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말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생들은 아마 조별과제를 할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조장하실 분?' 아니면 '발표하실 분?' 일지도 모르겠다. 발표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어려운 걸 맡았으니 짐을 덜어주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만큼 거의 모두가 꺼리는 발표. 그렇다면 발표는 나만 힘든 것인가?
희망적인 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고 거의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열의 아홉 이상은 발표를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성격, 성별, 나이와 상관없다. 증상도 제각각이다.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 숨이 차오르는 사람,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시선처리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쯤 되면 불안을 넘어 공포라고 해야겠다. 왜 우리는 발표를 할 때 불안감을 느끼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우선 교육 현장에서의 잘못된 경험을 원인으로 꼽는다. 아이들이 처음 발표를 경험하는 곳은 기관이나 학교이다. 이곳에서의 발표 경험이 어땠는지에 따라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지옥처럼 느끼기도 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아이들은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성숙한 인격체가 아닐뿐더러 상상력은 폭발하며, 창의력은 하늘을 찌르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엄격한 어른의 기준을 들이대며 말하기 능력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규칙이 적용되는 운동장과 같다. 아이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칭찬해줘야 한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처럼 잘못된 말이 또 있을까?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아이들은 학습하게 된다. 아이들의 의견 개진을 격려하는 건 집에서도 똑같이 이뤄져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발표에 대한 칭찬 경험이 발표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준다.
한편 발표 시 불안감을 느끼는 그 기저에는 말하기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인지적 능력이라는 인식이 우리 의식 속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즉 말을 잘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 말을 못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우리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정말 똑똑한가? 맞는 말처럼 느껴지겠지만 일반화할 수 없다. 대학 다닐 때 정말 뛰어난 교수님이 있었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셨고, 훌륭한 연구업적을 달성하신 분이다. 학계의 평판도 훌륭한 분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강의를 정말 못하셨다. 말재주가 없으신 분이었다.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하품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이 교수님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분이란 말인가? 엄밀히 말하면 말하기 능력과 지적 능력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인과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발표를 잘 못하거나 말을 못 하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발표불안의 촉매로 작용한다.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성적인 말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사람들도 많다. 결국 말하기 능력의 평가는 이 모든 것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하기 능력이 지적 능력과 등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공포의 근원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할 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자. 발표를 시작하기 직전, 그리고 시작한 직후가 가장 떨리는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발표로 인한 울렁증 증상은 3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즉 그러한 불안감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포 앞에서 우리는 불안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고 모든 것이 아이의 요구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시간이 며칠 혹은 몇 달 지속되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 우울감의 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육아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발표로 인한 불안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바로 이점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약 3분 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안감이 사라질 거란 사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감에 다시 초점을 맞추는 순간 불안감은 다시금 증폭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브레이크다. 부정적인 측면의 느낌이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심호흡도 좋고, 맘속으로 '이 순간은 금세 지나간다.'라고 되뇌는 것도 좋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말실수로 당황하고 얼굴 빨개지는 모습에 의외로 관대하다. 심지어 별생각 없이 자신의 발표 내용을 머릿속으로 짚어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멋들어지게 말 잘하는 사람만 좋아한다면 유재석 씨 옆의 조세호 씨 역할은 필요치 않다.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고 다소 매끄럽지 못하지만 친근감 넘치는 조세호 씨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고 즐거워한다. 말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보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걸 나 자신도 얼마 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스피치 전문가들이 발성을 어떻게 하고,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며, 시선처리는 이렇게 손동작은 저렇게 하라며 저마다의 노하우를 쏟아낸다. 나 자신도 그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아왔다. 글을 쓰면서도 사실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어떻게 말할지에 집중하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네가 말한 것들을 어느 누가 기억이나 하는가?'
그렇다. 결국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말하기의 수단에 대한 것일 뿐 결국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멋들어지게 말할 생각은 잠시 멈추자. 그리고 무엇을 말할지에 대해 집중해보자. 여러분의 말하기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