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당하다!
우리집은 골목집이었다. 그 골목은 꽤나 길었고 우리집은 안쪽에 가까웠다. 어릴때부터 겁많고 소심했던 나는,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혼자서 골목밖 멀리까지 나가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동네 아이들과 뭘하더라도 골목 어딘가에서 놀았다. 물론, 골목 바로 앞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오기도 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내게 그 골목은, 늘 나던 연탄재 냄새마저도 너무나 친숙하고 편안한 장소였다.
그 골목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시점에 없어졌다. 집앞에 2차선 도로가 생겼고 그 덕에 우리 부모님은 대문 옆 작은 부분을 내어주는 댓가로 큰 액수의 보상금도 받았다. 조용하고 편안하던 골목이 사라졌다. 그후 한동안 우리집은 근처 아파트 공사장으로 흙을 나르며 쉴새없이 지나가던 덤프트럭으로 인해 소음과 먼지를 겪어야 했다.
그 시절 나는 집을 들어가고 나가는 순간이 누군가의 눈에 띌수도 있다는 게 왠지 신경쓰였다. 다른 집들은 그 시절 유행하던 빨간 벽돌 이층집을 쌓아 올리는데 우리집은 여전히 검정 기와집인 것도, 회색대문인 것도 속상했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 4학년때 반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했다. "오늘은 여자아이들을 미행해서 집을 알아내보자" 첫번째 대상자가 <나>였나보다. 나는 얌전하고 이쁘장한 공부잘하는 아이였기에 그들의 호기심 대상 1호 였을거라고 생각, 아니 착각을 해본다. 나는 들키기 싫었다. 그들에게 우리집을. 그 아이들은 반에서 장난도 잘 치지만, 공부도 잘 하는 변호사 아들, 선생님 아들, 부자집 아들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집을 알면 얼마나 비웃을까,, 그래서 동네를 뺑뺑 돌았다. 계속. 뻔히 다 보이는 미행을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 지금 같은 곳을 자꾸 돌아"라고. 결국 걔들이 지쳐서 돌아가길 바랬지만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냥 창피했다. 그날 이후에도 다른 여자 아이들의 집조사가 계속 진행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한동안 그 남자아이들과 나는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어리석고 소심하게도 그 도로변의 우리집은 나를 더 수줍은 아이로 만든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골목속에 숨어서 그 밖을 나와 본 적 없던 나의 검정기왓집은, 난데없이 생긴 큰 도로에 놀라고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들켜버려 수줍고 불안했을거 같다. 나처럼,,
시간이 한 40년쯤 지나면, 누군가의 꿈에 자꾸 나와서 행복감에 젖게 만들거라는 것과, 그리고 절대 돌아갈수 없는 추억의 소중한 장소가 될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