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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Nov 12. 2023

마대(sag)

차 전복 사고

  다란 소재, 펩시콜라 총대리점.

  “장 당 10리얄이요.”

  매니저가 마대값을 불렀다.

  “네? 10리얄?”

  무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쉽기로 말하면 값이 문제가 아니었지만, 마대 한 장에 10리얄이라니.

  아라비아 상인의 똥배짱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흔히 쓰는 무대포식.··· 무길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저자의 속내를 어떻게 들춰낸다?···그래. 똥배짱에는 똥배짱이야. 무길은 상대방의 말을 싹 무시하기로 했다.

  “사용하고 난 물건이니 이제 버리는 것 아니요. 쓰레기를 그렇게 비싼 값에 판다는 말은 처음 듣네요.”

  “쓰레기라고요? 전에는 그랬었지요. 근데 요즘 와서 당신네 한국인들이 많이 찾거든요.”

  여유를 보이려는 듯 매니저가 상체를 등받이에 기댄 채 말했다.

  “10리얄이 비싸다고? 물량이 달려서 이젠 값을 더 올릴 생각이란 말이요.”


  '흠, 전에는 그랬었다고? 한번 찔러나 본 건데 간단히 고백을 받아냈군.' 무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야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준비가 안 됐지만, 다른 회사 현장은 본국에서 반입해 쌓아놓고 있을 텐데, 돈 주고 살 리가 있을까요?”

  무길이 검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눈 딱 감고 말했다.

  “1리얄이라면 살 의향이 있습니다.”

  말을 던져 놓고 무길은 속이 조마조마했다.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가. 저들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거래를 끊어버리는데···.

  “장난하자는 거요, 지금?”

  매니저가 등받이에서 몸을 세우며 얼굴이 벌게져서 말했다.

  “생각이 없으면 그만합시다. 가서 낮잠이나 자겠소.”

  무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그러려면 아예 시작을 말았어야지.

  “그렇담 할 수 없지요. 우리 매니저가 다른 회사 현장에서 빌려다 쓰자는 걸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쩔 수 없군요. 일단 S사에 가서 급한 대로 빌려 쓸 수밖에.”

  무길이 구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친김에 출입문 쪽으로 몇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매니저의 태도가 돌변했다.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군요. 내가 크게 양보하지요. 5리얄만 내시오.”

  무길은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서로 바쁜 데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5리얄과 1리얄, 나도 양보할 테니 3리얄로 끝내죠"

  어이가 없다는 듯 매니저가 말없이 무길을 빤히 쳐다봤다. 무길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맞받았다.··· 한동안 눈싸움을 벌이던 매니저가 큰 소리로 웃어제꼈다.

  “두 손 들었소. 아라비아 상인이 한국 상인을 못 당하겠구려.”

  무길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창고에 있는 800여 장의 마대를 몽땅 구매했다.      



     

  이제 2공구의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수맥은 암반과도 달라 관로에 물이 차 있는 한 아무 작업도 할 수 없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모처럼 다란에 온 김에 그곳에서나 살 수 있는 물품 몇 가지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체돼 식사 시간에 맞춰가기가 빠듯했다. 일이 일찍 끝나든 늦게 끝나든 구매자는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다란-담맘 간 도로는 늘 혼잡한데 오늘은 다행히 한산해서 속도 내기가 좋았다. 게이지가 180km까지 올라가며 좌우 전신주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으려는 순간,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치고 가는 게 있었다. 맞아, 과속방지턱! 이, 이 부근인데···앗! 급브레이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앞 타이어가 방지턱에 강한 충격을 받아 차가 덜컹했다. 높다란 방지턱 위에 올라서는가 했더니 옆으로 기우뚱했다. 무길은 눈을 질끈 감고 운전대를 움켜잡았다. 마침내 쾅하고 차가 옆으로 누어 버렸다.   

   

  뒤따라오던 3개 차선 차량이 줄줄이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현지인들이 배를 드러내놓고 있는 무길의 차로 몰려들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무사한가, 큰 부상은 아닌가. 숨을 죽이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관객들은 어이가 없었다. 차 안에는 외래종 한 녀석이 있는데, 잔뜩 겁을 먹고 운전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아랍어로 뭐라고 떠들어대는데, 모르긴 해도 무길은 그들의 말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별 이상한 녀석 다 있네. 누가 어떻게라도 했나? 살다 보니 별 인간 다 보겠군···”

  한바탕 깔깔대던 관객들이 힘을 모아 차를 바로 세웠다.    

  

  한숨 돌리고 난 무길이 둘러보니, 뒤쪽 유리창이 박살 나고 차 안에 실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갔다. 트렁크에 싣고 남은 마대와 나중에 추가로 구매한 물건들이었다. 우선 시동을 걸어봤다. 다행히 운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도로 위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챙겨 넣고 유리 조각들을 쓸어 모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쌀라 타임과 함께 도로에서 차량이 완전히 사라졌다. 조금만 늦은 시간이었다면 어쩔 뻔했나. 펄펄 끓는 길바닥에 혼자 던져졌으니, 마른오징어가 될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다시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준 운전대를 잡았다. 캠프를 향해 달리면서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술이라도 취했나. 왜 차가 제풀에 쓰러지나. 그리곤 운전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꼴이라니!    

  

  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식당은 들릴 필요도 없어 곧바로 숙소로 갔다. 부국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길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다른 날 같으면 ‘풍성한 식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하옵니다.’라고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바라옵건대 앞으로도 밥은 못 먹어도 좋으니 위험에서 구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일어나 샤워를 하려는데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었다. 다시 손을 모아 간구했다.

  ‘가능하면 오늘 같은 일은 피하게 해 주시옵고, 피치 못할 일이라면, 길바닥에서 마른오징어가 되는 일은 없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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