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키워 온 야채들을 이제 맛있게 먹을 차례니 열심히 수확하시고 본연의 맛과 향기를 살려 반찬까지 만들어주시는 어머님. 며느리가 돼서 가만히 앉아 받아먹는 게 고맙고 황송하고 죄송하기만 하다. 그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하고 말만 할 뿐.
남편이 어머님댁에 들러 반찬을 받아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릴 때 반찬에 대한 어머님의 보충설명이 곁들여진다.
비지찌개가 좀 싱거울 거야. 콩이 많아서 팍팍 많이 먹으라고 싱겁게 했다.
그리고 깻잎지는 애들 잘 먹으라고 단 거를 너무 많이 넣었나 싶다? 조청에 매실청에 마지막에 레몬청을 안 넣어야 되는데 레몬청까지 넣었지 뭐니. 너무 단가 한 번 먹고 알려 줘라.
네~~
말씀은 저리 하셔도 인공조미료 하나 없이 음식을 만드시는 어머님의 반찬은 얼마나 깊은 맛이 나고 맛있는지 그간 빅데이터가 쌓여 있기에 나는 음식 맛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
집에 가지고 온 생 야채들, 반찬들을 이리 담고 저리 옮기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김에 꺼내서 처리할 건 처리하고 하느라 시간이 좀 흘렀더니 어머님께 톡이 와있다.
깻잎이 너무 달아?
아무래도 단 걸 너무 넣었지?
음식이든 뭐가 됐든 내가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일에 대한 결과는 늘 궁금하기 마련이다. 내가 봤을 땐 이만하면 되었다 싶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어찌 보이는지 그것이 그리도 궁금해지는 건 사람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긴 나도 생애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고는 내가 핸들을 잡은 이 차가 남의 눈에 너무 초보로 보일는지 그 정도면 잘하네 하고 볼는지 너무 궁금하던 차에 코너링하며 반사경에 비친 내 차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본 적도 있으니 그 마음 너무 잘 알지.
그제야 아까 궁금해하신 질문에 답을 안 드렸구나 싶어 깻잎통을 꺼내 얼른 맛을 보았다. 말씀대로 단내가 혀를 감싼다. 그래도 전혀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달큼하니 오히려 식욕을 돋우는 맛이다. 역시 어머님 손맛이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지!
카톡을 잘 주고받는 어머님과 나이기에 톡을 얼른 드렸다.
깻잎 별로 안 달고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카톡으로 답이 올 줄 알았는데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는
안 달아?
더럽게 달게 먹네.
네?????
잠시 멍......
조금 달게는 먹어도 더럽게 먹지는 않는데요...라고 그저 마음의 소리만 할 뿐...
멍한 상태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정신 차리라는 듯 어머님이 한 말씀하셨다.
비지는 평이 없네? 많이 싱겁나 보네?
아, 별로 안 싱겁고 맛있어요.
그래? 안 싱거워?
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사실 나는 장금이다.
한 번 맛을 보면 음식을 촤라락 만들어내는 실력자는 못 되지만 음식에 혀를 딱 갖다 대면 이건 홍시맛이 나는구나, 이건 맛이 있구나, 이건 맛이 없구나를 너무 잘 구분한다.
그런데 "더럽게 달게 먹네.", "그게 안 싱겁다고?"라고 폭격을 당한 것이다.
내 입맛이 평가절하되어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그 많은 재료를 수확해서 다듬고 씻고, 양념장 만들어 켜켜이 바르고 공들여가며 만드신 어머님의 정성에 비할쏘냐.
너무 달면 달달한 깻잎지 한 장 위로 심심한 반찬 하나 더 올려 함께 먹으면 될 일이고,
너무 싱거우면 한 술 가득 팍팍 떠먹으며 먹은 총량 대비 모아진 소금 총량의 향을 음미하면 될 일이다.
내가 흑백요리사 안성재 심사위원처럼 "이 야채의 익힘 정도는 이븐하게(골고루) 익지 않았어요."라는 식으로 어머님의 음식 맛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