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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콜 Jul 07. 2022

무비 오브 프라이드

프라이드 먼스 특집 (3) - 나를 울게 한 퀴어영화 모음

# 0. 그 영화가 나를 닮아서


나는 영화를 볼 때 잘 울지 않는다. 일단 슬픔이라는 감정을 내보이는 게 익숙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영화가 너무 지나치게 슬프면 눈물이 오히려 쏙 들어간다. 그런 내가 요즘 부쩍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보는 영화가 있었으니 그건 주로 가족과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다. 아무래도 성소수자로서 마주하는 상황들이 공감하기 쉽고, 가족은 떠올릴수록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주로 영화 속 성소수자보다는 그들 부모님의 마음 때문에 울적해지는 경우가 많다.



# 1. 프라이드엔 영화지


그래서 이번 프라이드 먼스 특집호의 마지막 주제로 영화 리뷰를 꼽았다. 나와 지금의 남자친구는 공통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연애 초반 대화를  때면  영화  편씩 언급이 되던 때가 있었고,  시절 나는 인상 깊게  영화마다 장문의 리뷰를 작성하고 번역해서 남자친구를 꼬시려 들었다. 그만큼 소개하고 싶은 영화들이 많다.


요즘은 퀴어 영화(혹은 약간의 퀴어 코드를 품은 영화) 비교적 쉽게 접할  있다.   바이 유어 네임, 리플리, 캐롤, 브로크백 마운틴, 해피 투게더, 위대한 쇼맨 같이 대중적인 공감을 얻어 명작 반열에 오른 영화들도 있는가 하면 비교적  유명하지만 취향 저격이었던 필라델피아, 빌리 엘리어트, 셰이프 오브 워터,  유어 달링, 필립 모리스 있고, 혼자 CGV 아트하우스에 쭈그려서 보면서도 마냥 좋았던 꿈의 제인, 신의 나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있는 컨텐츠 중에는 영화 보이즈   밴드 드라마 이츠어씬, 포즈,  할리우드도 빼놓을  없다. ( 영화와 드라마들은 모두 이번 게시물에서 안타깝게 탈락된 후보 1군이다.)


영화에 대한 긴 소감을 쓸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홍보 차원에서 몇 줄의 서평 겸 간단한 리뷰만 남겨보려 한다. 우선 성장, 관계, 커밍아웃 그리고 프라이드, 이렇게 네 가지 키워드에 따라 준비한 12편의 영화들을 나누기로 했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줄여보려는 의도에서 포스터는 따로 첨부하지 않았다.) 선정 기준은 내가 감명 깊게 보았고, 그 감동과 메시지에 비해 한참 덜 알려진 영화다. 어째 공통된 특징이라면 사랑을 숨기고 삭히고, 상처받고, 이런 애타는 퀴어 클리셰들이 없다는 것.



# 2. 첫 번째 키워드, 성장


루카


열두 편의 영화 중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는 바다괴물 루카가 처음 인간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이야기다. 현실인지 애니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묘하게 익숙한 이런 류의 영화는 대표적으로 주토피아소울이 있지만, 그중에서 루카는 세상 모든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겠다. 바다괴물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두려워하는 그의 상황이 퀴어 관객의 상황과 모든 지점에서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소수자를 향한 디즈니 특유의 배려심이 영화 속 인물들의 따뜻한 대사와 행동들 전반에 묻어난다. 소수자 포용에 대한 주제의식을 보편적인 감성으로 제시하고, 이탈리아 해변 마을의 정겨운 경치와 분위기를 입히니까 그 자체로 힐링. 개봉 후 디즈니의 엄격한 PC주의를 나무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영화란, 그리고 서사란 시대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보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니까.


아이다호


리버 피닉스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영화다. 당대 디카프리오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었던 전설적인 비주얼의 그는 디카프리오에게는 없는 모종의 퇴폐미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니,.. 그 절정에 있는 영화가 바로 아이다호라 할 수 있겠다. 필름의 색감을 입은 영상 자체만으로도 참 아름다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사실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미심장한 퀴어코드들이 존재할 뿐 성소수자로서의 서사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다호는 전설적인 게이 감독 구스 반 산트의 초기 걸작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트랜스아메리카


그냥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트랜스젠더 아버지라는 소재를 이토록 편안하게 풀어가는 것이 놀랍다. 영화는 성전환 수술을 앞둔 중년의 트랜스젠더 주인공이 십몇 년 만에 처음 만난 아들과 미국을 횡단하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부정하고 싶은 과거의 자신과 화해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부모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내성적인 아버지 (혹은 어쩌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브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항기의 아들 토비. 트랜스젠더 아버지는 과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이전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게 성별이나 성역할과 관련이 있을까? 영화는 소재에서 오는 민감함을 건드리지 않은 채 주인공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여 그들을 사랑스럽게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펄리시티 허프먼의 트랜스 연기도 한몫했는데, 그녀가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그쳤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성소수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는 이런 시도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고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 3. 두 번째 키워드, 성장


로렌스 애니웨이


자비에 돌란을 빼놓고 퀴어 영화를 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이 실제 퀴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정선이 관객들의 감수성을 마구 자극한다. 내 최애 영화는 단연 마미지만, 마미를 퀴어영화 범주에 욱여넣자니 좀 억지 같고, 탐엣더팜, 하트비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마티아스와 막심까지 해서 어떤 영화를 추천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역시나 로렌스 애니웨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을 바꾼 로렌스와 하루아침에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로 바뀌어버린 그의 여자친구 프레드 이야기다.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찾아오는 혼란에 대한 서사를 너무나 찬란한 묘사와 함께 그려냈다. 후반부로 갈수록 숨 막히는 미장센이 휘몰아치며 주인공들의 감정이 격해지고, 통념과 사랑 사이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불어닥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란,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않는 의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사랑의 본질을 엿본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1980년대 에이즈는 동성애자, 특히 게이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병에 대한 소문은 사회로 무성하게 퍼져나가 동성애 혐오를 부추겼고, 소수자들은 병만큼이나 병의 낙인이 두려워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살아갔다. 영화는 에이즈가 죽음의 병으로서 악명을 떨치던 그 시기 미국 성소수자들의 삶을 조망한다. 작품의 두 주인공이 나란히 그해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이미 완성인 영화다.

 

영화는 에이즈 환자이자 호모포비아인 주인공 론이 트랜스젠더 레이언을 사업 파트너로,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고객으로 맞이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론은 에이즈라는 병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경험하고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에이즈에 걸린 론의 삶이 비극이라기보다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마와 싸우는 대가로 그는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헤드윅


한때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는 게 전혀 안 믿길 만큼 퀴어한 내용과 비주얼의 영화다. 뮤지컬이 더 유명함에도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더 좋은 게, 주류 영화계를 거스르는 마이너하고 감각적인 연출이 캐릭터의 특징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거 같다. (실제로 오리지널 뮤지컬의 원작자인 존 카메론 감독이 영화의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았다.) 어디 건, 관객이 몇 명이 있건, 꿋꿋이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하는 젠더퀴어 헤드윅과 그의 락밴드 앵그리 인치. 남들과 다른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전해 듣다 보면, 처음에는 우울하고 기구한 그 인생이 안타깝다가도 어느샌가 영화의 화려한 비주얼과 캐릭터 고유의 매력, 그리고 다양한 락 장르의 OST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헤드윅과 통합되지 못한 그의 내면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와 세상, 혹은 그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을 하고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헤드윅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는 현실의 관계들에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런데 이토록 불안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헤드윅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우리의 삶에도 경계선 바깥에 놓이는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외롭고 불안정해 보여도 사실 그는 살면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온전한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중이라서, 그 자체로 눈부시기 때문일지도. 그가 고통과 불행의 역사를 견디며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뛰어난 영화는 결국 벽을 넘어선다 - 평론가 이동진의 영화 헤드윅 리뷰
사랑의 기원을 찾아 헤매는 모든 사람과 영원히 공명하며 살아남을 영화 - 평론가 김도훈의 영화 헤드윅 리뷰



# 4. 세 번째 키워드, 커밍아웃


보이 이레이즈드


동성애자 자식과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부모님 간의 갈등에 관한 영화로, 비슷한 줄거리로는 바비를 위한 기도가 더 유명하지만 아들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전개 때문에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치만 이 영화를 부모님께 보여주며 일종의 충격요법을 통해 커밍아웃한 케이스도 더러 보았다.) 보이 이레이즈드 역시 꽤나 무거운 분위기긴 해도 좀 더 해피엔딩에 가깝다고나 할까.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기 전에 본 영화라 더 몰입했던 기억이 나고, 부모님께의 커밍아웃이라는 일생의 숙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떠안기도 했다. 자비에 돌란 감독, 트로이 시반 등 스타 출연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럴 센스


넷플릭스의 철학과 자본을 등에 업어 한국 최초로 BDSM을 다룬 상업영화로, 찰떡같은 캐스팅은 덤이다. 큰 흐름은 BDSM 취향을 소개하는 것인데, 소수자성 혹은 어떤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지점이 많을 것이다. 막 엄청난 교훈을 선사하는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 잔잔하게 찾아오는 영화의 메시지들이 새삼 한국사회의 변화를 체감하게 한달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의 취향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마치 내 일인 양 마음 졸이면서 봤다. 그러다 끝에 가서야 정작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사람이 누구고, 자신의 행동을 창피하게 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떳떳이 고개를 들고 다니고, 약자와 소수 집단이 항상 죄인이 되어 용서를 구한다. 영화의 속 시원한 결말이 하루빨리 현실이 되는 날이 왔으면.


윤희에게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화제가 된 윤희에게는 국내 저예산 독립영화의 현실과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였다. 그동안의 퀴어 영화는 아이들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는 엄마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딸을 통해. 엄마의 서사를 풀어가는데 초점을 맞춘다. 엄마의 행복을 찾아주려 고군분투하는 딸의 모습이 참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의 과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요즘 세대 아이들의 성숙한 태도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또한 러브레터를 오마주한 듯 눈 덮인 홋카이도의 풍경이 서정적인 OST와 어우러져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시킨다. 이제, 러브레터를 대신해서 '겨울' 하면 떠올려야 할 것 같은, 겨울과 참 닮아있는 영화. 김희애 배우의 덤덤하고 나긋나긋한 내레이션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 5. 마지막 키워드, 프라이드


스톤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동성애자 바(Bar) 스톤월은 1969년 미국 최초의 현대적인 동성애자 해방 운동(이하 스톤월 항쟁)이 시작된 장소다. 이곳에서 경찰의 탄압에 맞서 성소수자들의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고 이듬해 열린 행진은 오늘날 프라이드의 시초가 되었다. 몇 년 전 뉴욕을 여행할 때 시간을 내서 스톤월 바에 들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꽤나 용기를 내서 들어갔는데 낮이라 그런지 영화의 뜨거운 분위기보다는 차분하면서도 퀴어 지식인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뭉클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영화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졸작이다. 감독이 만들어낸 이런저런 잡음이나 주인공 설정이 영화 외적으로도 참 별로였고, 영화만 놓고 본다고 해도 캐릭터나 서사의 매력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다. 미국의 보수적인 동네에서 자란 한 소년이 도망치듯 뉴욕으로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다소 극적이고 과장된 감정선과 대사, 그리고 개연성 없는 주인공의 성격 변화가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스톤월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이해하는 프라이드 입문서 정도로는 삼아도 되지 싶다. 온건적 운동과 급진적인 투쟁 사이의 차이점을 제대로 전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항쟁 당시와 제1회 프라이드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되어 그 부분에서 만큼은 만감이 교차했다.


런던 프라이드


내 정체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게 된 이후부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운동권 영화를 즐겨 보게 되었다. 런던 프라이드 역시 1980년 런던 프라이드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석탄노조 파업을 돕기 위해 성소수자 단체가 모금 운동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런던 여행 당시 영화에 나온 서점에 방문한 기억도 있다. 내 여행은 어째 돌아보니 퀴어한 기억들로 점철되는가..)  


'연대'라는 단어를 이보다 잘 표현해낸 영화가 있을까 싶다. 석탄노조와 성소수자라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은 두 집단이 결국은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힘이 되어주고, 두 손을 맞잡는 이야기. 영화의 캐릭터들(특히 성소수자 청년들을 자식처럼 대해주던 석탄노조의 가족들)이 너무 따뜻해서 어째 내가 다 눈물이 났다. 나 하나 살아남기, 내 파이를 지켜내기 급급한 세상, 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가 이기는 길은 이렇듯 서로의 뱃지를 바꿔 다는 것이 아닐지. 누군가를 혐오하는 대신 서로의 불행과 연대하는 것, 이 절실한 메시지가 깊은 울림으로 찾아오는 영화다.


밀크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시의원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 몇 년째 미루다가 포스팅을 위해 최근에야 보았는데 얼마 전 공식적으로는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구의원이 된 마포구의 차해영 당선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비 밀크가 시의원에 당선된 지 무려 45년이나 흐른 뒤의 일이라니 참 놀랍다.) 아이다호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당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과 제임스 프랑코의 케미가 완벽했다.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던 도시 샌프란시스코마저도 동성애자들에게는 자유롭게 살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 시절 한 도시에 한 블록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하비 밀크의 일념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퀴어 지구 '카스트로'를 일구어 내는데 일조했다.


영화는 성소수자로서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쉼 없이 던진다. 하비 밀크의 어록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위로를,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사회에 뿌리 깊이 내려앉은 차별에의 저항의지를 되새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일구어 놓은 자유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자니, 성소수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리게 되기까지 지속되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항쟁과 희생에 안타깝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 우리들의 자부심, 프라이드를 느끼고, 프라이드의 의미를 되새기에 이만한 영화가 또 있을까.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길. 세상의 모든 차별이 뿌리 뽑히는 그날까지 우리의 목소리가 이어지길 바란다.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다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었다고 깨닫게 될 것이다. - 연극 프라이드
You can't live on hope alone, but without hope, life is not worth living. (희망만 갖고는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습니다.)
- 하비 밀크의 암살 전 마지막 연설 녹음으로부터



# D.C. al fine


나는 사실 영화보다도 영화 리뷰를 보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데, 마지막으로 감명 깊게 본 리뷰가 있어서 언급한다. (대충 메모해두었던 거라 무슨 영화였는지 어느 사이트였는지 출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남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 영화에 달린 리뷰였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퀴어로서 한 가지 자부심이 있다면 우리는 조금 특별하게 태어나 남들보다 힘겹게 살아온 덕분에 타인의 어려움에 더 쉽게 공감하고 평범한 일상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게이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공감 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기에 나처럼 경험하고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백날 떠드는 것보다도,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프라이드에 참가한 퀴어들 만큼이나 사회에서 차별받은 적이 없는 비성소수자인데도 그곳에 찾아오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아무튼 이 글을 적는 사이에 이곳 유럽에서도 프라이드 행사들이 하나둘 시작되었다. 다양한 약자들이 모두 함께 퍼레이드에 서서 서로를 확인하고, 응원하고, 연대하고, 위로받는 날. 마음껏 Be gay를 외칠 수 있는 이 날만큼은 비단 성소수자만의 축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가 모두 투쟁이기에, 그 투쟁에 지치고 힘든 사람 누구나 찾아와 위로받고 함께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날만큼은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표현에 자유로워지고, 세상에 들어선 진보와 연대의 물결 느끼고, 축하와 응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프라이드, 그러니까 자부심이라는 감정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공동체와 자유의 무게를 피부로 체감했다. 축제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도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서둘러 이 도시의 축제를 맞이하러 가봐야겠다. 하루빨리 축제 없이도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아니, 그래도 축제는 있어야 한다. 성장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으니까. 우리에겐 더 자주 함께 춤을 출 핑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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