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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21. 2024

아들은 인생 2회차?

파스타 이제 식어서 맛없겠지?



마늘을 듬뿍 넣은 알리오 올리오에 새우를 비롯한 온갖 해물을 푸짐하게 집어넣고 몸에 좋은 올리브유도 팍팍 넣고 남편은 이보다 더한 정성이 없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평소에는 기다랗고 무난하게 생겨 국수를 닮은 스파게티(Spaghetti) 면으로 파스타를 곧잘 해 먹었는데 유튜브에서 보았는지 막둥이가 "특이하게 생긴 면으로도 한 번 먹어보면 어때?" 하고 제안했다. 아이들 말이라면 껌뻑 죽는 아이 아빠는 나비넥타이 같기도 하고 리본 같기도 한 파르팔레(Farfalle)와 숏파스타 중 끝모양이 뾰족하고 줄무늬가 있는 펜네(Penne)와 샐러드에서 흔히 보아 왔던 마카로니(Macaroni)를 사다 놓았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주방에 서서 요리를 시작한 지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먹자~" 하고 외치는 남편의 목소리.

우린 한국사람답게 포크 대신 젓가락을 챙기고 혹시 느끼할까 생오이에 초장까지 꺼내 놓고 둘러앉아 한 입 맛을 보았는데 여태껏 먹어 본 파스타 중에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연신 음~ 음~ 음미하는 소리를 곁들여가며 맛나게 흡입했는데 막둥이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뜨거워 후후 불며 식히느라 입에 댈 엄두를 못 냈다. 명절에 지글지글 전을 부칠 때면 기름 한 방울만 튀어도 뜨거워 어쩔 줄 모르는 우리를 밀어내고 우리네 어머니들은 뒤집개도 필요 없다시며 맨 손으로 홀라당 전을 뒤집는 것처럼, 나는 잠시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막둥이 하는 짓이 여간 탐탁지 않았다. 고작 그게 뭐 그리 뜨겁다고 계속 식히는 중인지. 이리 휘적, 저리 휘적거리며 한 김 빼느라 스스로 노력하는 모양새가 낼모레면 될 초등학교 최고 형님은커녕 이제 겨우 유치원 해님반이 된 아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예전엔 다 차려놓은 요리에 차가운 물을 찔끔 부어 주어 막둥이가 딱 먹기 좋게끔 온도를 맞춰주기도 했는데 이젠 제법 컸다고 물을 넣으면 참맛이 안 느껴진다나 뭐라나 절대로 넣지 못하게 한다. 아유, 까탈스럽긴.



이렇게 식히고 또 저렇게 식히는 사이, 씹기는 씹는 걸까 싶게 후루룩 음식을 마시다시피 한 남편은 벌써 뒤로 나와 앉았고, 내 접시도 이제 바닥이 조금씩 보이는 중이다. 해산물을 유독 좋아하는 딸내미는 면보다는 해물 위주로 쏙쏙 골라 진작에 다 먹고는 제 방에서 친구들과 톡으로 수다삼매경이다. 하나둘씩 상에서 떨어져 나와 배를 쓰다듬고 있는데 이제야 제대로 먹기 시작한 막둥이는 천천히 야금야금 한 그릇을 다 비워내고는 더 먹고 싶었는지 팬에 남아 있는 파스타를 힐끗 보곤 나지막이 말했다.



"파스타 이제 식어서 맛없겠지?"


그러자 아이 아빠는


"식은 것도 괜찮던데? 한 번 먹어 봐."


"음. 먹어 봤는데 별로 맛이 없어."


"그래? 맛없으면 먹지 마~"


그러자 대답이 없는 아들.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자니 대화가 뭔가 석연치 않다.

혹시 더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하고 나는 넌지시 물었다.


"지후야~ 파스타 식었으면 따뜻하게 데워 줄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네에-!!"


하고 개운하고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으이그, 식었으니 따뜻하게 데워 달란 말을 못 하고 눈치를 살살 보는 아들이라니. 아니지, 눈치를 본다기보다 아빠, 엄마 둘 다 저녁을 푸지게 먹고 포만감에 배를 쓰다듬으며 쉬고 있는 걸 보고는 저 때문에 다시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게 괜히 미안해졌나 보다. 게임을 즐겨하는 아빠와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은 서로 게임 이야기를 할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조잘조잘 대화만 잘도 하더구먼 그리 많은 대화를 하면서도 정작 아들의 마음은 교집합이 별로 없는 엄마인 내가 헤아려냈다는 것이 "괜히 내가 엄마 자리에 있는 게 아니군." 할 만큼 뿌듯했다.  



근데 초등 5학년은 남의 편안함보다 자신의 입이 우선하는 때가 아니었나? 이제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자기로 인해 상대가 귀찮아질까 봐 말 꺼내기를 주저하는 게 맞는 건가? 나도 어릴 적 초등학생이던 때 그 정도로 상대를 생각했었던가?



그러고 보니 어머님이 손수 만들어 가져다 주신 옥수수식빵을 며칠 전 막둥이에게 주었다가 들은 말도 생각난다. 받은 빵이 너무 많아 냉동보관해 두고 몇 개 꺼내 토스트기에 구워 주었는데 "엄마, 토스트기가 고장 났나?" 하고 대뜸 물었던 것이다. 제대로 구워지지 않아 단단하고 식감이 나쁘면 대부분의 사람은 "빵이 아직 차가워." 하며 애써 구워 준 사람이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데 살갑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 모든 잘못을 토스트기에 돌리는 아들의 그 말은 내겐 너무 스위트하게 들렸다.



무언가를 부탁할 때 콕 집어 "이거 이거 해 줘." 명령하지 않고,

거절할 일이 있을 때도 둘러 둘러 상대 기분이 나쁘지 않게 애쓰는 막둥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같은 상황에 나는 어땠었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내 뱃속으로 낳아 아들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파스타를 먹고 있는 저 아이는 혹여 인생 2회 차가 아닐까 자꾸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런 눈은 아니었지만 왠지 재미있어서 이 사진을 가져와봤어요.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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