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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Dec 13. 2022

포기하려고 한다, 멋있게 살기

허세와 사치에 미쳐버린 세상으로부터의 탈피

문과 감성으로 세상을 보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다. 돈 한 푼 없어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구경은 공짜다. 새파란 하늘 구경도 공짜다. 세상엔 굳이 허세 부리고 사치 부리지 않아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 참 많다.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개인 사업용으로 관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만 있을 뿐 내 사생활과 관련된 SNS는 없다. SNS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 되는 이유는 역시 ‘관심 없는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살면서 나하고는 0.1mg도 상관이 없을 연예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았는지 따위는 당연히 궁금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당장 내가 오늘 해야 하는 일이 먼저지, 그들이 오늘 뭘 먹었는지, 어딜 갔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때로 우리는 필요 이상의 너무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주입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끈기를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선택지가 많으면 잡생각이 드는 법이다.


SNS가 순기능만큼이나 역기능이 많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음에도 SNS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 마케팅의 피해자다. 무한 스크롤이라는 기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관심 콘텐츠의 끊임없는 보임으로 인한. 결국 중독으로 이어져버린 마케팅의 결과들인 셈이다.


멋있게 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SNS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폼나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공간에 중독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는 것이니. 이게 다 멋있게 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나는 멋있게 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조금 일하고 많이 버는 삶? 포기하기로 했다. 구슬땀 흘려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정당하게 벌련다. 그런 내게 박수치는 사람보다 멍청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러려면 그러라고 하련다. 물건을 살 때마다 고민 없이 플렉스 하는 삶? 포기한다. 소소하게 천 원, 이천 원 아끼며 야금야금 모아 내가 염원하던 것들을 행복한 마음으로 사 소중히 쓰련다. 매 주말마다 여행 다니는 삶, 역시 포기한다. 생활비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즐겁게 지내련다.


하나도 안 멋있는 삶을 살 거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외칠 수 있는 삶을 살 거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을 사랑한다 말함에 한 치도 부끄러움이 없다.


아침 눈 떠서부터 밤 잠들 때까지 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아침을 맞이하고, 같이 한 이불 덮고 잠들 수 있는 오늘이 좋다.


사고 싶은 모든 것을 사지는 못하지만, 아껴 쓴 용돈을 모아 찜 해두었던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만드는 소박한 선물을 살 수 있는 오늘이 좋다.


마트에서 장 볼 때 9천 원짜리보다 7천 원짜리에 손이 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 요리를 먹을 때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는 이상 내게는 7천 원짜리 재료는 7만 원짜리 재료가 되기에 그 소중한 말을 들을 수 있는 오늘이 좋다.


이번 주말도, 다음 주말도, 그다음 주말도 마음 놓고 여행을 다니진 못하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기념해 떠나는 여행이 값지고 소중하고 의미 있기에 함께 할 여행에 설레는 오늘이 좋다.


멋있게 사는 것을 포기하면 내가 궁상맞고 별거 아닌 존재로 느껴질 것 같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허세 부리지 않고 사는 것만큼 담백한 삶은 없고, 담백한 것만큼 진실된 것은 없다. 중요한 건 선물 포장이 아니라 선물의 내용물 아닌가. 추석 선물세트로 회사에서 엄청나게 화려한 금박지와 생화로 포장한 스팸을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주기적으로 냉장고 정리를 하듯, 옷장 정리를 하듯, 우리의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고 우리의 생활공간에서도 허세와 사치를 내다 버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불 꺼진 침대 위에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가수 이무진이 리메이크해 부른 개똥벌레를 들으며, 저 세상 코 골기를 시전 하는 남자 옆에 드러누워 글을 쓰고 있다. 이 추운 날 따듯하게 발 뻗고 잠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세상에 감사한 오늘 밤이다.


내일은 사랑하는 코골이 맨에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줘야지. 얼마나 맛있게 먹을지 기대된다. 때 마침 해동한 가자미가 냉장고에 있다. 잘됐다! 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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