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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10시간전

2021 그날

27. 여행의 의미 20210406

여행의 즐거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어려서부터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달라도 뭐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마음입니다.

‘여행, 원족, 소풍, 나들이, 마실…….’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 자체에 있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기대의 설렘입니다. 계획을 하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상상입니다. 현실보다 더 큰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여행이라면 으레 생각하는 먼 곳의 낯섦을 떠올립니다. 아직 떠나지는 않았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마냥 구름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의 첫 소풍을 떠올립니다. 며칠 전부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달력의 날짜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달력이고 보니 낙서를 할 수 없습니다. 하루씩 빗금을 치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꼽아봅니다. 손가락의 숫자가 빨리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아침에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은 소풍을 가는 날이니 책보자기 가져오지 않아도 돼.”


집으로 돌아올 무렵부터 그 맑던 하늘에 구름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요만한 구름이 이불만큼 커졌습니다. 학교 운동장만 한 구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동네만 한 구름이 또 몰려왔습니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집에서도 마음은 온통 하늘에 가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몇 번이나 방문을 열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꿈을 꿉니다. 삶은 달걀 한 개, 김밥, 보물찾기…….


성인이 되어서도 여행의 설렘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횟수가 늘어나니 들뜬 분위기가 좀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그만큼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은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는 덜한 때도 있습니다. 기대치보단 낮거나 가끔 피곤하거나 불편함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 보태어집니다. 되돌아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기억입니다. 홀로 방 안에 있다가도 ‘푹’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여행지에서 친구가 땅콩을 하늘에 던지고 입으로 받아먹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름대로 묘기를 부리고 싶었나 봅니다. 이때입니다. 낯 모를 외국 아가씨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와 하늘에 날린 땅콩을 낚아챘습니다. 땅콩을 손에 쥔 아가씨 밝은 표정과 친구의 어리둥절한 모습이 대비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여행한 곳입니다. 곧바로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또다시 그곳을 걸으며 둘러봅니다. 내가 들렸던 식당에 들어가 그 의자에 앉습니다. 열차나 버스를 타기 위해 티켓을 손에 들었습니다.

한참 여행의 회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우리 고장의 풍경이 들어옵니다.


‘오, 광고 시간입니다.’


오라! 이런 모습이었어. 익숙한 곳임에도 사진 속의 풍경은 화장을 한 곱게 차려입은 신랑·신부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며칠 전 아내의 말이 떠오릅니다.


“여의도의 벚꽃이 만발했대요. 함께 갔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옛 정취를 회상하는 것 같습니다. 두서너 번 갔던 길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의 물결에 어울려 밤의 축제 속에 빠졌습니다.


“안 돼요. 코로나로 벚꽃 축제가 모두 취소되고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요. 월미산, 인천대공원도 마찬가지라는군.”


나는 지금 아내와 흐드러지게 핀 벚꽃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막 점심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광고 속의 길을 산책하는 중입니다. 좀 전에 보았던 화면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공원을 지나 호숫가를 거닐고 갈매기의 날갯짓과 함께 끼룩끼룩 먹을 것을 보채는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한 가족이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들을 불러 모읍니다. 바깥출입을 잘하지 않는 아내의 눈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내 안경에 비해 뚜렷한 변화의 모습을 인식합니다.


“이런데도 있었네.”


아내와 함께하다 보면 종종 생뚱맞은 말을 듣곤 합니다. 오늘은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같이 거닐며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아내와의 산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동선을 조금만 바꾸어도 또 다른 감정이 다가옵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꼭 먼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도 느낌은 다릅니다. 가족, 친구들, 때로는 낯 모를 사람들과 함께하며 부딪치는 교감들이 색다름을 선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동은 여행이 되나 봅니다. 머무름은 어떻습니까. 나는 여행을 종합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속에 주인공은 나이며 ‘육하원칙’이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도 여행이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기에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나는 지금 어린이들처럼 그림책에도 푹 빠져있습니다.

색다른 여행도 해봐야겠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여행에 목말라 마음이 답답한 사람,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 어떻습니까. 함께하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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