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1500여 년 간 베일에 가려졌던 대가야 야금술의 비사(祕史)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리움이 최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에서 개최한 특별전 <야금(冶金): 위대한 지혜>. 이 전시회에 국보 제138호인 '대가야 금관‘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생전에 고미술품 수집에 열정을 바쳤던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1910~87)의 서거 35주기 및 호암미술관 개관(1982년) 4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특별전은 특이하게도 대가야 금관의 야금술이 주제였다. 이건희 회장이 작고하면서 국가에 기증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과는 격이 전혀 다른 선대 이병철 컬렉션 중 국보‧보물급을 포함한 금속공예품을 통해 고대 야금술의 진수(眞髓)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야금‘이란 광석에서 골라낸 금속을 1500도 이상의 고열에 녹여 제련(製鍊)한 금‧은‧동을 재료로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세공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철기시대에는 땅속에서 캐낸 쇠붙이를 고열에 녹여 각종 농기구를 만드는 야금술이 발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신라‧백제 등 삼국시대에는 금‧은‧동이 채굴되고 최고 통치자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보관(寶冠)과 장식용 귀금속을 만드는 세공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미 고고학계에서도 대가야 야금술이 역대에 가장 뛰어난 세공술로 공인해 왔지만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실체가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대가야는 5세기 초반(512년) 멸망하기 전까지 500여 년 간 낙동강 유역의 강력한 부족 국가로 존속했으나 결국 신라의 세력권에 복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대가야 금관의 야금술은 금으로 만든 부장품(금관에 달린 장식품) 일체가 고스란히 갖춰진 완벽한 형태였다. 왕관과 보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 금관은 1971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왔었다. 대가야시대의 유일한 금관에 삼성가의 영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경북 고령군 지산리 대가야 45호 고분에서 도굴된 것으로 밝혀져 한때 삼성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 도굴범을 검거한 결과 여러 차례 장물 거래를 거쳐 최종적인 수집가가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각씨(1905~71‧서울 제일병원 설립자)로 드러난 것이다. 그 당시 이병각씨는 문화재 보호법 위반 및 장물취득 혐의로 구속, 기소돼 그동안 수집해왔던 고미술품 220여 점을 모두 압수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환수조치가 해제되어서 이병철 회장이 형의 고미술품을 모두 인수해 동산문화재로 등록하고 자신의 개인 소장품으로 관리하면서 대부분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다.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병철 컬렉션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대가야 금관! 이병철 회장은 형이 작고하자 생전에 대가야 금관의 공개를 금기시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번에 선대가 그처럼 아꼈던 금관을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