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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n 29. 2023

제 3국인이 보는 한국과 일본

작업장 교체

                              작업장 교체    

 

  11월 들어 2공구가 1M 관 작업을 완료하자, 2, 4공구는 간선 도로 구간으로 3, 5공구는 1M 관 구간으로 작업장을 교대했다. 예정 공정상으로는 8월 교대로 돼 있었으니 3개월 늦은 셈이다. 그런데도 4공구는 간선도로 500m 정도 잔여 구간을 남겨놓고 있었다.


  1M 관 매설구간은 마의 구간이었다. 작업장 교대 일주일 만에 3공구에, 다시 열흘이 지난 11월 중순에는 5공구에, 물귀신처럼 대형 암반지대가 버티고 있었다. 한동안 순항하던 담맘 호가 다시 먹구름에 휩싸였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과 일본   

  

  일몰 후 쌀라타임. 무길이 알 호잔 앞에서 예배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5공구에 추가 투입할 착암기를 구매할 참이었다.

  건너편 알 와벨 앞에서는 쿠레이가 한국인 구매자들을 상대로 익살을 부리고 있었다.

  “꼬리 자리 읍써, 사우디 자리 이써.···꼬리 자리 읍써, 사우디 자리 이써.”

  ‘자리’는 ‘남자의 성기’를, ‘읍써’는 ‘작다’, ‘이써’는 ‘크다’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사우디인의 성기는 아주 큰데, 하의가 헐렁해서 발육이 잘되기 때문이라한다.

  한국인 구매자들이 낄낄대며 웃으니까, 쿠레이는 신바람이 나서 거시기를 손으로 감싸고 반복해서 외쳐댔다.

  “꼬리 자리 읍써, 사우디 자리 이써······”    

 

  쿠레이 옆을 지나 한 서양인이 무길 쪽으로 오고 있었다. 자재골목은 한국인 독무대라 서양인은 대번에 눈에 띄었다. 몇몇 한국인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알 호잔 앞 무길이 있는 곳에 와서 멈춰 섰다.

  그는 한동안 흠씬 젖은 땀을 닦고 나더니, 무길에게 알 호잔은 자기네 거래처라며 말을 걸어왔다. 이어 묻기도 전에 자신은 독일인이며 이름이 브라운이라고 밝힌 뒤, 상대방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무길이 국적을 밝히려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에게 반문했다.

  “내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한번 맞춰보세요.”

  무길은 서양인들이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죠. 일본 사람은 이렇게 밖으로 나다니지 않습니다. 시원한 사무실에서 근무하죠.”

  순간 무길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사우디에서 공사하는 건설업체들을 보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던데 한국인은 중국어를 하나요, 일본어를 하나요?”

  브라운이 다시 한번 무길의 자존심을 긁어놨다. 심사가 뒤틀린 그가 반격을 가했다.

  “내가 먼저 묻겠습니다. 독일인은 영어를 하나요, 프랑스어를 하나요?”

  독일인이 잠시 당황해하더니 말했다.

  “아아, 실례했습니다. 한국인 고유의 언어가 있군요. 그럼 고유의 문자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한국은 고유의 언어와 문자는 물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나라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일본은 과거에 한국이 문물을 전해준 나라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문물을 전해줬다고요?”

  “일본에 서구 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천 년 이상 그랬지요. 근대에 와서 일본은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였지만, 불행히도 한국은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에 역전당했지요.”

  “그런 과거가 있었군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재역전의 시대가 오리라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라이벌 관계였지요. 한국과 일본도 그런 관계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재미있는 비교네요. 한국인은 믿어지지 않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으니 두고 볼 일입니다.···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다른 거래처 먼저 들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무길을 뒤로하고 브라운이 총총히 사라졌다.      


  독일인을 보내 놓고 나서 무길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감이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려 들었다.

  과거에는 우리가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는 말을 그는 궁색한 변명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옛날에 금송아지 없던 집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브라운에게 한국인은 ‘믿어지지 않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금은 더운 날씨에 밖에서 일하는 처지’ 일뿐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초인 같은 사람들.’, ‘머슴살이하는 놈.’ 이 두 가지 상반된 말을 그가 종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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