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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8. 2024

2021 그날

26. 쉿, 비밀이래요. 20210405

‘비밀, 그 누구에게나 있는 거다.’


누가 그랬다.


‘비밀은 추한 것이라고, 비밀은 망가진 것뿐이라고.’


‘미안해.’


아프게 했잖아, 조금만 아프고 낫기를…….


그 흔히 말하는 개인 정보 보호를 몰랐던 거야.


‘궁금했어.’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했겠지.’


‘나 사이코패스도 범죄자도 아니야.’



나는 비밀이 참 많습니다. 이루 손가락으로 꼽을 수가 없습니다. 나이를 거꾸로 세면서 아이로 돌아갑니다. 어릴 적, 친구나 동생과 손가락을 걸고 엄지의 지문이 눌리도록 힘을 주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토록 중요했던 비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입가에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눈이 녹는 따스한 날 우리는 산기슭에서 다람쥐 굴을 발견했습니다. 낙엽으로 보이지 않게 덮었습니다. 새끼들을 잡을 때까지 숨기기로 했지만, 며칠 지나자, 동네 친구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네가 말했지!’


‘형이 알려주었지?’


너도나도 말한 일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입니다. 친구와 학교에서 집으로 오던 길에서 우연히 지폐를 주웠습니다.


“파출소에 신고해야지.”


뜻이 맞아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멈추었습니다. 친구의 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순사’라는 말이 갑자기 머리를 때렸습니다. 어쩌다 울기라도 하면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순사가 잡아가는 거야.”


순사가 뭔지도 모르면서 호랑이나 늑대, 눈에 불을 켜고 흰 이빨을 사정없이 드러내는 복순이네 개만큼이나 무서운 줄 알고 울음을 그쳐야만 했습니다.


“왜, 겁나니?”


“이놈들, 어디서 훔친 거지?”


하고 뜬금없이 다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졸이게 했습니다. 친구의 귀를 잡고 입을 가까이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도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무단 점유 이탈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죄가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는데 이미 시효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어서 가서 머리나 빡빡 깎아.”


정말로 상고머리가 스님의 두상으로 변했습니다. 개울에 엎드려 머리에 낀 쇠똥 때를 벗겨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비밀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는 잊어버린 비밀도 있고 말 못 할 것들도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도 있고, 어느 비밀은 고의든 아니었든 웃어넘길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속담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 거야.’


신라 경순왕의 설화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부모님에게도 형제에게도, 아내에게도 하지 못할 말이 있는 거야. 자연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적어도 한두 가지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 생각입니다. 그 크기가 크고 작고, 중대하고 덜 중대하고의 차이일 뿐입니다.


통신의 발달은 사람들 사이의 공간과 시간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편리한 세상임은 틀림없습니다. 실시간 교류가 좋기는 한데 편지글이라는 장르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손 편지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서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점입니다. 대신 남을 자극하는 말이나 비방하는 말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갑자기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오르내립니다. 어떻게 꼭꼭 숨겨놓은 금고를 잘도 열고 들여다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만능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정직을 가장했던 사람이 어느 날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들의 심리란 내 안의 치부는 감추고 다른 사람들의 것은 들추어 보고 싶은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랐던 거야?’


가장 정직해야 할 정치인들입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정치인 뿐이겠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인격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보다 못한 속성이 내 마음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월의 벚꽃을 보면서 생각지도 않은 ‘정언명령’이란 어휘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때로는 감춤의 미학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창밖에는 어느새 저녁노을이 하늘과 산을 물들입니다. 나는 지금 어둠에 묻힐 창문 고리를 잡고 있습니다. 나는 산책자도 되고 철학자의 꿈도 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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