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눈 뜬 시각장애인 20210325
‘없다 없어.’
한숨을 쉽니다. 며칠을 찾았습니다.
“고양이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드디어 입 밖으로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있을 만한 곳을 더듬어 샅샅이 뒤졌습니다. 벌써 세 차례나 같은 곳을 살폈고 또다시 되풀이합니다.
이 방이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이 잡듯이 뒤져야겠습니다. 장식장 문을 열었습니다. 먼저 서랍을 살핍니다. 잡다한 사무용 물건들을 이리저리 들추는 순간 사이사이 눈이 갑니다. 만지다 보니 물건들이 흩어졌습니다.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없어진 것을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책꽂이로 손이 갑니다. 이번에는 책들을 하나씩 꺼내며 빈 곳을 살핍니다. 찾는 것이 혹시나 책의 뒤편에 잠자고 있을지 모릅니다. 큰 책장을 둘이나 살폈습니다. 책을 꺼냈다 다시 제자리에 꽂습니다. 다음 붙박이장으로 손이 옮겨갑니다. 우선 가방들을 꺼낸 자리를 확인합니다. 가방 속으로 눈과 손이 들어갑니다. 아래 칸을 향해 허리를 숙입니다. 여행용 가방을 들어냅니다. 지퍼를 열고 안을 들여다봅니다. 텅 비었습니다. 지퍼라도 열려있었다면 고양이나 작은 강아지 한 마리는 충분히 들어갈 공간입니다. 내가 찾고 있는 작은 것이 이 속에 들어있다면 좋겠습니다. 답답한 마음 위로 불쑥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시작된 내 눈과 손은 방 하나를 완전히 섭렵했습니다. 옆방으로 옮겨갔습니다. 지금 아내는 집에 없습니다. 오늘 친구들과의 예정된 만남 때문에 외출 중입니다.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별로 말이 없는 아내이지만 허둥대는 나를 보고 분명히 한 소리 했을 게 분명합니다. 간단명료한 말입니다.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요. 제자리를 지키게 놔두지.’
거실과 안방 베란다로 장소를 옮깁니다. 나오라는 것은 나오지 않고 웬 종이 물건만 나오는지, 아직도 큰 상자로 두 개나 됩니다. 종이접기에 심취해서 날 가는 줄도 모르고 몇 년 동안 접었습니다. 아내의 성화에 지고 말았습니다. 서재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상자가 거슬렸나 봅니다. 몇 차례의 비좁다는 말에 곱게 접은 물건들을 처분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배낭에 가득 담아 만나는 아이마다 몇 개씩 나눠주고 유치원에도 보냈습니다. 이 년 동안 틈틈이 나눠줬는데도 아직도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찾고자 하는 것이 종이접기 물건처럼 눈에 잘 띄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현관에 발이 닿았습니다. 분명 이곳에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갔습니다. 신발장을 뒤집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신발장은 온갖 물건들의 집합소입니다. 신발을 비롯한 우산, 줄넘기 줄, 탁구라켓, 배드민턴 채, 악보 대, 자전거 헬멧……. 맥이 빠집니다. 네 번째 수색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보, 아래층 아는 집에 가서 창고 열쇠 빌려와요.”
“집이 다른데 맞겠어요?”
“창고 열쇠니 맞을 것 같은데,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현관 열쇠가 아니니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아내는 대답이 없습니다. 신경을 썼더니 피곤한 생각이 듭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한 번 더 부탁했습니다. 내일 가보겠다고 합니다.
아들이 늦게 퇴근해서 돌아왔습니다. 간식을 차려주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고 열쇠 이야기입니다. 청소기를 써야 하는데 벌써 며칠째 문을 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누워있는 사이 두 사람의 본격적인 보물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끔 물건을 꺼내고 넣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입니다. 찾기는 찾았는데 하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들이 말합니다.
“우리 집 열쇠 꾸러미가 아닌가 봐요.”
“우리 집 열쇠 맞아.”
“분명 열쇠 꾸러미가 컸는데요.”
“그 건 먼저 집에 살 때고.”
창고 문에는 열쇠 꾸러미가 어느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이 열리고 닫히니 틀림없이 우리 것이 맞습니다. 눈에도 익습니다. 늘 나와 눈을 마주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 도배했습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침실입니다. 업체 사람들이 와서 살림살이를 다른 방으로 옮겼습니다. 나는 창고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이 마음에 걸려 문을 잠갔습니다. 혹시라도 들여다보면 창피한 마음이 들 것 같았습니다.
열쇠는 내가 짐작했던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네 번이나 찾을 때마다 제일 먼저 마음이 갔던 장식장입니다. 나와 아내가 찾지 못하는 것을 아들은 미리 알고 있다는 듯 금방 찾아냈습니다. 서랍의 가장자리 안쪽 벽에 꼭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찬찬하지 못했던 때문일까요. 네 번이나 같은 자리를 훑고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열쇠를 빌려오라고 한 집은 아래 아래층입니다. 시각 장애인입니다. 우리와는 가까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교우입니다. 아내가 종종 도움을 줍니다. 은행 일이나 공적 모임에 갈 때 동행을 해줍니다. 나는 열쇠를 찾으면서 갑자기 이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눈을 뜨고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앞을 못 보니 답답한 마음이야! 오죽할까.
시각장애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주거지의 이동이랍니다. 집을 비롯한 그 속에 자리하는 모든 것들이 생소하고 물건들의 위치도 바뀌게 되니 한동안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내 집이라도 한동안 내 집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요 근래 점차 기억력이 감퇴하는 느낌이 듭니다. 메모는 제 이의 기억이라고 하지요. 물건을 옮길 때는 수첩에 위치라도 기록해 두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