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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Feb 20. 2024

형사과장이 가끔 작아지는 이유

"야! 무궁화 세 개!! 야, 너 말이야 너!! 무궁화 세 개!! 너 이름 뭐야??"


스윽...

모니터를 은폐물 삼아 몸을 낮춰 감췄다.



경찰서 야간이나 휴일 상황관리관 근무는 주로 경정인 과장급이 한 달에 두 번 꼴로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형사과장과 같이 사복 부서 과장이라고 해도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경찰서장을 대신해 112 종합상황실에 대기하면서 112 신고 등 각종 사건 사고가 접수되면 이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한다.


근무시간 중 지하 주차장, 구내식당, 유치장 등 청사 순찰과 감독도 포함되어 있는데, 유치장은 통상 3시간마다 한 번씩 들어가서 감독을 해야 한다.

즉, 유치인들의 문제는 없는지 유치인 보호관들이 관리는 잘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때는 2021년 어느 여름날.

여느 당직 날과 마찬가지로 청사 순찰 중에 유치장에 들렀다.


입감 된 유치인은 3명.

그중 그 악명 높은 40대 초반의 A 씨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사유로 누구든 닥치는 대로 고소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마치 '고소광'처럼 일반인은 물론 경찰관을 상대로 진정과 투서를 남발하는 그였다.


일렬로 쭈~욱 늘어선 각 감방을 조명할 수 있게 약간 높은 곳에 유치인 보호관 자리가 있는데 그곳에 놓인 근무일지에 감독했다고 기재를 하고, 입출감 유치인이 있었다면 KICS라고 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접속하여 결재를 하고, 유치인과 유치인 보호관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한다.


자리에 앉아 감방들을 살펴보는데, A 씨가 본색을 드러냈다.


"야! 무궁화 세 개!! 야, 너 말이야 너!! 무궁화 세 개!! 너 이름 뭐야??"


어깨에 있는 견장에 경정 계급인 무궁화 세 개를 달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그가 소리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세요?" 하고는 친절하게 감방 앞으로 걸어가 창살을 사이에 두고 혹시나 유치인 보호관이 인권침해를 하지 않았는지 여타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 물어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찰경력 27년의 (스스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름) 민완 형사다.

이미 A 씨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던 상황이라 말을 섞는 순간, 바로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인하고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달아 고소를 하거나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할 것이 뻔히 보였다.

그러면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감찰에 해명을 하거나, 사유서를 써내야 하는 등 괜한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악성민원 방지 필살기!

'작아지기'로 했다.


모니터 너머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가 스~~윽 몸을 낮췄다.

마치 거북이 목 집어넣듯이... 모니터를 은폐물 삼아 몸을 감췄다.

최대한 그에게 내 명찰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조심스레 근무일지에 사인을 하고, 고개를 살짝 돌려 유치인 보호관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A 씨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장님~ 저희가 관리 잘할 테니 얼른 나가 보세요~'


그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네, 유치인 관리 잘해주세요~ 수고하세요~"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가렵지도 않은 얼굴을 머쓱하게 긁으며 유치장을 빠져나왔다.

명찰이 있는 오른 가슴을 A 씨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야! 야! 무궁화 세 개! 너 이름 뭐냐고??" 연신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형사과장은 그렇게 육중한 문을 철컥하고 닫고는 유치장을 나섰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잘했어, 나 자신~'

가슴을 툭툭 두드려주며 자찬을 했다.


오늘도 이렇게 한번의 작아지기(?)로 당직 상황관리관 근무를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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