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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어단 Mar 23. 2022

J Pop 밴드 소개 - 상대성이론 (相対性理論)

커피 라떼를 닮은 그들의 멜랑꼴리 한 음악 세계관


어딘가 고지식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름을 가진 밴드, 상대성이론은 언뜻 들었을 때는 마치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류의 비밀결사 이름 같기도 하고 혹은 아인슈타인을 기리며 설립된 세계 과학자 집단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위트 섞인 난해한 문장들과 일본 특유의 중독적이고 단순한 동화 같은 멜로디를 조합하여 달콤 씁쓸한 노래를 생산해내는, 틀림없는 음악 공동체이다.


https://youtu.be/n-DtHukc1Ls



『포스트 유튜브 시대의 팝 마에스트로』, 『전천후 팝 유닛』이라는 단어들로 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정의내리는 이 밴드는 미디어 출현 횟수가 적어 그 정확한 출발점이 어딘지는 알기 힘들다. 다만 공식적으로 나와있는 첫 번째 발매 작업물은 '시폰 주의(シフォン主義)'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은 분량의 ep이다. 이 ep를 통해 그들은 본격적으로 그들의 음악적 세계관을 세계에 표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색채가 잔뜩 들어간 더 스미스풍 쟁글거리는 기타 연주에다 벨 앤 세바스챤의 시대-초월적인 멜로디가 깔려있는 그들의 음악은 때때로 우울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보컬의 명량한 목소리와 신나고 빠른 템포의 곡의 전개가 그런 생각들을 어느샌가 깨끗이 지워준다. 다만 뒷맛은 그렇다. 우유와 설탕을 듬뿍 첨가한 커피 라떼처럼 마실 때는 달콤하나, 마시고 난 뒤 고질병처럼 딸려오는 어쩔 수 없는 속 쓰림은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가사는 농담 같다.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단순한 말장난의 배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단어의 배열들이 상당히 절묘하다고 해야 하나, 곡 자체에 독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여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과적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춘 하루키가 sf 단편 소설들을 과격한 방식으로 쓴다면 이런 가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https://youtu.be/MifNg0B-pqg



그들의 이른바 커피라떼같은 미묘한 부조화와 모순의 감각은 1집 앨범에서 더욱 톡톡히 드러난다. 이러한 음악적 패러독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 밴드를 나는 수년간 수소문해보았지만, 으레 슬픈 음악이라면 목소리는 깔고 낮은 톤으로 느리게 부르고, 기쁜 음악이라면 귀엽고 신나는 목소리로 활기차게 부르는 것이 음악의 정석이라고 해야 할까, 뮤지션이 의도한 특정한 감각을 청자들에게 확연히 전해주기 위한 기본적 소양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계의 이단아를 찾는 나의 노력은 번번이 헛수고로 돌아갔다.


이 앨범은 그렇다. 험버트가 그리던 롤리타처럼 신성불가침의 영역과도 비슷한 것이다. 물론 다른 님펫들도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넘쳐나고 넘쳐난다. 예를 들면 니세모노가타리의 오프닝 송인 백금디스코가 그러하다. 이 또한 귀여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멜랑꼴리 또한 곡에 녹아있다. 하지만 그런 곡들은 많지 않다.


이 앨범은 단언하건대 파란노을 2집 다음으로 가장 많이 돌린 앨범이다. 그만큼 나의 음악적 테이스트와 가치관 등에 상당 부분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 앨범과 함께 다녔던 길거리의 정경들은 아직도 잊지 못할 추억처럼 되어 내 뇌리에 단단히 박혀있다. 좋아하던 여자애와 함께 걸었던 노을 지는 방과 후 길이 그랬다. 결국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지만 쓸쓸한 지난날의 추억은 아직도 뇌의 주요 기억 중 하나이다. 혹은 스쿠터와 함께한 밤 드라이빙이 그렇다. 장황하게 늘어선 주홍색 피사체들이 전해 다 주는 노스탤지어의 감각은 과학적 소명이 불필요한, 오직 기억과 감각에만 의지하는 초월적 감각이다.


https://youtu.be/t2nTZrPQFFc



시디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어느새 2집을 가리킨다. 2집은, 물론 1집보다 앨범의 유기성이라던가 완성도가 그리 뛰어나진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이 앨범 역시 고평가 하는 이유는 2번 트랙과 11번 트랙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좋기 때문이다. 미스 패러랠 월드의 끝내주는 기타 리프와 중독적인 아키바계 훅의 조합은 정말이지 '끝내준다' '죽여준다'라는 단순한 어휘로 밖에 표현이 안될 정도로 헛웃음 나오게 좋다.


11번 트랙 문라이트 긴자는 한밤중 눈을 감고 고요하게 듣다 보면 어느새 내 곁에 월광이 비치는 느낌이다. 그것은 드뷔시의 달빛을 들을 때 다가오는 월광과도 비슷하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Fly Me to the Moon의 월광과도 비슷하며, 이 모든 인상들은 하나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추억들의 장면으로 귀결되는데, 그 추억이란 것은 바로 차가운 바닷 공기를 가르는 밤 드라이빙 도중 우연히 보았던 바다에 비치는 월광의 거대한 모습을 보았을 때를 가리킨다. 물론 현실을 살면서 초현실적인 감각을 맞볼 때가 몇이나 있겠느냐만은 17년의 짧은 인생을 대조해 보았을 때 첫 키스를 나누었던 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았을 때, 달리의 그림을 미술관으로 직접 가서 감상하였을 때, 그리고 월광을 목격했을 때 밖에 없다.


https://youtu.be/GWPVd_4 qmso



그리고 라이브 앨범이다. 신비주의로 묵묵히 일관하던 그들의 라이브 음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딱 보더라도 흔한 기회는 아니다. 확실히 그들의 신비주의적, 테크놀로지 지향적 콘셉트는 그 모습이 라이브에도 잘 녹아있다. 오큘러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3d 카메라를 이용하기도 하고, 레이저를 쏘기도 하는 그들의 실험적인, 과학 친화적인 라이브는 단지 '아 노래 부르러 왔습니다, 티켓비 내놓으시죠?' 하는 생 떼가 아닌, 그들이 라이브라는 것까지도 그들의 음악적 아이덴티티의 표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느껴져 새삼 경이롭다. 그들은 뼛속까지 예술가일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릴리 슈슈가 생각난다. 릴리 슈슈를 보고 라이브라는 것에 대한 큰 동경을 품어왔다. 수능이 끝나고 내 오랜 라이브에 대한 꿈의 실현 대상이 상대성이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일본 인디 록계에서 전설이 되었다. 앞으로도 그들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을 수만 있다면, 바라는 것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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