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연속 재생하며 해변을 거닌다. 피부가 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수영복 차림으로 시원하게 바다에 풍덩 빠져본다. 제대로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패들 보드를 타고 저 멀리 뒤돌아보면 해변의 사람들이 개미만 해 보일 때까지 패들을 저어봤다. 바다 수영 후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맥주 한 캔을 꼴깍꼴깍 마신다. 시원시원한 차림의 여행객들이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뽐내며 젊음을 분출한다. 그들을 따라 나도 청춘을 불태우고 느지막이 집에 들어가면 열대야에 지쳐 문을 활딱 열어 둔 채로 자다 모기떼에 습격을 당하기도 한다. 아, 물론 이건 정말 싫다.


 어릴 땐 야외에서 수영을 하고 나면 공중 샤워장에서의 대충대충 할 수밖에 없는 샤워도 그렇고 젖은 발에 달라붙는 모래가 너무 싫어서 언젠가부터 물놀이를 멀리했다. 요즘은 무슨 바람이 든 건지 그런 게 하나도 귀찮지가 않다. 오히려 언제 물에 들어가고 싶어질지 모르니 수영복 위에 가벼운 옷을 걸친 채 여행을 다니고 항상 젖어도 되는 샌들을 신고 다녔다. 그러니까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크림 파스타를 싫어하던 청소년은 자라서 크림 파스타가 없어서  먹는 사람이 되었고, 낯가림이 심해서 친한 친구  명과만 연락을 주고받던 소심이가 이제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만 읽던 독서 편식러가 어느새 소설만 주야장천 읽는 소설 편식러가 되었고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회사원은 우유의 고소함을  이후론 라떼만 마셔댄다. 그리고 여름을 싫어하던 나는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일모레면 서른인 나는 “나도 이제 다 컸다, 어른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성장 중인가 보다. 입맛이 변하고 취향이 변하고 성격이 변하고. 이젠 다 커서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혔다고 믿었던 과거의 내가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거라곤 성장기 이후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시력 정도랄까.


 변화된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이번 변화는 썩 마음에 든다. 피부가 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 여름에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좋아하는 계절인 만큼 좋아하는 일들을 많이 많이 해두고 두고두고 그 기억으로 올해를 견뎌보려 한다.


 저는 지금 여름이 참 좋은데, 지금의 여러분을 무얼 좋아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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