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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18. 2024

배타적 민족성에서 벗어나자

저출산으로 우리의 노동력 감소 문제는 날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마침내 정부도 이민청 설립을 준비한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을 일찍 받아들인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가 겪는 후유증을 보면 발생할 문제 또한 가벼이 볼 수는 없다.

  

90년대 중반, 회사 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첫 해외 방문이었다. 신기술 박람회를 참관하는 업무 반, 여행 반의 부담 없는 출장이었다. 자주 국민의 눈총을 받는 공무원의 해외연수쯤이었다. 교통과 숙박 등 모든 일정을 스스로 계획해야 했기에, 책도 사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일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왕이 산다는 황궁도 아니었고 오래된 신사도 아니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눈처럼 휘날리던 우에노 공원의 벚꽃도 아니었다. 가장 잊히지 않는 기억은 우에노 공원과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외국인들이었다. 다양한 인종이 자그만 손수레에 액세서리 같은 것을 펼쳐 놓고 파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하던 내게는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


27년 전의 일본과 지금의 우리 모습을 대비해 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노점을 펼쳐 놓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법이 그런지, 아니면 문화 토양이 그래서인지 잘 모르겠다. 18세기경 서울 인구가 20만 정도였고, 에도(지금의 도쿄)는 벌써 인구 백만의 국제도시였다고 한다. 인구수뿐 아니라 국제화 관점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고 하니, 그 차이로 근대화와 이후의 나라 운명은 이미 정해졌을 것이다. 그때 봤던 외국인 노점은 에도시대의 개방 문화가 계속 내려오고 있었던 것일까.

  

언젠가 휴일에 혜화로터리 부근의 은행 앞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외국환업무를 휴일에도 한다는 안내판을 보고서는 이해가 되었다. 일을 쉬는 주말에 고국에 송금하려는 사람들이다. 휴대전화를 보며 쪼그리고 앉아 점포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그들은 무표정하고 왠지 방어적이고 불안한 눈빛이었다. 타국에서의 고달픔일까? ‘사장님 나빠요’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국민의 업신여김과 핍박 때문일까? 나 또한 거두절미하고 외국인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그네들을 낮잡아보는 선입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K-pop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은 세계화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들도 조금씩은 마음과 사고를 열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말하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사원을 짓는 일에 반대하여, 이슬람에서는 금기하는 돼지고기를 구우면서 집회를 한다는 뉴스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느 공무원이 담당하는 마을을 방문했더니, 다문화 가정이 없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는 이장에게서 좌절을 느꼈다는 글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피부가 하얀 인종에게는 왠지 주눅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이유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영업하는 이태원조차 아프리카 출신이 클럽 출입을 제지당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배타성이 인종차별까지 나아간 사례다. 저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원래 배타적 민족인가? 일본이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민족 아닌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개방적이고 지금보다 더 세계화가 진전된 사회에서 살았다. 고려 시대 ‘쌍화점’이라는 가사에는‘회회 아비(이슬람인)’가 등장한다.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세종조까지만 해도 이슬람 성직자들이 정착해서 살았고, 공식적인 궁중 행사에도 참석하여 이슬람 기도와 코란 낭송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라의 재정문제로 세종 때(1427년 4월) 폐지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우리 민족도 과거에는 타민족과 그 문화를 넓은 마음으로 포용했음이 분명하다. 거창하게는 인류애를 가진 민족이었고 자신감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한 심성이 조선 중기 이후 두 차례의 전란과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절을 거치면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릴 적부터‘반만년 단일민족’의 숭고함을 각인시키는 교육으로 우리 마음 깊이에 과도한 민족정신이 지배하여 배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白衣 민족’을 강조하여 우리는 순수하고, 또 순수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우리 마음에 침윤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로 한민족이 사라질 위기라는 현실이 기후변화의 심각보다 더 급하게 다가온다. 김진명의 소설‘풍수 전쟁’은 이런 저출산 문제에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작가는 유럽연합(EU)처럼 동남아시아연합(EAU)을 만들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런 해답을 낸 것은, 소설의 허구로도 우리 스스로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가 한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의 해결책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민족을 포용하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노력과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도 선행되어야 한다. 배타성에서 나온 차별이 이민족 간 불화의 근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최후의 대안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이니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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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한국문화/이희수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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