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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n 09. 2023

한가윗날 받은 아내의 편지

부부란~



  지금 한국의 산야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어요. 지난여름이 지독히 더웠던 탓에 올 단풍은 어느 해보다 화려하게 불타고 있답니다. 고속도로가 행락객으로 몸살을 앓는데 당신과 함께하지 못해 아쉽네요.      


  딱하게도 그곳 사람들은 평생 단풍 구경을 못 하겠지요? 허허벌판 모래사막뿐이니.

그러니 그들이 어찌 알겠어요. 봄이면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을 구가하다가, 가을에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수놓은 후, 겨울이면 하늘에서 하얀 보석이 쏟아져 내리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일 년에 삼사일 내리는 비를 신이 축복으로 여기며 산다니······.

그들이 돈 많다고 절대 기죽지 마세요.

그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면 천만금이 무슨 소용인가요.     

 

  지난번 편지에서 당신은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죠. 하지만 나는 알아요.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라는 것을. 급여받으러 회사에 가면 다 들려요. 어디서 듣는지 사원 부인들이 훤히 알고 있거든요. 당신 의도대로 모른 척하고 있을까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부부잖아요. 부부란 좋을 때 같이 웃고,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사는 거잖아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일심동체라면 그게 무슨 부부겠어요.      


  과중한 우리 사주 때문에 당신이 마음고생 심하겠다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워요. 혹시라도 그 문제로 내가 속상해할까 봐 마음 쓰지는 마세요. 나는 부모 그늘에서 고생 모르고 자랐으니까 억울할 게 하나 없어요. 당신은 이제껏 고생만 했으니 어서 좋은 세상을 봐야 할 텐데······.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걱정이겠어요. 건너편 더 높은 산을 보고 출렁다리를 건네려면 흔들리기도 하고 현기증도 나겠지요.

  우리 조급하게 굴지 말아요. 아직 젊으니까.          



     

  무길이 편지를 접고 생각에 잠겼다.

아내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어. 허리띠를 졸라가며 남편을 지원했는데, 주가는 거꾸로 가고 있으니 원망스럽기도 하련만, 내 걱정만 하고 있으니······.   

  

  상념이 날개를 펴고 신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와의 만남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던가. 성장 시절 나는 언제나 변방에 머물렀었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내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녀를 만나자 세상이 거짓말처럼 변했어. 그녀는 나를 우주라 생각했으니까. 장인, 장모, 처남, 처제, 주위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였고, 내 일로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어. 놀랍고 신기했지.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울렁였어. 세상이 이렇게 따뜻하고 안락할 수 있다니. 처음엔 적응이 안 됐었지.··· 나는 아내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어.     

 



                                                              무길의 회신     


  답장은 아주 간단했다. 딱 한 마디.

 ‘나는 당신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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