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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10. 2022

무례한 사람을 제압하는 말

대화의 품격을 높이는 비결

 1984년 재선에 나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시 나이는 73살이었다. 지금이야 73살이면 한창이란 이야기를 듣는 나이지만 당시에는 재임하기에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냐는 공격이 많았다. 심지어 상대 후보인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보다 18살이나 많았기에 어쩌면 그런 공격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나이가 79살(2022년 기준)인 걸 생각하면 정말 한창인데도 말이다. TV토론에서 고령의 나이에 대해 공격받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상대 후보의 젊음과 부족한 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로 레이건은 집요한 나이 공격을 물리치고 대선에서 압도적인 대승을 거뒀다.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될 수도 있겠지만 할 말은 다 한 자기 방어였다. 상대의 공격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것보다는 자신의 경륜과 능력이 우월하다는 것을 유권자에게 호소한 셈이다. 마치 창으로 만들어진 방패 같은 말이었다.

 우리 정치에서도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정치인이 있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 이력 때문에 색깔론 공세에 시달렸다. 상대당의 후보와 언론뿐만 아니라 자당의 후보로부터도 공격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해방되던 해에 실명을 해서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면돌파의 정석을 보여준 연설이다. 대한민국 법은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장인의 잘못은 딸과 사위와는 무관하다. 심지어 고인은 딸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노무현 후보가 설사 이를 알고 결혼했다 하더라도 법적, 도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사안임을 강조했다. 상대의 공격이 색깔론이며, 구시대적인 공세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논리적인 방어 외에도 감성적인 호소도 더해졌다. 바로 사랑에 대한 부분이다. 이 연설에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려야 하냐는 호소는 이 사안에서 다룰 수 있는 가장 핵심이 되는 감성적 호소의 포인트였다. 또한 노무현  후보는 모든 판단을 당원들에게 맡겼다. 사퇴를 각오한 그의 발언은 대선에 임하는 그의 순수성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마지막으로 아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변함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각 사람의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그는 우리에게 무례한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무례한 공격을 받을 때에는 그것이 무례한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왜 무례한 것인지에 대해 반박 불가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 설명은 상대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촘촘한 그물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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