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해체법??

by 강훈

공포는 언제나 진실보다 발이 빠르다. 특히 그 공포가 ‘나의 집’ 혹은 ‘나의 신념’을 무너뜨린다는 자극적인 외침을 입었을 때, 대중의 이성은 본능적인 방어 기제 뒤로 숨어버린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이른바 ‘교회 해체법’ 논란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얼마나 허약한 언어의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유튜버가 전하는 소식은 가히 파괴적이다. 민주당이 주도하여 교회를 강제로 폐쇄하고, 영장 없이 장부를 뒤지며, 교회의 모든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영상은 이를 ‘사탄의 칼날’이라 명명하며 기독교인들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자극적인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마땅히 직시해야 할 복잡한 법적 맥락과 이를 왜곡하는 언어의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다.


유령의 이름표: ‘교회 해체법’이라는 낙인

먼저 팩트를 정교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입법 예고 목록에 ‘교회 해체법’이나 ‘교회 폐쇄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무소속과 범야권 의원들이 발의한 ‘민법 제38조 개정안’이다.

현행 민법 제38조는 비영리법인이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할 때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공익을 해한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주무관청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손을 놓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바로 이 모호한 기준을 구체화하려는 시도다. 즉, 법인의 대표자가 조직적으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여 정치 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공익을 현저히 해치는 경우를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과거 일부 종교 단체가 조직적으로 정당에 가입해 경선에 개입하거나 후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반사회적 의혹들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교회 해체’라는 자극적인 표제를 붙이는 것은, 법안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비판의 영역을 넘어 사실 자체를 공포의 연료로 바꿔버리는 행위다.


행정의 검사와 사법의 영장: 의도된 혼란

영상이 주장하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 역시 법적 개념을 의도적으로 뒤섞은 결과다. 개정안이 명시한 공무원의 사무소 출입과 장부 검사는 비영리법인에 대한 주무관청의 일반적인 ‘행정 감독권’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는 범죄 수사를 위한 강제 수사(압수수색)와는 엄연히 다른 행정 절차다. 만약 행정 조사가 형사 수사로 전용되려 한다면 그때는 당연히 사법부의 영장이 필요하다.

재산의 국고 귀속 문제 또한 새로운 악법의 탄생이 아니라, 민법이 규정하는 비영리법인 해산의 일반 원칙이다. 법인이 해산될 때 정관에 정한 승계인이 없으면 국가로 귀속되는 것은 오래된 법적 질서다. 이를 마치 특정 종교의 자산을 강탈하기 위한 ‘사탄의 꼼수’로 둔갑시키는 것은 대중의 무지를 담보로 한 위험한 선동이다.


언어의 포퓰리즘: 사유를 마비시키는 야만의 기술

심리학적으로 조롱과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번 다뤘던 ‘영포티’에 대한 조롱이 노화에 대한 공포의 투사라면, ‘교회 해체법’이라는 명명은 자신의 신념 체계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불안을 자극해 정치적 결집을 끌어내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해당 유튜버의 입장만을 생각하면 정치적 결집보다는 조회수 올리기의 의도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언어들은 ‘텍스트(실제 법안)’를 읽으려는 노력을 ‘서브텍스트(공포의 암시)’로 덮어버린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감옥에 간다”거나 “민법이 바뀌면 교회가 국가에 헌납된다”는 식의 자극적인 문장들은 복잡한 법률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언어가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악마화하는 몽둥이가 될 때, 시민의 주권적 사유는 멈추고 군중의 광기만 남는다.


맺으며: 소음 속에서 원문을 읽는 용기

진정으로 교회를 지키고 신앙의 가치를 보전하려는 이라면,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보다 단조로운 법안의 원문을 먼저 읽어야 한다. 법안의 구체적인 조항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수정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 시민이자 신앙인의 태도다.

공포에 투항하는 것은 쉽다. 누군가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품격’과 ‘진실을 대하는 예의’다. 냉정하게 팩트로 공포의 거품을 걷어내고, 그 안에 남겨진 인간 존엄의 가치를 끝까지 응시하는 것. 유령처럼 떠도는 자극적인 언어들에 현혹되지 않고 나만의 사유를 지켜내는 마음이야말로, 이 야만의 시대를 건너가는 가장 강력한 기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