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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09. 2024

점(點)

평생을 수학 선생을 하다가 정년을 맞은 동창생이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의 수고를 인사하고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지키지 못할 말로 통화를 끝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수학에 관한 많은 생각이 이어졌다. 미적분을 어떻게 풀었지? 로그함수는? 코사인이 뭐였더라. 수학 문제는 골치 아프지만, 답을 찾았을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은 온몸을 전율케 한다. 그 전율은 기억나는데 풀이가 뭐였는지는 당최 가물거리기만 한다. 공대를 졸업한 것이 맞기는 하는지 자신에게 의혹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산수의 시간에서 수학의 시간으로 들어간 중학교 첫 수업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별것도 아니다. 선(線)에 대한 정의다. ‘선은 수많은 점의 집합’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초록 칠판에 하얀 분필로 선생님은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땅·땅·땅 무수한 점을 찍어서 기어이 선을 완성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특정한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이 있다. 칠판 오른쪽 부분이었다는 것까지 생각나는, 바로 그런 기억이다.

  

갑자기 드는 생각, 그러면 ‘점(點)’은 뭐라고 정의하지. 별 쓸데없는 것이 궁금해진다. 분명 그때 수업 시간에 배웠을 텐데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정의를 찾아봤다. ‘점은 0차원이고 부분이 없는 존재’라고 정의되어 있다. 수학에서의 점은 면적도 부피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분명 있는 존재가 없는 존재라니.     


면적도 부피도 없다니, 그러면 없는 존재여야 맞는다. 그런데 ‘없는 존재가 모여서 존재하는 존재’인 線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점이 없으면 선이 없고 선이 없으면 면이 없고 면이 없으면 입체가 없으니 물질이 없고 세상도 없는 것이다. 이럴 수가. 면적도 부피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인 점이 물질을 만들고 있다니. 바로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물리학자가 우주의 근원과 물질의 근본을 찾고 있다. 원자가 끝일 줄 알았더니,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가 있었고, 또 그게 끝인가 했더니 입자가 있었고…. 이론으로만 존재를 예견했던 神의 입자가 드디어 검출되어 인류가 흥분한 것이 10여 년 전이다. (그 존재를 예견했던 학자도 얼마 전 입자가 되어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 神의 입자를 발견했음에도 우주의 근원이 명쾌히 설명되지 않자, ‘뭔가 있어야 하는 물질이 더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뭔지 알 수도 없고 관측할 수도 없으나 있어야 한단다. 암흑물질이라나. 우주에는 관측되는 원자, 입자보다 암흑물질이 더 많다니 匹夫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물질이 '더 많은 것인지', 물리 방정식에 들어맞아야 해서 '더 많아야 하는지'도 아리송하지만, 아무튼 그렇단다.


그런데 나는 알고야 말았다. 우주 만물의 근원을. 그것은 바로 점이다. 점이야말로 우주와 모든 물질의 근원이다. 없는 것이 존재를 창조하니 우주 만물의 근원이 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불가에서의 無의 세계,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시무시일(一時無始一)도 점을 어렵게 말하는 것이리라. 누구나 알고 있는 점. 그러나 막상 뭔지 알 수 없는 것. 점. 학자들아! 머리 싸매지 마라. 세상의 근원은 점이다. 점.      


그때 선생님께서 칠판에 땅. 땅. 땅. 땅…. 빛의 속도로 내려찍은 점들이 선이 된 그 순간. 바로 우주가 탄생한 태초의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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