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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ug 29. 2023

해외주재관이 알려주는 외국어 회화 잘하는 비법

나는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하다.

2015년 해외 경찰주재관(경찰영사) 파견을 나갈 때 토익 기본점수를 겨우 넘기기도 했을 정도이다.

다만, 경찰영사는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발생한 재외국민의 사건사고 대응 역량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나의 다양한 강력사건 수사 경험이 선발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듯하다.


암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파견을 나간 주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야간, 휴일 불문하고 쉼 없이 발생하는 재외국민의 변사, 오토바이 날치기,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인터폴 적색수배자 검거 공조 및 강제송환 등으로 한국에서 경찰 할 때 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가끔씩 저녁때 외교부 소속 영사들을 포함한 산업자원부, 관세청, 금융위원회, KOICA 등 타부처에서 파견 나온 영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담소하는 여유가 있어 말 그대로 망중한을 느끼곤 했다.


파견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저녁 회식 날.

영사님 한 분이 다른 업무가 있어 뒤늦게 저녁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30여분이 지났을까... 곧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막내 축에 속하는 내가 종업원을 불러 테이블에 종이를 깔고, 수저를 준비해 달라고 해야 했다.


그때부터 머릿속 언어 중추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파견 나가 이제 갓 베트남어를 배워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했으니 그 어려운 말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저기요~ 한 사람이 곧 옵니다. 그러니까 준비해 주세요, 숟가락과 ...'

(에머이~ 못 응어이... 쌉 덴 더이, 티 쭌비... 무엉 바...)


베트남어는 단어 떠올리기도 어려운데 게다가 6 성조가 있어 발음의 높낮이, 장단까지 맞춰야 해서 더듬더듬 단어와 성조를 조합하다 보니 정신이 팔려 먹던 음식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베트남어를 몇 년간 배워 수준급인 동년배 외교부 소속 S 영사가 종업원을 불렀다.

"Em ơi~!(에머이~! / 저기요~!)"


휴~~ 다행이다.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 말하는지 확실히 배워야지!


내가 생각했던 그 단어를 구사할지, 다른 표현이 있을지 내심 기대를 했다.

여종업이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S 영사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세팅!"


뭔가 대단한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다였다!

여종업원은 군소리 없이 철석같이 알아먹고는 주방에 가서 테이블 종이와 수저를 가지고 와서 '세팅'을 마쳤다.


아~~ 그렇구나!

굳이 어렵게 문법에 맞추고 단어를 조합하고 할 것이 아니라 알아만 먹으면, 즉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거였구나!

그게 바로 외국어 잘하는 뇌구조였던 거다.


뒤늦게 합류한 영사님이 도착하자마자 이 테이블 세팅에 관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졌고, 그날은 "에머이~ 세팅!"으로 외국어 회화 공부 노하우를 교환하는 자리가 되었다.


외국어 회화 잘하는 비법!

겁먹지 말고, 쉽게 쉽게 의사소통만 되게 하자!



필자는 2015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4년간 베트남 주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경찰영사로 파견 근무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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