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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Sep 07. 2023

형사과장이 출입 기자를 만나지 않는 이유

띵~똥.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강남 라인 출입하게 된 XX일보 XXX 기자입니다. 명함 드리면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지요?"

'아... 또 기자다.'


"네, 반갑습니다. 오늘은 좀 바쁘니 다음에 시간을 좀 봅시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거절을 했다.



2023년 9월 7일 기준 서울강남경찰서 출입기자는 60여 명에 달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식으로 출입기자들이 인사를 하고 싶다며 문자를 보내오거나 전화를 걸어온다.

이는 새로운 출입처에 인사라도 해서 안면을 트고, 추후 취재 시에 원활한 협조를 구하려 하는 기자의 리추얼 같은 연락일 것이다.


미안하게도 요즘 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다음에 보자고 하고는 거절을 한다.

기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거절당했다고 실망할 수도 있다.


형사과장보다는 다소 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수사과장할 때까지만 해도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한 내 성격상 긴급한 현안이 없으면 바로 오라고 하거나, 시간을 정해서 보자고 하기도 했다.

보통 찾아오면 명함을 주고받고, 소개팅(?) 같은 호구조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이 흘러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내가 기자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져 소문 듣고 연락한다며 너스레를 떨던 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2월.

이곳 강남서 형사과장으로 보직을 이동한 이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기자와 면담 중일 때는 적어도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 무전을 듣지 못한다.

시시각각 코드 0, 코드 1 등 긴급 무전이 떨어지는데, 이를 듣고 즉응해야 한다.

즉, 긴급 사건의 경우 강력팀이 현장에 출동하고, 필요시 형사과장인 나도 현장에 임장 해서 수사 지휘를 해야 한다.

이 보안 사안인 무전을 기자가 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가 찾아온다고 하면 무전기 볼륨을 무음으로 하고 맞이한다.


둘째, 전자결재를 하지 못한다.

수사서류를 비롯한 각종 공문은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결재를 한다.

여유를 두고 검토하고 결재할 수 있는 협조 공문, 입건 전 조사종결, 각종 수사보고 같은 서류도 있다.

반면에 통신수사의 기본인 전화번호 명의자를 파악하는 통신자료제공요청 공문이라든지 체포영장 신청서, 구속영장 신청서과 같은 긴급한 결재도 있다.


셋째, 형사들의 대면 보고를 받지 못한다.

내가 항상 우리 형사들에게 회의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제 손님의 90% 이상은 기자입니다. 혹시 노크하고 들어 왔다가 손님이 계시면 보고하지 말고 그냥 나가시고, 긴급한 경우 문자 주십시오."

긴급하게 형사과장과 상의하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범인 검거를 위한 것이든, 행정적 업무처리를 위한 것이든 말이다.


이런 이유로 기자와의 면담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대언론 창구인 내 입장에서 연락을 받으면 인사를 했던 기자라고 해서 더 잘 응대해 주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덜 응대해 주지는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경찰 수사부서장이 그럴 것이다.

그러니 혹시 명함만 드리고 간다는 식의 간단한 인사조차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계속 만나지 않아야 할까?


사실 여기에 취재의 꿀팁이 있다!

내 '수습기자를 위한 경찰 출입 매뉴얼' 강의 주제 중 하나인 "무조건 찾아가자! 기사 거리가 나온다."가 바로 그것이다.


위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더더욱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수사부서 과장실을 찾아갔다가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기사 거리가 떠오를 수도 있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긴급한 무전을 듣고 취재할 수도 있다.

과장에게 주요 사건을 보고하러 온 수사관이나 팀장의 말을 듣고 기사 거리를 얻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내 강의를 들은 수습기자가 서울시내 모 경찰서 교통과장실을 찾아갔다가 단독 기사를 내기도 했다.

교통과장과 면담 중에 특이한 교통사고를 보고하러 온 팀장이 있었다고 한다.

동석한 손님이 기자인 줄 모르고 사고 내용을 상세히 보고했고, 그 정보를 듣고 사고현장추가 취재하여 기사를 냈다고 한다.


이렇듯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오지 말라고 하는 과장실을 굳이 찾아가는 게 하나의 취재 노하우라고 하겠다.


띵~똥~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번에 제가 강남라인으로 배치되어 ..."

또 기자의 문자가 왔다.



@수습기자를 위한 경찰 출입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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