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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ug 18. 2022

아픈 말을 해야 할 때

송곳 같은 아픈 말보다......

 얼마 전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재훈 셰프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내와 이재훈 셰프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연이 있었고, 마침 제주로 가족여행을 왔다는 소식에 같이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식사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재훈 셰프가 영국 여행에서 경험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침 말에 대한 내용이어서 본인의 허락을 받고 이렇게 글로 옮겨본다. 영국은 우리와 교통체계가 다소 다르다. 운전석도 반대 방향에 있고 차량 진행 방향도 다르다. 가령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량이 오는 왼쪽 방향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피게 된다. 반대로 영국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오른쪽에서 차가 오기 때문에 오른쪽 방향을 더 주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재훈 셰프가 영국 여행 중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습관적으로 왼쪽을 주시하다가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한다. 그때 옆에 있던 한 노인이 그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이봐 젊은이! 자네 죽기에는 아직 젊다고!'

 낯선 나라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날 뻔 한 상황이라면 민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혹은 실수로 인해 난감해할 때 아픈 말로 상대를 찌르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럴 때는 송곳 같은 말보다 솜사탕 같은 위트 있는 말이 상대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횡단보도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차가 오는 방향을 보지 않고 길을 건너는 행인을 붙잡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말할까? 아마도 '이봐!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고 하지는 않았을는지...... 여러분은 엉뚱한 방향을 보며 걷는 사람을 도와준 후에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역정을 내는 듯한 송곳 같은 말인가. 아니면 부드러운 배려의 말인가. 말은 상대의 감정을 보살피는 노력이 더해질 때 말하는 사람을 빛나게 한다. 서로 웃으면서 안도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위험에 처한 상대를 도와주고도 날카로운 말을 뱉어내 뒤끝이 찜찜해지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충청도 사투리는 상대를 지적할 때 위트와 해학이 있는 듯하다. 상대를 공격하더라도 돌려서 말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에피소드들도 넘쳐난다. 어떤 학생이 축구를 하다가 정강이 뼈에 금이 갔는데 저녁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말어. 머리뼈에 금가면 어쩌?"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화투를 치시는데 할아버지께서 뭘 낼지 고민을 오래 하시니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뭐여? 드디어 뒤진겨?"


 아픈 말을 굳이 아프게 하진 말자. 대신 사랑한다는 말은 돌리지 말고 하자. 송곳 같은 말 대신 솜사탕 같은 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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