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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 Oct 31. 2023

나는 영화가 왜 하고 싶을까

저도 잘 몰라요

220528


분명히



3년 전,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3학년 1학기 평점 0.16 / 3학년 2학기 평점 0.04를 기록하며 제적과 자퇴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는 신의 계시라며(그냥 본인이 출석을 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과 입시를 알아보게 된다. 부모에게는 휴학이라고 말해둔 채로 도망칠 구석을 없애버리기 위해 자퇴를 하고선 시작된 입시.


매일 새벽 알바를 나가서 돈을 벌고 그걸로 학원비를 내고 퇴근하자마자 학원에 와서 글을 쓰고... 그렇게 학원에 붙어서 살면서 집, 알바, 학원을 반복하며 1년. 영화 입시는 아니어도 현역때 입시를 스스로 해봤던지라 원하는 대학만 원서를 써서 냈고 기적처럼 최초 합격해서 영화전공으로 전공을 바꾸는데에 성공했다. 나에게 학력이 중요한 건 아녔지만 나에게 '영화전공'이라는 단어가 주어지지 않으면 나를 정의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영화가



나는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뭐가 되었든 배워야지만 실천할 수 있고 배워서 익히고 쓸고 닦는 것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나는 어떤 것이든 학문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멍청한 생각때문에 내가 아직 '척척고졸'인 상태로 대학을 5년째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강의와 교수로만 이루어져있지 않다는걸 내가 너무 간과했었다. 내가 왜 대학을 다니기 싫어했고 왜 내 학점이 그랬었는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린것이다.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도 사실은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미쳐버릴지경이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난 나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걸 책으로 쓰기엔 조금 모자란 재능과 얼굴을 내놓고 말로 털기엔 조금 모자란 숫기와 조금의 현실적인 생각(그래도 다른 예술보단 돈 벌지 않을라나?)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영화를 택했는데 그래서 영화전공을 선택했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 꽂은 칼과 같구나 하고 깨닫게 된것이다. 그때가 입학한지 3개월 쯤이었다.


영화에 대해서 배우는거? 당연히 즐겁지. 근데 겉핥기고.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거? 당연히 너무 좋고 즐겁지. 근데 아무도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를 보는거? 당연히 너무너무 좋고 즐겁고 행복하지. 근데 더이상 가볍게 볼수는 없고.



좋았는데



그래도 마음에 맞는 동기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여름방학동안 열심히 영화를 봤던것 같다.

내 주변의 누구보다도 영화에 대한 고집이 확실한 사람. 영화를 왜 하고싶냐는 질문에 영화말고는 할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때만해도 이 사람을 만난게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다.(과거형인 이유는 이 사람이 내가 영화전공으로 마주한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이기 때문이다.)

내가 입시를 준비하면서 꿈꿔왔던것 처럼 이 사람과 함께 많은 창작과 성취감, 달성, 경험등을 하며 성장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로 함께 영화를 찍을수있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잠들어서 1교시 수업을 듣고 밤 12시에 회의를 하는 미친 스케쥴이 맨날 반복되었다. 조연출이었던 나는 세트제작부터 미술소품, 재료구매, 재정관리, 예약, 소통문제 등 '살면서 내가 이런거까지 알아야할까?' 싶은 크고 작은 것들을 담당하며 매일매일 쏟아지는 스케줄과 할일들을 처리했다. 지금은 프리 때가 기억에도 없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는 것과 매일 온 몸이 퉁퉁 부었던 느낌만 남아있다. 촬영 바로 전날까지도 미친듯이 프리 준비를 하고 그날도 밤을 새웠다. 졸리지도 않았다. 콘티북에 모든 스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우리 잘할거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잘 안될리가 없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는 찍는 도중에 엎어졌다.


그러니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너무 간절히 원하거나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쳐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작품을 너무 간절히 원했고 이것을 완성시켜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른척하고 지나가야만 했고 누군가가 부적절한 얘기를 했을때도 그냥 넘겨야만 했다. 빤한 거짓말과 바로 들통나는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럴수있겠거니하고 넘어가고 그냥 속으로만 삼켜야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현장을 뒤집어 놓을때도 이 영화는 끝이 나야만 하니까 참아야했다. 왜냐면 나는 너무 간절했다. 내가 한 모든 행동은 이 영화가 계획된 시간내에 끝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영화가 엎어졌을때 집에 가는 택시에서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노을을 봤다.


집에 왔을땐 울지도 못했다. 우는것도 악다구니가 있어야 하는건데 그럴 힘도 없었다. 현장에서 남은 다 식어터진 핫도그를 먹다가 내려놓고 그냥 부둥켜안고 잠이 들었다. 자면 좀 잊어버릴거같앴다. 핸드폰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처음으로 정말 12시간 정도를 잤다. 12시간이 흘러도 딱히 달라진건 없었고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결국 또 책임져야하는 사람은 우리였고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처음으로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을 발견한게 행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인데 천운으로 이 사람을 만나서 결국엔 그 천운을 다 써버리고 이 사람마저 불행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미안함과 자기반성과 '이게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 그리고 그냥 솟아오르는 분노. 매일매일 모든걸 참을수없었는데 티낼수없었다. 그 시간내내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 너무 떨고있었다. 나는 다 잘될거라고 괜찮아질거라고 우리가 감당할수있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주는거라고 말했다. '우리 그냥 포기하고 여기서 그만두자' 라는 말을 오천번쯤 삼킨채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결국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일을 해결했고 영화를 완성했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고 고맙게도 그 도움들 덕분에 끝낼 수 있었다. 여전히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촬영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적당히 끝내고 나서 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틀 수가 없었다. 후반 작업을 더 진행해야만 했는데 그럴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간절히 완성되기만을 바랬던 영화가 완성되자 우리는 그 영화를 마주하지도 못했다.



?



영화를 외면한 지 두 달 후에나 우리는 영화를 다시 틀어볼 수 있었고 그 후반작업이 최근에서야 끝났다. 우리는 이제서야 제대로된 감사인사를 돌리고 있고 마지막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고서 우리 영화를 마주한다. 이제는 똑똑히 본다. 한컷한컷 넘어갈때마다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 글을 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것들은 항상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하곤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작은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어떤 이야기를 사랑하는 것도.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정도로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 나를 작년에 쓸고간것이 있다. 그리고 그 잔해가 나에게 아직도 남아있다. 파편은 분명 날카로웠는데 이제는 뭉툭하다. 쥐고 있다보니까 알겠다. 이게 이제는 뭉툭해졌다는 걸.


내가 영화를 왜 하고 싶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군가가 하고싶다고 한다면 내 통장 잔액과 남은 대출을 보여주면서 뜯어말릴것같다. 근데도 뭉툭해진 이 파편을 아직 놓지 못하는게 이상하다. 나와 그 사람은 시간이 날때마다 영화를 보고 감독 이야기를 하고 다들 언급조차 안하는 영화의 작업을 끝내고야 만다. 모르겠다 그 이유를. 모르니까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앞으로는 좀 덜 날카로운 파편이기를 바란다. 너무 힘들면 포기해버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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