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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Apr 26. 2024

살짝 녹은 미중관계 위로 한국이 걸어갑니다

이 고양이는 그냥 보법이 다름

1. Sullivan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과 다각화를 추구한다(we are for de-risking and diversifying, not decoupling). 그렇다면 향후 AI, 양자컴퓨팅 등의 산업에 서 미중 간의 무역은 어느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동시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중의 디커플 링과 디리스킹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 중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의 <연방주의자 논설집(Federalist Paper)>에서, 제임스 매디슨은 파벌의 해악을 방지하는 정치제도로 “파벌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수많은 파벌에 열린 제도를 만들어 다원주의를 취하되, 파벌까리 서로 견제와 균형이 달성토록 해야 한다”라고 피력한다.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자들의 첫 정박지였던 엘리스 섬(Ellis Island)

한편, 메디슨 식(式)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아메리카로 빨려 들어오는 무수히 많은 이민자와 함께, 미개척지를 개척해 나가는 정신과 지역별 끈끈한 사회적 전통이 공존했기에 달성가능 했다.

(비록 신(新) 기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지만,) 분명 양자컴퓨팅과 AI를 비롯한 분야들도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할 수 있는 국가일수록(혹은 이러한 판도를 법을 통해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부일수록) 해당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질적 탐구를 수반하는 국가일수록 높은 점유율을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슨 M.앨런이 AI로 제작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CNN캡처

대화형 인공지능이나, 텍스트 명령어(text prompt) 기반의 그림생성 AI의 잠재성은 사용자가 어떠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창의성과 호기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리고 창의성(과 호기심)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명징하게 직조해 내는 능력이다.

해당 분야들의 근간이 되는 인적 요소의 데이터화로 인한 윤리적 고찰(<1984>, <멋진 신세계>, <우리들>)과 함께,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공각기동대>, <아키라>)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수에 의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탐구에 대한 도외시의 만연함은 곧 올바른 판단력 상실로 인한 인지적 코마(coma) 증상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다(달리 말하자면 점유율은 떨어질 것이다).

한편, 질문자의 디커플링(중국과의 완전한 단절)과 디리스킹(다각화 추구) 중 어느 것이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냐는 질문은, 디커플링이 중론이라는 분위기가 미국 내부에서 어떻게 디리스킹으로 불태화(sterilization)할지에 대한 담론이 선결(先決)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NAFTA 개정에 따른 멕시코의 재도약 기회와, 인도에서 중동과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이어지는 경제회랑 및 대외정책의 행간 속 동남아시아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isa)’ 계승으로 다각화는 구체화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국제구조대 파견

확실한 것은 미중의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중에서 디리스킹이 한국에게는 더 우월전략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원화는 곧 협업을 의미하고, 협업은 시간 속에 새겨진 신뢰를 요하기 때문이다.

절해고도와 같은 등대

다만 한국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다. 중국과의 교역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디리스킹을 행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리스킹을 배제한 디커플링은 종국(終局)에 파국(破局)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 시진핑의 군사개혁은 한국에게 있어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군사개혁은 현대 연합작전 능력 발전이라는 장기 과정에서 이정표를 세웠지만, 동시에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를 부활시키고 강화시키는 데에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렇듯 시진핑의 군대가 되어가는 인민해방군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한국에게는 어떠한 군사적 혹은 외교적 노력이 요구되는가?

시진핑, 자기 사람만 남겼다…3연임 ‘1인 독주’ 시대

시진핑의 군사개혁은 한국에게 좀 더 명확하게 중국의 행보를 분석할 수 있는 가늠좌로서 앞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 추측한다. 역설적이지만 덩샤오핑까지의 중국공산당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주석 체제 때와 달리) 최소한의 특정 인물들을 톺아봄으로써 중국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黨) 내부의 국부급 원로들이 나름 세대교체가 이뤄진 시진핑 집권기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기와 유사한 패턴으로 분석 가능해질 것이다. 이에 연합(combined) 및 합동(joint) 정보교류를 통한 군종별 마스터마인드를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헌제는 조조에 의해 옹립돼 꼭두각지로 전락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대교체 속 시진핑 집권과 일인독재로의 회귀를 어떠한 도식적인 인과로 그 필연성을 제시할 수 없다. 집단지도체제 속 정치적 입지가 낮은 시진핑을 종이호랑이로서 옹립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라는 변수와 이로 인한 부의 재분배와 부패에 대한 반발이 중국 내부적으로 심해졌다. 체제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층은 내부의 위기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고, 후진타오는 장쩌민과 달리 전권을 제 때 시진핑에게 넘겨줬으며, (당원의 명시적이며 묵시적인 지지와 함께) 시진핑의 독주체제가 쉬이 공고화될 계기가 마련됐다.

그럼에도 시진핑의 군사개혁이 곧 1세대와 2세대 중국 지도부와 동일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함께 대장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현장에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그 진가를 증명했다. (국부로서 덩샤오핑의 위상은 마오쩌둥에 비해 뒤쳐질지라도,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점과, 집단지도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개혁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그 또한 집권 당시 마오쩌둥만큼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의 존재가 곧 당과 군의 기능과 인사가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를 반증했기에,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반면,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경우 둘 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들어지기 전에 태어난 인물이긴 하지만, 건국의 초석을 세우기에는 본인들에게는 시기상조였고, 논공행상을 받을 정도의 입지를 쌓기에는 너무 늦었다 (1941년생 후진타오에게는 더더욱 시기상조였다).

그럼에도 둘 다 기성 엘리트에게 발탁돼 능력을 실적으로 증명하면서 국가 주석까지 올라갔다. 한편, 두 지도자 모두 덩샤오핑에 의해 지도자로 낙점되던 당시에만 하더라도 중국 혁명 원로들이 여전히 살아있었으며, 다수는 당과 군 도처에 산개해 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3세대 4세대의 지도부는 일인독재가 아닌, 하나의 당이 독재하는 중국으로 “포장”돼 운영될 수 있었다.

원로들과의 “역학”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장쩌민에게 유소작위(有所作爲)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후진타오는 원로들과의 관계를 포함해 장쩌민과의 권력갈등(중국 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 승계 지연) 속 안정적인 집권을 위해서라도 화평굴기(和平屈起) 해야만 했다.

종이호랑이로 시작한 시진핑에게 있어, 군사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은 국내 반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그리고 독주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필요절차였다. 혁명 원로 시중쉰의 아들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와 달리 당과 군 양쪽에서 자기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도 따랐지만, 상기의 이슈들과 시간이 흘러 시진핑은 3연임을 통해 당을 장악했음을 반증했다. 한편, 군의 경우 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그렇기에, 제도의 체질개선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그의 행보와 군종별 인사들의 역학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일 것이다. 과거 마오쩌둥과 등소평이 집권하던 시기 무수히 나열된 직위와 제도에도 불구하고, 특정인물의 향방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흡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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