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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Dec 01. 2022

쪼쪼에서 초록 땅으로, 이름을 바꾸며

취미를 잃어버린 삶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사 먹은 츄러스도, 와플을 먹기 위해 갑자기 벨기에로 날아갔던 것도, 50도에 육박하는 호주의 사막에서 불개미에 잔뜩 물려 만신창이가 되었던 것도, 오사카의 수족관에서 본 크고 작은 물고기들도, 모두 그리워하기만 해야 한다. 여행은 나의 취미이자, 내 삶의 전부였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며 집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작가명을 등록하고 글을 몇 편 쓰다 보니 아무래도 쪼쪼라는 이름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나를 표현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인 초록 땅으로 작가명을 수정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보다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초록 땅이라는 이름은 나의 실명과 관련이 깊은 이름이다.


최근 몇 년 들어 내게 취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은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은 유일하게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에 제약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의 변이들이 생기며 해외에 여행을 가는 것은 당분간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한다. 여행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여행을 위해 살았다. 회사생활을 할 때에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돈과 연차를 아껴 모아 일 년에 최소 네 번 이상은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학고만 면하자는 생각으로 학점을 모두 포기한 채 학기 중에도 긴 여행을 다녔다. 물건을 구매할 때에도 결정의 척도는 여행하면서 쓸만한 물건인가, 아닌가. 휴대가 간편한가, 아닌가 였다. 그 덕분인지 내가 자취를 할 무렵 내 집에 찾아오는 친구들은 내 집이 짐도 없고 텅 빈, 마치 펜션이나 어디 숙소 같다고 했다. 언제라도 들고 떠날 수 있을 물건만 눈에 들어왔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라지자 나의 허무함과 상실감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맴돌고 있다. 남들은 게임이라던지, 운동이라던지, 십자수라던지, 쉽게 취미를 만들고는 하던데, 왜 나에게는 그 흔한 취미 하나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여행이 아닌 다른 취미를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해 보았으나, 도저히 흥미가 붙질 않아서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려 그만뒀다.


나는 보통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1인 창업을 하는 만큼 내 인생에 있어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것이 일로써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진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취미활동을 따로 할 시간도, 찾아볼 마음의 공간도 없다. 그런 내게 유일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최근 들어서는 이 브런치에 기고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 글을 읽고 가시는 분들도 감사하고, 하트를 눌러 공감을 표현해 주시는 분들도 감사하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러운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께도 큰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고, 요즘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을 느낀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댓글 문화도 덩달아 발달했지만 이곳에서만큼 서로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그 마음에 침투하며 댓글로 자신의 공감을 표현하는 곳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자꾸 마음이 가고, 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하루 중에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으로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의 글을 쓰는 게 가장 취미에 가깝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다.


취미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척박하다. 자고 일어나면 온통 "해야 할 일" 투성이다. "하고 싶은 일"은 없다. 해야 할 일들에 파묻혀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은 마치 사치처럼 느껴져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내가 브런치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니 이게 참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식을 하고 말고를 떠나, 잠시라도, 하루에 5분이라도,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은 그 후에 따라올 긴 "해야 하는 일"에 더 큰 효율을 안겨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전부였던 여행이라는 것을 대체할 취미활동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안다. 내 안에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내 삶의 전부이자 목표였던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것을 잘 안다. 어떤 취미가 내게, 밤 비행기의 불편한 설렘을 안길 것인가. 어떤 취미가 내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가며 지겹도록 본 황량한 눈벌판을 선물할 것인가. 어떤 취미가 내게 밤하늘을 수놓은 수천 개의 별이 곧 떨어질 것만 같은 인도 자이살메르의 사막을 선물할 것인가. 어떤 취미가. 어떤 취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내 일상에서 잡을 수 있는 한 뿌리의 나뭇가지라도 잡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일상을 돌아보면 분명히 내 인생에도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뭉실뭉실하게 실체가 없는 그것들을 찾아 헤맨다.


오늘 아침도 브런치로 시작한다. 이 시작이 썩 좋다. 이제 다시 일을 하러 간다. 오늘 하루는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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