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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Sep 23. 2023

운명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중간한 소설 ] S#3. 2018년 4월 27일

이 도시에서는 미술 관련 업종들이 모여 있는 이 동네를 서울의 인사동에 비유하곤 한다. 수도 서울에 있는 인사동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못해 외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인 데 비해,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는 이 동네는 도심 가까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들만 찾는 곳이라서 인사동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업종의 집중 정도를 가지고 비유는 할 수 있겠다. 그마저도 뭐, 아는 사람들끼리의 얘기일 뿐이지. '미술'이라고 하면 왠지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 같지만,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가 아니고서는 이용 대상이 한정되어 있어서 꽤 폐쇄적이다. 게다가 주변의 상업지역에는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카페, 식당, 술집 등 새롭고 발랄한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는 반면, 이 동네에서는 건물주들이 '화랑가' 분위기를 해친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급기야 거리에 인적이 드물게 된 모양이다.


인사동에 사람이 많은 건 먹고, 보고, 사면서 돈 쓸 곳이 많아서이다. 비록 사람들에게 인사동이 왜 좋은지, 왜 가고 싶은지 물으면 전통적인 분위기를 꼽을지라도 말이다. 시에서 이 동네의 중심거리를 '미술 특화거리'로 지정해 가로를 정비하고 공공미술관을 지었으며 상인회, 지역미술인협회와 함께 축제를 개최하는 등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 받았던 느낌, 첫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고즈넉하다'이다.      





남북정상회담. 역대 정부 중에서 세 번째로, 2000년과 2007년에 이어 11년 만에 성사된 남북 간 정상의 만남이며, 훗날 역사 교과서에 실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뉴스에 나올 만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 사건은 나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나는 4월의 금요일 중에서 딱 오늘만 휴가를 낼 수 있었던 거지만. 사실 오늘 정상회담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루를 알차게 쓰겠다고 굳이 출근 시간에 집을 나서 일찌감치 서울역을 출발하는 기차에 막 올라탔을 때, 친구가 판문점에서 남북의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기에 합성사진인 줄 알았다. 세계 각국 정상의 이미지를 풍자하는 밈이 떠도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 건가, 사진을 보며 생각하는 중에 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 메시지를 보내 알려줬다.


‘아침에 신문 읽다가 역사적 순간인 것 같아서 사진 찍었어.’


그래, 친구야. 인터넷에서 원본에 가까운 사진을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반론하고 싶지만 '역사적'이라는 말에는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고 보니 붐비는 전철에서, 번잡한 서울역에서 분위기가 왠지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는데, 내가 노는 날이라서가 아니라 정상회담 때문이었나.


어쩌면 내가 오늘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건, 운명이 나를 역사적인 날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많은 도시 중에 왜 여길 골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지도를 보고 대충 정한 것 같다. 휴가를 냈다는 그 자체로 목표는 충분히 이루었으며 중요한 건 평일에 일하지 않고 논다는 것 그리고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안 가본 곳으로 간다는 것이었으니 어디든 상관없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회사의 입장을 전적으로 고려해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 세 개가 완전히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만두기로 합의하고 나서야, 근로계약서에는 명시되어 있지만 언감생심이었던 한 달에 하루 월차 휴가를 내겠다고 마음먹은 거였다. 뭐, 그러고도 실행하기까지 석 달이나 걸렸으니,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말고 힘들 때 가끔 휴가를 쓰지 그랬어.”라는 어쭙잖은 충고는 씨알도 안 먹힐 테다.


다시 여행지 선택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오로지 이동하기 위해 차를 오래 타는 게 정말 매우 많이 싫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차라리 잠들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 하고, 그런데 몸은 지치고, 그렇게 보내버리는 시간이 아깝다. 기차도 비행기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기분 전환하려고 차를 타고 달린다는 말을 전혀 이해 못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술 안 마시는 사람한테 피자는 맥주랑 먹어야 더 맛있다고 했을 때 상대방도 마찬가지였겠네. 역시 사람은 역지사지의 존재, 그것도 들어서는 모르고 겪어봐야 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또 그만큼 내가 차에 관심이 없고 갖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덕분에 차를 사고 유지하는데 드는 큰돈을 아낄 수 있고, 갖고 싶은 열망을 돈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좌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어쨌든(멱살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억지로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하는 느낌의 접속사라 쓰지 싫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가끔은 집과 회사에서 멀리 벗어나 남들이 좋다고 찾아다니는 여행지에 가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지도에서 위치를 찾아보고는 대부분 바로 포기한다. 차를 타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며 가는 길에 반나절을 쓰느니 서울의 도심을 쏘다니거나 한강 변에 가서 산책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좋은 곳을 한 번 더 가는 게 나으니까.


그래서 어디든 서울을 떠나 안 가본 곳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고속철도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노선 안에서 기차를 타는 시간이 참을 만한 도시들을 추리고, 그중에 기차역 근처에 도심지가 발달한 지역을 찾아 대중교통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고른 이 도시에는 1박 2일이면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담한 도심부 안에 서울의 명동, 정동, 인사동, 한남동, 가로수길, 성수동에 비유할 만한 동네들이 모여 있다. 비교가 아니라 비유다. 패션 브랜드의 ‘세컨드 라인’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하위 버전’처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도시 사람들이 들으면 서울보다 못하다는 말을 대놓고 한다며 기분 나쁠지 몰라도, 시간이 많지 않고 차 타는 걸 싫어하는 나에게 거대한 서울은 못 먹는 감이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덜 멋있어도 걸어 다니며 실감할 수 있는 휴먼스케일의 작은 도시가 훨씬 더 매력적이지.


기차표를 예매하고 대충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는 것 말고는 미리 계획도 하지 않았다. 내키는 대로 다니자. 한시가 아쉬워서 이 카페가, 이 식당이 최선의 선택일까 전전긍긍하는 관광객 말고 느긋하게 산책하는 동네 사람처럼 거닐어야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빵과 커피로 간단히 허기를 때울 수 있는 카페를 알아낸다. 마치 단골손님인 듯이 찾아가기 위해 지도에서 카페의 위치를 확인해 왼다. 기차역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청 앞에서 내린 후, 시청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으로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세 번째 건물의 1층. 잘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핸드폰의 지도 앱을 켜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만 빼면 이동은 순조롭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있을까.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치고는 등에 멘 가방이 너무 크고, 걸으면서 좀 많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조용한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홀로 도드라지게 모양내고 있는 카페를 한눈에 알아본다. 갈색이 도는 붉은 벽돌로 마감한 입면을 초록색 담쟁이가 절반쯤 뒤덮은 2층 건물에 윗부분이 아치 형태인 커다란 유리창, 계단을 네 개 올라서 들어가는 출입문 위에 걸린 채도 높은 파란색의 둥근 캐노피와 주황색의 장식 조명. 11시 반인데 이제 막 문을 연 듯하다. 넓은 카페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고 안쪽 중앙에 놓인 널찍한 대리석 테이블에 빵들이 종류별로 놓이는 중이다. 지금쯤이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이 카페에 모여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 점심 준비하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아닌가. 내가 평일 오전의 회사 밖 세상을 너무 모르는 건지, 서울과 지방은 삶의 속도가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조금 어리둥절하다. 손님 맞을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잠시 서서 기다리다가 주문한다.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빵은 버터프레첼. 어느 자리가 제일 좋을지 신중하게 둘러본 후 창문 바로 앞에 놓인 8인용 원목 테이블의 창가 구석 자리에 앉는다. 안쪽이라 조용하면서도 카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시야가 확보돼 답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면 창밖 풍경도 보인다. 커피 한 모금 빵 한 조각 먹을 때마다 감탄하며 카페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이따금 사진을 찍는 나는, 누가 봐도 영락없이 타지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일 것이다. 느긋하고 싶지만 안 된다. 정말 좋은데 온전히 좋을 수 없다. 이곳에서의 좋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한다는 생각에 좋으면서 동시에 아쉽다.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보이는 카페의 실내 전경사진을 찍어서 지금쯤 열심히 일하고 있을 친구에게 보낸다. 사진만으로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으니 ‘여기 베이커리 카페인데, 여유 있고 아늑한 공간이 좋네.’라는 문장을 덧붙이지만 친구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정보이다. 건축설계가 직업이고, 멋진 카페를 나보다 열 배는 더 많이 가봤을 친구니까. 누구에게라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은 거구나, 하면서 내 속의 얄팍한 심정을 꼬집었더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러지만 뭐,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친구에게는 별거 아니게 보일 이 순간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지 않느냐며, 나를 꼬집은 나에게 핑계를 댄다. 다행히 친구는 바쁜지 아무 반응이 없다.


빵과 커피를 다 먹고 달리 할 것도 없으니 이제 다음 동선을 정해야겠다. 핸드폰의 지도 앱을 열어 예약한 숙소까지 걸어서 가는 길을 찾는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번화가를 벗어나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는 주거지역에 있는 숙소를 골랐더니 사십 분 정도 걸리겠다. 그 정도는 일없이 그냥도 잘 걷지만, 이왕 여행을 왔으니까 재미있는 경로를 찾아보자. 지도에 '미술거리'라는 이름이 눈에 띄네. 미술과는 아무 인연도 없지만 이름이 마음에 든다. 지도를 확대해서 보니 네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르고 네 각의 크기도 모두 다른 사각형 모양의 부정형한 블록 안에 구불구불한 길들이 잎맥처럼 펼쳐져 있다. 오래된 도시조직이 남아 있는 동네인가 보다. 미술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가장 넓고 긴 걸로 보아 그 블록 안에서 중심가로 인 것 같고. 이 근처에 있는 중심상업지역을 돌아보고 미술거리에 들렀다가 숙소로 가서 짐을 놓고 다시 나와야겠다. 그렇게 대략의 동선을 정리하고 고개를 든다. 어느새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아서 시계를 보니 열두 시 반, 벌써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몰려와 있다. 테이블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내가 앉은 커다란 테이블로 다섯 명쯤 되는 일행이 다가오는 중이다.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 카페를 나와서 창가에 앉은 사람들 덕분에 훨씬 분위기가 좋아진 카페의 입면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옮긴다.


시청 앞 4차선 도로 건너편은 중심상업지역이다. 명동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면적이 더 작고 길의 폭이 더 좁고 건물의 평균층수가 더 낮고, 그만큼 다니는 사람이 더 적은 동네이다. 명동 상권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그렇다. 이 도시에서는 가장 활력이 넘치는 상업지역이지만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지. 문득 명동을 비롯한 서울 도심부 사대문 안의 상업지역이 일반상업지역이고 도시계획 조례상 용적률 기준이 600% 이하인데, 여기가 중심상업지역이고 용적률 1,200% 이하라는 게 우습게 느껴진다. 서울에도 없는 중심상업지역, 기를 쓰고 채워도 도달하지 못할 용적률. 어른 옷을 입은 아이 같다고 해야 하나. 제도가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재미있다. 골목마다 걸으며 꼼꼼히 살펴본다. 시청 건너편 도로변과 블록 한가운데에 있는 야외 광장이 만남의 장소인가 보다. 규모는 작지만 조형물, 분수, 공연시설 등으로 꾸며져 있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핸드폰을 보다가 하는 사람들이 광장 안을 맴돌고 있다. 야외 광장 두 군데를 관통하는 중심 거리는 명동과 똑같이 ‘중앙로’라는 이름이 붙은 넓은 보행자전용도로이다. 길 양측에 건축물의 전면부 전체가 쇼윈도로 꾸며진 의류, 패션 잡화 등의 유명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어서 가장 화려하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그 이면으로 켜를 이루면서 놓인 길들은 중앙로에 비해 위세가 약하다는 게 한눈에 드러난다. 길의 폭이 더 좁고 그만큼 건물의 크기와 입점한 가게의 크기가 더 작다. 대신 중앙로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판매, 식음, 서비스업종이 들어서 있다. 차가 다니는 길은 어수선하고, 볕이 들지 않을 만큼 좁은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다. 어느 식당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기에 가봤더니 분식집이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사진 여러 개가 가게 앞에 붙어 있는 걸 빼면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망 좋은 교차로 모퉁이의 4층 건물 전체를 다 쓰는 카페에서는 층마다 손님들이 유리 커튼월로 된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중앙로의 중간에 서서 화창한 봄, 금요일 낮에 상업가로를 누비는 사람들을 본다. 대부분 젊은이이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뭔지 모르지만 한껏 차려입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저마다 기대감에 들뜬 듯 얼굴빛이 환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평소 같으면 회사나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아마도, 나처럼, 큰맘 먹고 여기에 왔겠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이 거리에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건물마다 색색의 조명이 어지럽게 켜지고 대형건물의 미디어파사드에서 광고영상이 재생되는 풍경을, 퇴근 후 불금을 보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는 밤거리를 떠올려 본다. 여기저기 매장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을 테고, 야외 광장에서 공연을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정신없고 요란한 밤 풍경이 이곳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겠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문득 들어간 매장에서 충동구매를 하고, TV에 나온 분식집 앞에서 한참 줄 서서 기다렸다가 떡볶이를 먹고, 시끌벅적한 술집골목의 야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다면, 팔짱을 끼고 큰 소리로 떠들며 함께 쏘다닐 친구가 있다면 밤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서울이라면 지금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밤에 만날 수 있을까?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떠올려 본다. 선약이 있고, 야근을 하고, 운동하러 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애를 봐야 한다고 할 거 같다. 몇 안 되는 친분에 동생을 슬쩍 끼워 넣어도 그렇네. 그래, 뭐 혼자라도 내키면 다시 올 수 있지. 오늘 밤이 아니라도. 언제라도.


이제 8차선의 대로를 건너면 미술거리다. 저 멀리에서부터 입구에 있는 커다란 조형물이 보였기 때문에 내가 정확하게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길 이름이 크게 적혀 있으니 거대한 이름표와 다름없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민망한 느낌이 들어 똑바로 볼 수 없다. 조형물은 폭넓은 1차선의 일방통행 도로 위를 아치형으로 두르고 있는데 양 끝의 기둥이 보도와 차도의 경계 부분에 있다. 보도를 걷는 사람은 그 조형물을 피해서, 아치 아래를 통과하지 않고 지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어느 지역을 상징하며 시선을 끌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없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종종 있고. 그렇게 못생긴 조형물이 설치되는 데에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겠지. 그런 생각으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미술거리에 실망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드디어 신호등에 보행신호가 켜지고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과 일제히 도로 폭만큼이나 넓은 횡단보도에 내려선다. 8차선의 도로를 건너는 내내, 마주 보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의 시선은 미술거리 쪽을 향해 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이름표 같은 조형물을 지나쳐 미술거리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놀라서 걸음을 멈춘다. 저 멀리서부터 줄곧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건물보다 키가 큰 이팝나무들이 입구부터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데 온통 새하얀 꽃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팝나무가 아케이드를 만들고 있는 거리라니! 이제까지 내가 못생긴 조형물에 사로잡혀서 이팝나무를 못 봤구나. 조형물 따위에 가려지지 않을 만큼, 이렇게 크고 눈부신데 말이다. 빨간 머리 앤이 커다란 벚나무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눈의 여왕님’이라고 했던 게 전적으로 이해된다. 하얗고 작은 꽃이 흐드러진 이팝나무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같다.


나는 마치 지금까지 이팝나무를 한 번도 못 본 것처럼 감탄하면서 이팝나무 아래를 걷는다. 나무 바로 아래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넓게 뻗은 가지에 촘촘하게 달린 꽃과 잎으로 만들어진 천장이 있고, 드문드문 이팝나무 꽃가지 틈새로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렇게 이팝나무는 따뜻한 봄볕을 가리기도 하고 통과시키기도 하면서 거리에 적당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낮고 오래된 건물들, 평범한 작은 가게들도 이팝나무가 장식이 되고 배경이 되는 덕분에 예뻐 보인다. 차를 피하지 않아도 되고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거리에서, 나 혼자만 있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보며 느긋하게 걷다가 잠시 멈춰서 봄바람에 꽃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다가 한다. 살짝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눈을 뗄 수가 없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코를 찡긋하게 되는 이 감정은, 반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거리에 반했다.


○○식당은 거리에서 제일, 아니 유일하게 눈에 띄는 가게다. 이팝나무에 정신이 팔린 채 걷는 와중에도 저절로 시선이 갔으니까. 미술거리의 끝까지 걸어갔다가 중심부로 되돌아와서 ○○식당 앞서 선다. 밖에서도 넓은 유리창 너머로 천장이 높고 기둥이 없어 시원한 내부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외에는 짙은 베이지색 타일이 붙어있다는 것 말고 묘사할 것도 없는 평범한 건물 입면이 마치 그림을 넣은 액자 같다. 길 건너편에 서서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는다. 차도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시야가 가려질 틈이 없다. 오히려 너무 가까이 가면 창가에 앉은 손님과 눈이 마주쳐 민망할까 봐 거리를 두고 보는데도 건물의 오래된 구조를 그대로 두고 모던한 스타일의 가구와 조명으로 만들어낸 식당 내부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온도와 색이 다른 몇 가지의 불빛과 식당 안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조용하고 느린 거리 풍경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홀리듯이 길을 건너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메뉴나 가격 같은 건 안중에 없다. 오후 두 시 넘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아서 2인석의 작은 테이블 중에 창밖과 내부 공간이 전체적으로 잘 보이는 안쪽 자리를 골라 앉는다. 안에서 느끼는 공간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과 조금 다르다. 잔뜩 멋을 부린 공간이고 그래서 긴장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꾸밈없이 차분하다. 전체적으로 조도가 낮으면서 햇빛이 드는 창가만 눈부시게 환하다. 곳곳에 놓인 조명들이 모두 다른 색과 밝기의 빛을 내고 있기 때문에 테이블마다 느껴지는 분위기도 조금씩 다를 것 같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꼭 필요한 것들이면서 적당히 멋있다. 안에서도 커다란 창은 액자가 되고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햇살과 바람이 보이는 것 같고 가끔씩 지나는 사람이나 차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 힘들이지 않으며 조곤조곤하게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듣다 보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차분하게 가라앉다 못해 넉 다운되는 기분이 든다. 장르를 구분하자면 포크가 분명한데도 얼터너티브가 느껴지는, 날씨 안 좋은 북유럽의 회색 하늘 같은 음악. 국내에서 발매된 모든 앨범을 CD로 갖고 있을 만큼 좋아하는 밴드이다. 대게 이런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에는 재즈 음악이 흐를 확률이 99.9%인데 Kings of Convenience를 듣게 되다니 운명까지는 아니어도 인연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의자에 깊숙히 앉아 팔짱을 끼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걸, 매일 깨어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마치 외국의 휴양지에 있는 호텔 식당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어쩌면 놀러 와서 한껏 들뜬 마음이 너그러워 그럴 수도 있다. 서울에 비해 여유롭고 조용할 뿐 특별할 건 없지 않으냐, 이 정도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는 어디든 있지 않느냐 하면 아니라고도 못 하겠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엔 여기가 우리 집이면 좋겠다, 아니면 일터라도, 이렇게 멋진 곳에서 지내며 계절과 날씨와 시각에 따라 변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는 공간에 대한 불만도 얼마간 있었나. 머물고 있는 공간환경이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긴 하니까.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하는 로망이 늘 있었다. 지금도 누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하고 물으면 당장 원하는 집의 평면구성뿐 아니라 3차원적 공간 형태, 집 주변 동네의 환경까지 상세하게 서술할 수 있다. 이사를 다니며 여러 형태의 집에 살아보면서 이상향이 계속 바뀌고 현실에 맞춰 꿈이 작아지기는 했지만 집에 대한 로망은 절실했고, 친구들 앞에서도 자주 읊었던 모양이다. 무려 건축사인 친구가 왜 그리 집에 집착하느냐고 한 적이 있다. 적당히 골라서 살면 되지 뭐 그렇게까지 바라냐고. 좋은 집에 살아보지 못해서 더 열망이 있는 게 아닐까. 좋은 집에 살면 행복할 것 같거든. 집이라도 좋으면 말이야.


한참 동안 그렇게, 친한 사람에게 하기 어려운 얘기를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듯이 서울의 일상에서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식당에서 혼자 앉아서, 밥을 다 먹고 나서도 그냥 앉아 있는데 눈치 보이지 않는 건 처음이다. 난생처음 와 본 이 도시, 이 거리의 이 공간이 나를 반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15년 동안 살아온 서울은 나에게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 것 같은데.


원래 내가 있던 있어야 할 곳과 차이가 클수록 생경한 행복은 커지고 되돌아가기는 더 싫어진다. 아까 갔던 카페에서처럼, 아니 거기에서보다 더 좋으면서 동시에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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