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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27. 2024

딱, 사는 만큼만 쓰자

인생을 위한 작법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몇 주 전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이날 내가 가져온 책은 소설을 쓰기 위한 작문법이 담긴 책이었다. 


"혹시, 이 작문법 책 말고 다른 책은 읽으신 건 없으세요?"


책 소개를 이어가는 와중에 맞은편의 모임원에게서 질문이 들어왔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요!"

"어? 그건 소설 작문법 책이 아닌데....?"


꽤나 날카롭지만 그만큼 불편했던, 그리고 꽤나 합리적이면서도 편향적인 그의 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쟁이가 내 업이길 바라고 글을 통해 내 밥벌이를 해내고 싶었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내가 고른 것은 일단 문학이었다. 에세이도 쓰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장르의 비문학도 도전해보고 싶지만 지금 당장 내가 쓰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소설이었다. 그런 내가 글의 수준을 끌어올려보자 호기롭게 다짐하고 택했던 제일 첫 작문법 책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는 겨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쉽고 잘 읽히는 글쓰기'를 위한 작법서이다. 또한 작가 본인도 인정하듯 시나 소설이 아닌,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작법서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실력 향상을 위한 방법부터 좋은 글쓰기를 위한 전략적 독서법까지 소개를 해주는 책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진미는 누구나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에 들어가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작가 유시민이 이 책을 쉽고 잘 읽히게 하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에 꽤나 애를 쓴 흔적이 티가 난다. 한 마디로,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이 담긴 쉽게 읽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을 잘 쓰고 싶다. 내 소설을 읽는 누구나가 내 내면세계를 쉬이 느낄 줄 아는 책을 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글이 가져야 할 기본소양은 세상 이치에 맞고 그 세계를 아우를 줄 알는 짜임새 있는 단단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내 글에 제일 먼저 담아야 할 것은 논리성이었다. 시든 소설이든 비문학이든 모든 글에는 기본적으로 논리 정연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아직 현실에선 구현할 수 없는 먼 미래의 공상일지라도, 너무나 함축적이어서 여러 번 문장을 곱씹어야만 하는 난해한 시 일지라도, 글에는 마땅한 이치가 담겨야 읽는 이가 글쓴이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후반부의 '사는 만큼 쓴다'에서 조명하는 내용은 장르를 떠나 모든 글쓰기에 반드시 해당되는 말이다. 글쓰기가 내면을 표현하는 가장 쉽고 좋은 행위라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 이견이 없다. 글이란 글쓴이가 삶을 느껴온 만큼 써진다. 그 이상을 쓰려고 하면 조악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삶의 느낌을 덜어내려고 하면 글은 딱딱하고 밋밋해져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딱 그 정도만, 자신이 살아온 그대로의 생각과 감정을 글에 담아냈을 때 가장 좋은 글이 된다. 



 나는 글쟁이이기 전에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나의 삶과 내면을 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어 갈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글쓰기만 한 가치 창조 도구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시작을 소설, 즉 허구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글쓰기로 정했다. 제대로 된 책을 내본 적은 없으나, 몇 번의 초고와 퇴고를 경험하다 보니 느낀 것이 있다면, 소설 또한 내가 '산만큼 쓰는 글'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 사건, 배경이 허구라고 해서 글쓴이의 내면을 헤아린다는 글의 본질적인 기능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소설의 구성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고, 어떤 시점으로 소설을 써야 이야기가 훨씬 더 풍요로워지는지, 감정이나 심리는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와 같은 작문의 기술적인 방법론을 논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글에 내 내면과 삶을 담아낼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이 글을 세상 밖으로 꺼낼 때, 과연 나의 내면의 세계가 이 글에 온전히 담길 만큼 떳떳한가? 나는 과연 '사람다운 감정'을 이 글에 담을 만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가? 이 글을 통해서 나는 내 삶과 내면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자 노력하는가? 



  나에게 물음을 던졌던 모임원은 아마도 작법의 기술적인 측면을 생각해서 그리 말을 했을 것이다. 아직 나의 글은 기능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조악하거나 밋밋할 때가 많다. 아마도 여전히 내가 살아온 만큼을 더욱 풍요롭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작법을 위한 스킬을 끌어올리는 것은 그것대로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매일마다 조금씩 나만의 작법 노하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온전히 내 삶을 글에 담아낼 수 있도록 삶을 향유해야 함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는 만큼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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