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진지한 걱정
“아현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냥 학교 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오빠가 말한다.
검정고시를 본 오빠의 친구로부터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학교엔 사표(?)를 던지고 나왔는데.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던 만큼 오빠의 한 마디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자'던 내 자신감이 우스워졌다.
이게 맞는 길일까..?
내가 DSLR에 너무 혹했었나?
정말 검정고시를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학교에 가야 하나?
아부지가 나에게 주었던 확신과는 상관없이 이런저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머리가 지끈해지려던 찰나 또 다른 생각이 하나 들었다.
근데 왜 다들 안 될 거라고만 생각하지?
물론 잘 될 경우와 잘 안 될 경우 둘 다를 생각해야 했다.
오빠가 나에게 보내는 걱정은 후자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잘 될 경우가 먼저 떠올랐다.
그렇기에 오빠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걱정보단 격려였다.
잘 될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걱정하는 가족들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때의 나에겐 사실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응원을 바라는 내 마음이 욕심인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잘 안 될 경우'보다 '잘 될 경우'가 먼저 떠오르는 게 습관인 나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굉장히 요긴하게 쓰이는 장점이 하나 있다.
'자신감'이었다.
그냥, 정말, 왠지 모르게 나만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살도록 키워준 엄마아부지 덕분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 그리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검정고시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 나는 검정고시에 불합격하는 상상보다는 합격하는 상상이 더 생생하게 되었다.
이후로 주변에서 나를 더 걱정할수록 검정고시에 대한 내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걱정보다는 격려를 바랐던 내가 오히려 걱정을 더 바라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걱정할 것인지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아니, 이렇게나 걱정을 한다고? 이렇게나 어려운 거라고? 이렇게나 반대한다고?
그렇게들 안 된다고 하는 걸 내가 해내면 얼마나 더 짜릿할까?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나 스스로 걱정을 격려로 바꾸는 힘이 생겼다.
주변에서 찾으려던 격려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