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일상]_스물여덟, 공무원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해요
째깍째깍. 시곗바늘 속에 갇혀있는 것만 같은 하루였다. 근 한 달간의 삶은 절대 멈추지 않는 시계 안에 갇혀서 긴 바늘과 짧은바늘에 번갈아 쫓기며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일을 배우고 쳐내기에 급급했다. 공무원 사회에 발을 딛고 2년 4개월 만에 9급에서 8급으로 한 단계 승진함과 동시에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승진과 함께 새로운 업무라니 기대감도 있었고,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 같은 묘한 희열감에도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한 달 후, 난 퇴근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을 눈물 없이는 단 한걸음도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디지털시계만 있는 좁은 원룸에서 째깍거리는 환청을 들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도저히 못하겠어서 면직을 하겠다고도 선포했지만 쩝.. 일을 그만두면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발목을 죄었다.
버텼다. 꽤 오랫동안 숨죽이며,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중간에 정신의학과 상담과 우울증 약을 몇 달간 복용했다. 한 번 약해진 마음은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내 마음이지만서도 어르고 달래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바쁜 일도 얼추 끝났고 바뀐 업무에도 적응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때 너무 힘들어서 면직 얘기 한 거지?"라며 면직 선언을 긴 공직생활의 하나의 에피소드마냥 치부했고 그런 말들을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당당한 면직을 위하여 목표를 찾아 헤맸다.
하고 싶은 일의 조건은 명확했는데 첫째,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1번 요인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둘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일이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취미로 남겨두고 싶은 맘이 컸고 그럼에도 일을 하다 마주하게 되는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음 직할 정도의 흥미는 있는 업을 선택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결정한 진로는 다시 "공무원"이었다.
공시에 도전하거나 공무원이 아니라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은 우리가 흔히 하는 행정직 외에도 다양한 직렬이 있다. 사회복지직, 건축직, 세무직 등이 있는데 나는 시설직 공무원이었다. 사실 내 성향에 공무원은 꽤 잘 맞는 직업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안정적이었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도 일을 그만둔 이유는 직렬문제였다. 때문에 직렬을 바꾸어 사서직 즉,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를 목표로 삼아 당당히 면직에 성공하였다.
면직을 결심한 후로부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1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앞에 두 조건을 충족하는 목표직업을 설정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는 속된 말로 간지가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지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도서관]은 나의 허영을 양심의 가책 없이 채워주는 아주 훌륭한 공간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는 3층이 넘는 대형서점이 있었는데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도 넘게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었다. 나는 주말마다 노란색 버스를 타고 양 귀에는 이어폰을 간지 나게 꼽고 서점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서점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지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허영심이 충족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책과 가까이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공무원도 경험해 보니 나쁘지 않았고,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니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서직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사서자격증이 필요했는데 쉽사리 따기가 어려웠다. 사서교육원에 들어가 준사서 자격증을 따는 방법도 있었고, 평생교육원에서 학점을 다 듣고 학위와 자격증을 같이 취득하는 방법도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22년 그저 시원하기만 한 면직을 했고, 8월 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사서고생하기 위하여. 앞으로는 1년의 시간 동안 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투쟁의 시간들을 빼곡히 그려나가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