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퀴어들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
현대 사회에 결혼이란 뭘까. 새로운 사회적 책임과, 막대한 비용, 양가 부모님의 등쌀까지 떠안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절차? 아니면 두 가족에게 주어진 인간관계의 시험대? 어떤 커플들은 이 세속적이고 형식적인 기성세대의 결혼 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웨이브의 새 예능 프로그램 메리퀴어에, 사람들 모두의 만류와 걱정과 우려에도 그놈의 결혼이 뭐라고, 그걸 기어코 하겠다고 나선 세 커플이 있다.
방송에 나오는 세 커플의 연애 장면은 여느 흔한 연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랑하고, 놀리고, 질투하고, 특히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풀어나가는 장면은 오히려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이 커플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결혼, 그런데, 결혼과 목표라는 단어는 왠지 썩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혼은 적절한 상대와 시기를 찾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먹는 일이지 그 자체를 목표로 살아갈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 다시 말해 결혼이 목표라는 말은, 결혼이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 커플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에게 결혼은 온갖 제약과 통념과 금기를 깨부숴야 하는 일이다. 투쟁과 좌절을 끊임없이 거듭하여 쟁취해야하는 일이다. 조금 나아졌다고 하는데도 동성커플의 혼인신고 민원은 수리조차 되지 않는다. 내 돈 주고 고용하겠다는데도 이들을 위한 웨딩 플래너는 쉽게 나타나지 않으며, 수영장과 헬스장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은 트랜스젠더-양성애자 커플은 또 어떻고. 그런데 그들 앞에는 아직 이보다 훨씬 큰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족들에게 미뤄둔 커밍아웃, 부모님과의 갈등, 성기 적출 수술, 성별 정정, 해외이민절차 등등 그 문제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보여서 이 결혼식이 험난하다 못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메리퀴어의 초반부는 꽤나 비극적이다.
초반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우리 퀴어들 결혼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를 이야기하던 메리퀴어는 편성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각자의 어려움을 하나둘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라면 지치고 힘들어 이미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직스러운 연인과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 1세대 선배 퀴어 홍석천과, 이미 결혼식을 준비 중인 퀴어 커플, 혜우 스님, 친구들, 그리고 성소수자 부모모임 분들까지, 연인들은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아래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가족들도 결국에는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네가 원하는 인생이니까, 엄마가 그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 너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고 말하며. 그러니까 메리퀴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씩씩하고 용감하게 이겨내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결혼이라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간절하고 절절하게 전해내는 프로가 있었을까. 세상을 향한 그들의 분투와,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너무 예쁘고 부러워서 매 에피소드가 눈물버튼이었다.
그렇게 세 커플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의 결말을 맞이했다. 비록 아직 한국 사회에선 결혼이라는,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시작으로 다음 연인들 혹은 그다음 연인들은 조금씩 그 목표에 가까워질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특징은 빠른 변화와 적응이다. 개인방송의 시대가 열리며 퀴어들은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고, 점점 많은 퀴어들이 우리 일상 주변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렇게 메리퀴어까지 왔다. 이제 이 흐름은 결코 누군가 쉽게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합법적인 동성혼 혹은 그에 준하는 권리가 시민결합으로 보장되는 유럽지역에 살아가는 퀴어로서 메리퀴어는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일면들을 보는 것 같았다. 편성 초반 게이 커플의 혼인신고 당시 수리를 담당했던 도봉구청 공무원은 무척 친절했다. 민원을 해결해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면에 편성 후반에 미국의 담당공무원은 아주 딱딱했고 이곳 유럽도 더 불친절하면 불친절했지 친절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퀴어 커플에게 필요한 건 친절함이나 동정이 아니라 동등한 권리다. 친절하게 거절당할 바에는 면전에 욕을 하더라도 수락받는 게 낫다. 그러나 그 동등한 권리를 받지 못해 혼인신고를 신청하는 사람도, 불수리를 전하는 사람도 여전히 마음 아파해야 하는 현실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퀴어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터뷰에서 나에게 결혼이란? 나에게 상대방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것을 보면, 또 그들이 미래를 고민하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패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퀴어 커플도 다른 이성애자 커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차별받기 싫다는 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치만 여전히 메리퀴어는 한국사회에 살아가는 퀴어들의 삶 중에서 극히 희망적인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맞는 짝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결혼은 무슨. 툭하면 부모님과의 갈등에 낯선 사람들의 시비는 물론 가족들과 연을 끊고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는 별의별 비극들 사이에서 피어난 한송이의 판타지처럼 보인달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이러한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더 많은 퀴어 새싹들이 꿈꾸고 행복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래서 메리퀴어는 퀴어들에게 정말로 소중한 프로그램이고, 나는 이곳의 세 연인들이 평생 저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결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남들이 미쳤다고 한다." 아마 성소수자의 결혼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 보성의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성소수자의 결혼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더 많이 응원받고 더 많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르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퀴어라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다. 함께 이겨낼 것이 있는 삶 속에서 어떤 이들의 사랑은 더 튼튼하고 견고해질 테니까. 남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들은 보람과 감사함 그리고 행복함을 느낄 것이다.
물론 결혼이 삶의 끝은 아니다. 기나긴 인생 이야기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혼을 시작으로 이들의 앞날에는 또 다른 역경과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는 따로가 아닌 함께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껏 그 권리와 의무를 너무 쉽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면, 메리퀴어를 통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고 정의내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