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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Oct 01. 2023

맏이 30. 청천강 도강

  


그 후 우리는 계속해서 산으로 올라 밤낮으로 능선을 탔다. 그래도 우리는 식량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펄펄 나는 것 같았다. 밤낮으로 강행하는 남하 행군은 잠을 못 이루는 것 외에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특히 야간에는 가다가다 쉴 때마다 잠이 들어 선두와 이탈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백 리는 온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청천강 근처까지 왔는데 강을 앞에 두고 도강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그때부터 부연대장은 공병대가 앞장서라고 했다. 정확한 인원은 얼마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미 무기력해진 우리 집단이다.

드디어 청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지까지 왔다. 그대로 내려가면 강일 것이다. 강의 폭과 깊이는 물론 도하지점도 잘 모른다. 나는 한참 동안 주저했다. 알 수 없는 지형지물에 더욱이 이 부근에 중공군이나 인민군이 배치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이 무모하게 일시에 도강한다는 것은 확실히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저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좌우를 보니 초소에 불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의식했다. 이미 이곳도 적의 수중이었고 이곳이 아마도 포위망의 마지막 고지가 될 것으로 나는 각오를 하고 후속 아군에게 그 상황을 알렸다. 우리 소대원은 그래도 약 20명은 되는 것 같고 후속 타 소대와 보병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나는 연락병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이 골짜기를 내려갈 것이니 20분 후까지 아무 징후가 없으면 모두 내려오고 만약 총소리가 나면 이 길로 오지 말고 다시 북쪽으로 가라고 지시한 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적중돌파인 것이다.

한참 내려오니 뭔가 수상하다. 저 앞에서 검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내 앞에 국군은 아무도 없으니 분명 적이 틀림없다고 마음먹고 좁은 길옆에 재빨리 숨었다. 그 검은 물체가 이 길로 올라온다. 검은 물체는 하나다. 바로 내 앞에 왔을 때 나는 칼빈을 검은 물체의 가슴에 들이댔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었다. 어두운 밤이라 얼굴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적은 적이었다. 단총을 어깨에 메고 모포를 뒤집어쓴 모습이 인민군이라 단정하고

“소속이 어디냐?”

고 물었다. 그러자 놀란 입에서

“646부대”

라고 한다.

“어디에 있는 부대냐?”

“옹진입네다.”

“옹진에 있는 놈이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니까

“집이 바로 이 근처에 있어 집에 가려고 왔습네다.”

“암호는?”하고 물으니 이미 체념한 듯

“밤, 소나무”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때 시간이 급한 상황임을 깨닫고 그자를 앞세워 길을 내려왔다. 속으로 이 친구가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별일이 없구나 하고 약간 안심이 되었으나 그래도 산 위에 있는 초소가 궁금하여 이 부근에 인민군이나 중공군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곳은 잘 모르나 오는 길에 중공군을 보았다고 한다. 과연 강가의 도로까지 아무도 없었다.     

 벌써 날이 새기 시작했다. 넓은 강이었다. 강 건너에 철길도 보였다. 평양, 희천, 만포진으로 가는 철도라고 직감했다. 강가의 도로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약간 안심이 되었으나 강을 건너는 게 문제다. 바로 앞을 보니 깊은 곳 같고 나는 난처했다. 이곳까지 왔는데…….

상류 쪽을 보니 물색이 하얗다. 그곳은 얕은 곳이라 판단하고 그곳에서 천천히 건너기 시작했다. 인민군도 함께 데리고. 이미 날은 밝아졌다. 약 100m쯤 되는 강을 무사히 건넜다. 그러나 모래사장이 200m는 될까. 이럴 때 적에게 발견되면 가차 없이 죽는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발을 옮겼다. 그때 나는 인민군 장교의 반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장화에 물이 들어와 걸음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모래사장을 걸어 약 50m쯤 왔을 때 국군 장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이때 뒤를 돌아다보았다. 내가 내려온 골짜기 양쪽 산에 초소가 보였다.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까.

나는 쓰러진 장교의 권총을 재빨리 뽑아 들고 철도 둑방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다. 단숨에 둑방 너머로 오자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살았다.”

인민군도 아무 의미도 모른 채 나를 따라왔다. 그 후 나는 그 인민군을 위로하고 마음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죽는 줄만 알았던 그는 고맙다고 하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후속 전우들이 염려되어 강 건너 골짜기를 보니 막 내려와 강가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물에 뛰어든다.     

“아니, 그곳은 깊어!”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으나 소용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물속에 뛰어든 사람의 비명이 나더니 이것이 중공군의 경계에 걸리고 말았다. 모래사장에 적의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고 몇 사람의 아군이 쓰러져갔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급히 그 자리를 떠나 뒤쪽에 있는 부락을 향해 뛰었다.     

나는 이제 안전권으로 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7연대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분산되고 중공군의 소탕 작전에 전멸하다시피 되어버렸다. 우리 소대원도 이때 포로가 되었고 중대장, 부관, 소대장들 그리고 7연대 장병들도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연락병도 그때 마지막 고지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피하고 화전의 수수깡 속에 온종일 숨어있다가 그날 밤 몰래 다시 북쪽으로 숨어 들어갔다. 민가에서 학생복으로 갈아입고 중공군 행군 속에 끼어 남하하는 도중에 유엔군 제트기의 공습 때 산으로 피했다가 한 달 후에 부대로 찾아왔었다. 우리 중대의 부관은 그때 포로가 되고 후일 휴전 후 포로 교환 때 원대 복귀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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