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포착한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들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3박4일간 혼자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후기.. 라는 걸 써보려 하는데,
오사카에 대한 소개나 맛집 추천등은 워낙 잘해놓은 블로그가 많다보니
나는 오늘 좀 색다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오사카에서 4일동안 포착한 흥미로운 관점들에 대한 이야기"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도톤보리의 글리코상 일 것이다.
글리코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다리 위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든다.
(글리코는 Pocky를 만든 회사다)
그런데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글리코상이 아니었다.
글리코상 네온사인이 도톤보리의 터줏대감이라는 점을 활용한 한 옥외광고가 있었다.
Asue는 Apple 비즈니스를 주로 하고 있는 글로벌 무역업체로 사람과 물건, 일본과 세계를 연결한다는 비전을 가진 무역회사다. 이 회사에 대해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 회사가 글리코상 옆에 QR코드를 포함한 옥외광고를 설치한 결과 의외의(?)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글리코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있다. 글리코상 포토스팟의 구조상 대체로 우측에 저 QR코드가 보이게 된다. 포토스팟 뿐만 아니라 글리코상을 정면에서 촬영할 경우에도 QR코드가 카메라에 걸릴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도톤보리 크루즈를 타고 가다가 글리코상을 찍으려던 찰나에 휴대폰에 QR코드가 걸리게 되었다.
아, QR코드에 접속하면 무슨 혜택이 있냐고? 아무 혜택도 없다. 호기심에 접속해봤는데 그냥 Asue 그룹 소개 페이지로 랜딩된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가 의미부여를 한건지, 진짜 의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글리코상을 찍으려던 관광객들에게 최소 한 번씩은 QR코드가 인식되었을 테니..
글리코상의 인기를 잘 하이재킹한 꽤나 재미있는 아이디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리코상 바로 옆에다가 더 크게 붙여놨으면 어땠을까?)
나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번역기를 써서 말을 전해도 돌아오는 대답을 알아듣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본말은 나마비루(생맥주)... (아 물론 간단한 주문과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다!)
번역기를 쓰면서 대화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대화가 단절되는 기분이라 늘 답답했다.
그런데 귀국 전 마지막 식사를 했던 가게에서 번역기를 쓰고도 감정이 오고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다 먹고 일어나려는데 뭔가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아주 나지막이 속삭였겠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여기서 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고 직원분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고 보여드렸다. 그가 웃었다.
정말 환하게 웃었다. 다른 손님이 나갈 때 보다 더 힘찬 목소리로 인사해주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번역기를 써서 전하는 말에 진심이 담길 수 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말이 안통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수단이 아니라 오고가는 마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그냥 계산만 하고 나갔다면 이 곳은 나에게만 '맛있었던' 마지막 식사 장소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작은 용기로
우리는 모두, 한 여행객이 '여행의 끝자락에 찾아와 번역기를 써서 감사인사를 전했던' 즐거운 추억과 이야기를 얻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는데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무언가를 해낸 사람처럼.
(이거 '번역기' 관련 광고 소재로 어떤가요? 활용할 계획이 있는 에이전시께서는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ㅎㅎ)
'세토우치 레몬 케이크 프라푸치노'는 세토우치에서 나오는 레몬(특산물)으로 만든 케이크 프라푸치노다.
스타벅스 일본 지점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기간한정 메뉴)
오직 일본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우리나라에 없는 건 꼭 먹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를 제외하고는 스타벅스에서 음료명에 지역이름이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있었을지도..) 로컬 특산품을 활용한 음료개발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우리가 모르는 지역별 특산물들이 많을텐데 이를 잘 활용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세토우치라는 지역을 몰랐었지만 이번 기회에 음료를 마시면서 알게되었다. 스타벅스와 같은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카페 브랜드에서 다양한 국내 지역의 특산물을 다룬다면 외국 관광객들에게 서울과 부산 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들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고.
남들은 가지지 않은, 우리가 기존에 가진 매력을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하면 연상되는 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짱구, 토토로 등 애니메이션이 먼저 떠오른다.
(짱구를 좋아해서) 도톤보리 파르코 백화점에 짱구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달려갔다.
좀 놀랬다. 백화점 한 층이 전부 애니메이션 천국이라니!
우리나라도 둘리나 뽀로로 같은 대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있지만 이를 스토어 형태로 백화점에 입점시키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뽀로로 루피에서 파생된 잔망루피나 카카오 이모티콘 계열의 캐릭터 관련 상품들이 주로 스트릿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모티콘 계열 캐릭터는 뭐랄까 종류는 많은데 스토리가 약한 느낌이랄까. 단편적이다. 이모티콘들.. 유행탄다. 귀엽고 예쁘지만 많이들 생겨났다가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깊고 스토리가 탄탄한 편이다. 장수 애니메이션들이 많고 시즌제와 극장판 투트랙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다수다. 짱구만 해도 서사와 세계관이 탄탄하다. 어린아이의 시선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서사가 있다. 한국은? 한국도 좋은 애니메이션이 많다. 둘리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사가 있고 세계관이 탄탄한데 그 IP가 잘 활용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스토리를 잘 활용하여 사람들과 관계맺는 접점들이 더 많아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둘리를 모르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왜 애니메이션을 과거의 전유물로만 추억하는가? 애니메이션의 현재와 미래는 어디에? 백화점 입점, 팝업스토어 이런 것들은 수 만가지 고객 접점 중 하나일 뿐이다. 애니메이션 IP를 잘 구축했다면 이제는 이를 어떻게 확장시키고 소비자의 세계와 연결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본은 서사가 잘 구축된 IP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짱구의 양치컵, 이불, 짱구네 집 가훈까지도 팔리는 상품이 되는 이유.. 상품 하나하나에 다 스토리가 있다. 사는 이유가 '귀여워서' 뿐일까?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의 서사를 산다.
최근 고길동의 편지 등을 비롯하여 둘리와 관련된 소식들이 다시 수면위로 등장하고 있다. 나는 지금이 둘리에게도 한국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백화점 한층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우지 않아도 좋으니 릴스, 숏츠 등 숏폼으로, 또는 굿즈로, 입소문으로 둘리의 이야기가 더 많이 돌고 그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으면 좋겠다.
애니메이션은, 만화는 어린시절 아이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컸을 때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새롭게 애니메이션을 해석하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
아쉽지만, 나에게는 짱구가 그 역할을 했다.
한국에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우리의 기억을 끌어주는가?
나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는 가능했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이건 비단 둘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오사카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몇 가지 새로운 포인트들에 대해 적어보았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다음엔 또 어디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