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껍질
나는 3등분 마스터다. 액체, 고체, 심지어 컴퓨터 사용시간까지 모두가 만족할 공평한 3등분을 할 수 있다.
나는 삼 형제의 첫째로 태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태어나보니 세 살 어린 동생과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생겼다. 내 기억 속 우리 집은 유독 엄했다. 나는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의젓"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의젓한 아이가 되길 바라셨고, 나는 의젓함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겼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막내가 두 살이었으니, 첫째가 의젓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의젓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점잖고 무게 있다.
풀어보면 말과 행동이 신중하고, 듬직하고, 늠름하고, 무게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봐도 초등학교 일 학년에게 의젓하다는 형용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두시 조금 넘어 제 몸 만한 책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일학년들을 본 적이 있는가. 재잘재잘 말하고 뽀르르르 뛰는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공원의 참새 때 같다. 물론 아이를 제 하고 싶은 대로 둘 수만은 없다. 기다릴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능력을 부모가 키워줘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의젓하다"에는 "어른스럽다"는 뜻이 섞여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미성숙함은 결여가 아니다. 그 미성숙함은 곧 성장하는 능력과 과정이고, 아동의 특성이다. 우리가 아동에게 쓰는 "의젓하다"를 "어른스럽다"로 바꾸어 보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문장이 나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글쟁이가 자연스러운 문장에 안타까워하는 일은 흔치 않다.)
어릴 때 집안 어른들에게 질리도록 들은 말이 있다.
"부모님 없으면 네가 엄마, 아빠야."
"네가 동생들의 거울이다."
"네가 잘 되어서 동생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사실 마지막 문장은 2n살인 지금도 명절 때마다 듣는 소리다. 어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동생들을 책임지는 큰형. 바르게 자라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동생들을 도와주는 형.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든든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하지만 나도 어린이였다. 부모님이 없어진다고 어린 내가 부모가 될 수는 없었다. 고아 셋이 생길 뿐이다. 지금껏 들어온 이런 부류의 말들은 진심을 담은 응원과 기대인 동시에 덕담으로 포장된 장자-라이팅(장자+가스라이팅)이었다. 어린 나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다면 너도 어린이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모든 첫째는 태어나보니 첫째였다." 이보다 첫째의 삶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네 살 때 첫 동생이 생겼고, 유치원에 다닐 때 막내가 생겼다. 그냥 살다 보니 동생이 둘 생겼을 뿐이다.
갈등을 싫어하고, 정해진 규칙을 깨기를 어려워하고, 책임감 넘치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고, 범생이스러운 ISFJ 기질은 후천적으로 길러진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나를 불쌍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나는 의젓하길 바라는 기대보다 오천만 배는 큰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참 멋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의젓한 첫째"껍질을 스스로 깨지 못했다. 나의 인생에 "첫째 껍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그것이 나를 가둔 껍질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겪은 작은 사건 하나가 망치처럼 날아와 그 껍질에 균열을 만들었다.
설렘이 가득한 스무 살 새내기 시절이었다. 1학년 과목에는 수업 후기가 좋지 않은 교수의 수업이 있었다. 수업 후기는 5점 만점에 1점이었다. 0점 기능이 없어 1점을 준다는 후기까지 있었다. 문제는 그 교수가 자신의 1학년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은 2학년에 들어야 할 자신의 전공 필수 수업을 듣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평점 1.0짜리 수업이었지만, 무사히 졸업하기 원한다면 1학년 때 꼭 들어야 할 수업이었다. 2학년 선배부터 조교 선생님까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수업이라고 여러 번 설명해 주었다. 모두가 불합리하다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1학년에서 딱 한 명의 누나만 그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 규정상 꼭 들어야 할 수업도 아니고, 이렇게 안 좋은 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모범생처럼 살아오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소신 있게 행동하는 그 누나의 모습이 멋졌다. 그 누나 말고도 내 동기 중에는 개성 있고 진취적으로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공부도 노는 것도 열심히 하는 친구,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런 동기들을 보며 나쁜 짓이 아니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고,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인생을 나답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껍질을 너무 늦게 깬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자유와 권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스무 살에 그 껍질을 깰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몇 달 전 처음으로 고데기를 연습할 때였다. 거실 구석에서 서툰 손으로 고데기를 하고 있을 때 고등학생인 막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형이 많이 뚫어놔야 해. 그래야 내가 스무 살 때 이것저것 다해보지." 동생에게 필요한 형도 바르고 의젓하기만 한 형이 아니라, 나 다운 인생을 멋있게 사는 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