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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Apr 01. 2023

엄마

[ 짧은 글 ]

< 내가 뜨개질해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우리 엄마 >



오래전 어느 여름날. 여름휴가였고 아무 계획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은 타입이지만 왠지 모르게 부모님 댁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내 딴에는 부모님을 위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뒹굴뒹굴할 게 뻔한데 그게 다 효도하는 거다, 생각하면서 갔을 거예요.


엄마와 나는 둘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누워 방바닥에 등을 딱 붙이고는 우리 사이에서 도리도리하고 있는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을 쐬며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집에 에어컨이 있어도 굳이 틀지 않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단골 멘트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를 하면서 말이죠.     


“있잖아, 나는 말이야, 내가 낳은 애기라서 그런지 마냥 예쁘기만 했어. 결혼하고 바로 애기를 갖고 싶었는데 두 번이나 유산을 하고 3년 만에 생겼으니 얼마나 소중했겠니. 열여덟 시간 진통 끝에 애기를 낳고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는데 간호사가 애기를 내 품에 안겨주는 거야. 예쁜 공주님이라고, 힘들어도 눈 뜨고 보라며 나를 깨우더라고. 눈꺼풀을 겨우 반쯤 들고 애기를 보는데 얼마나 예쁘던지! 숱 많은 새카만 머리카락은 귀밑머리까지 나 있고 뽀얀 얼굴에 코는 어쩜 그리 오똑하니. 머루처럼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는 신기할 정도로 반짝거렸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예쁜 애기를 낳았구나 싶어서 뿌듯했고 열여덟 시간 진통하며 고생한 걸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어.”     


어, 그래.     


“나는 산후우울증 그런 거 왜 생기는지 영 몰랐어. 애기 옆에 누워서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니까. 자는 얼굴을 보고 또 봐도 예쁘고, 오물오물하는 작은 입도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으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살짝 만져보다가, 말도 걸어보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갔어. 잠깐씩 집안일하는 시간 말고는 애기 옆에 딱 붙어서 눈을 떼지 못했어. 어느 날 옆집 아주머니가 찾아왔더라고. 내가 한 달이나 밖에 안 나와서 혹시 많이 아픈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면서. 그래서 내가, 애기가 이렇게 예쁜데 밖에를 왜 나가요, 그랬지."


어, 그래.


"내가 생각해도 유난스러웠어. 그렇지? 근데 정말이었어. 애기가 너무 좋았고 잠시도 애기 옆을 떠나기 싫었어.”


어, 그래. 엄마가 애기를 많이 예뻐했네.

아, 엄마. 그 애기가 나잖아!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거야?


“그런데 너는 처음 낳았을 때가 제일 예뻤어. 이후로 점점…….”


그래. 우리 엄마는 빈말을 못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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