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늘보 May 16. 2024

좋아하는 것도 눈치껏 해야 한다니, 차라리 안하고말지

나는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근 몇 년 글쓰기를 푹 쉬었다.

의도치 않게 글을 읽는 것 또한 쉬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만한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은 채 며칠 안된다. 사흘 되었나 보다.

그동안은 많이 바빴다. 내 인생에 중요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것이 일처럼 느껴졌다.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브런치든.. 심지어 일기장에 혼자 끄적이는 것조차.

나는 글을 쓸 때 다듬지 않는 편이다. 원고를 모아 발간할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기고하는 글도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상태를 최대한 존중해 날 것의 느낌을 강하게 남긴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도 않는다. 한 번 남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말과 달리 글은 여러 번 고쳐 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으나 그게 장점인지는 모르겠다.

고치면 고칠수록 강렬했던 당시의 느낌과 감정이 글 속으로 숨어드는 느낌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은유적 표현이 한 때는 멋이라 여겨져 시 따위를 무턱대고 동경했던 날도 있었으나, 지금은 직관적인 표현이 더 좋다. 음미하고 있을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글이 나에게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전락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애달플 때도 있는 것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변해버린 나의 감수성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날 것을 선호하는 나의 글이 일처럼 느껴질 이유가 없을 텐데도 근 몇 년간은 글을 쓰는 행위 외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시 쉬었다.

이를테면, 어느 매체에 올리든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카테고리가 주어지고 그 카테고리 내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글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일련의 규칙이 존재하는 듯했다.

나는 그날 생각나는 것들, 느꼈던 내 감정들을 연필로 꾹꾹 눌러 담아 쓰는 것이 글이라 생각하는데 인터넷상에 올리는 글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커다란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주제로만 글을 써야 했다. 연필로 눌러써 남는 연필자국에 무게를 실은 나와 달리,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주제인지 따위가 더 중히 여겨지는 듯했다.

육아를 주제로 쓰는 사람은 육아로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블로그는 설명한다. 리뷰를 위주로 올리는 사람은 어떤 종류 물건의 리뷰인지를 정해야만 하는 듯했다.

이것저것 마구 섞여 중구난방의 글을 올리면 자체 시스템이 혼란스러워해서 방문자 유입이 어려울 수 있다나. 검색에 뜨지 않는다나 뭐라나.


어느 날은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고, 어느 날은 과거의 내 경험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는 편한 공간을 찾는 나에게 웹 상에 글을 남기는 것은 상당히.. 보여주기식의 영업용 페이지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예쁘게 쓸 자신도 없다. 예쁜 사진을 갖다 붙이고, 좋은 폰트를 골라 글을 꾸미고, 글 중간에 선도 넣고, 그림도 넣고.. 그럴 자신이 없다.

내게 있어 글은 그저 글이다. 디자인이 가미되면 예쁜 모습을 한 글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모습을 한 글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겠지 싶어 읽는 이들을 배려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스트레스였다. 난 글을 꾸미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 것도 똑바로 못하는데 예쁘게 꾸며봐야 무슨 소용 있나.


그러다 요 며칠사이 다짐을 한 게 있다.

그냥 쓰자. 어떤 분들께서 읽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면 되고,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그 또한 내 생각의 발걸음이 향한 흔적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가치가 있으니 즐거운 마음을 갖자. 보여주기 위한 글만큼은 쓰지 말자. 나의 마음과 생각을 또박또박 옮겨담으면 그것으로 족하니, 그냥 쓰자.

그래서 이제 그냥 이러니 저러니 한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쓰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을 눈치 보면서 해야 한다니, 차라리 안 하고 말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과 눈치 보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고르자,라고.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이것저것 다 따져가며 살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나. 이것 아니어도 내 삶은 이미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택해야 할 것들과 내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것들로 가득 차있다. 감정도 에너지, 신경도 에너지, 에너지 낭비 하지 말자.


그래서 앞으로는 더 편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나 자신, 기특하다.


작가의 이전글 가득 채워진 컵에 더 부을 물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